한 달간 살게 될 집을 빌렸다.
이 집엔 있는 것보다 없는 것 이 더 많다.
부엌에는 공기 두 개와 접시 두 개와 한 구짜리 전기레인지와 프라이팬 한 개와 냄비 한 개와 미니 전자레 인지와 시원찮은 냉장고가 전부다.
어느 공간에도 책 한 권 없다.
나는 24인치 캐리어를 열고서 내가 가져온 옷가지와 슬리퍼와 커피 드리퍼를 꺼내어 여기저기에 놓아둔다.
냉장고를 채우기 위해서 재래시장에 장을 보러 가고 과일만 잔뜩 사온다.
내가 드나드는 골목길을 테라스에서 내려다보 는 게 가장 큰 업무이고, 물을 한 통 사러 나갔다가 매일 마주치는 노인이 의자에 앉아 낮잠을 잘 때에 조용히 지나 쳐가는 게 내가 해야 할 가장 큰 도리다.
신짜오. 혹은 깜 언.
국수에 육수를 부어주는 할머니와 빵에 내가 고른 재료 들을 넣어주는 아가씨와 인사를 주고받는 것이 하루치 대 화의 전부이다.
비로소 평화롭다.
비로소 내가 나를 감당할 수 있겠다 싶어진다.
2017년 7월 28일
필자소개 : 김소연 시인.
나조차 나를 낯설어하길 원하며 살고 있다. 어제까지의 나와 다른 사람이 되고 싶다.
낯선 사람이 되기 위하여 자주 여행을 떠난다. 틈만 나면 떠나고 틈을 내서 떠난다.
일 년의 반 정도는 낯선 장소에서 살아간다.
낯익었던 것들이 돌연 낯설어질 때에 적는 문장, 그것만이 시가 되거나 시에 가까워진다고 믿고 있다.
시집 <극에 달하다>, <빛들의 피곤이 밤을 끌어당긴다>, <눈물이라는 뼈>, <수학자의 아침>과 산문집 <마음사전>, <시옷의 세계> 등을 출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