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피투데이

문화
count
2,082
김소연의 낯선 사람이 되는 시간 - 한 달 <베트남 냐짱>

김소연의 낯선 사람이 되는 시간
글과 사진 김소연

한 달





한 달 동안 나는 
내가 가장 잘하는 것을 하려고 한다.


일을 하지 않을 것이고 
책을 읽지 않을 것이다.


골똘하게 생각을 한다거나 
오래오래 관찰을 한다거나


나아가서


화장을 한다거나 
새 옷을 산다거나


누군가를 만난다거나 
누군가를 그리워한다거나 
누군가를 미워한다거나
 
더 나아가서


헤아린다거나 
상상한다거나 
표현한다거나


자책한다거나 
후회한다거나 
뉘우친다거나


그런 것들을 하지 않을 것이다. 
한 달 동안 나는


아무것도 안 하는 것을 
가장 열심히 하려고 한다.


Vietnam, Nha Trang, 2017





한 달간 살게 될 집을 빌렸다. 

이 집엔 있는 것보다 없는 것 이 더 많다. 

부엌에는 공기 두 개와 접시 두 개와 한 구짜리 전기레인지와 프라이팬 한 개와 냄비 한 개와 미니 전자레 인지와 시원찮은 냉장고가 전부다. 
어느 공간에도 책 한 권 없다. 
나는 24인치 캐리어를 열고서 내가 가져온 옷가지와 슬리퍼와 커피 드리퍼를 꺼내어 여기저기에 놓아둔다. 

냉장고를 채우기 위해서 재래시장에 장을 보러 가고 과일만 잔뜩 사온다.
내가 드나드는 골목길을 테라스에서 내려다보 는 게 가장 큰 업무이고, 물을 한 통 사러 나갔다가 매일 마주치는 노인이 의자에 앉아 낮잠을 잘 때에 조용히 지나 쳐가는 게 내가 해야 할 가장 큰 도리다. 

신짜오. 혹은 깜 언. 
국수에 육수를 부어주는 할머니와 빵에 내가 고른 재료 들을 넣어주는 아가씨와 인사를 주고받는 것이 하루치 대 화의 전부이다. 

비로소 평화롭다. 

비로소 내가 나를 감당할 수 있겠다 싶어진다.


2017년 7월 28일



필자소개 : 김소연 시인. 
나조차 나를 낯설어하길 원하며 살고 있다. 어제까지의 나와 다른 사람이 되고 싶다. 
낯선 사람이 되기 위하여 자주 여행을 떠난다. 틈만 나면 떠나고 틈을 내서 떠난다. 
일 년의 반 정도는 낯선 장소에서 살아간다. 
낯익었던 것들이 돌연 낯설어질 때에 적는 문장, 그것만이 시가 되거나 시에 가까워진다고 믿고 있다. 
시집 <극에 달하다>, <빛들의 피곤이 밤을 끌어당긴다>, <눈물이라는 뼈>, <수학자의 아침>과 산문집 <마음사전>, <시옷의 세계> 등을 출간했다.

목록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