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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강명의 부엌에서 쓰는 칼럼 - 뒤늦게, 요섹남

장강명의 부엌에서 쓰는 칼럼
글 장강명

뒤늦게, 요섹남




‘요섹남’(요리 잘하는 섹시한 남자)이라는 유행어는 이제 한물간 건가? 

지금 인터넷으로 검색 해보니 상위에 뜨는 문서나 기사들은 모두 2015년 것들이다. 
2015년이면 배우 차승원이 <삼시세끼>에, 웹툰 작가 김풍이 <냉장고를 부탁해>에 나오고, ‘스타 셰프’들이 생겨나던 때다. 

당시 어느 잡지에서 요섹남에 대한 칼럼을 써달라고 부탁해 와서 정중히 사양한 적이 있었다. 
할 줄 아는 요리라고 해봐야 라면과 파스타가 전부인 사람인지라(파스타 조리법은 놀랄 정 도로 간단하다), 쓸 자격이 없다고 여겼던 것이다. 
그랬더니 담당 에디터는 이렇게 말했다. 

“요섹남에 대해 꼭 긍정적인 이야기를 하실 필요는 없어요. 
예를 들어 ‘난 요섹남 열풍이 싫다. 이제 섹시해지려면 요리까지 해야 하는 거냐. 부담스럽다’ 이런 이야기를 써주셔도 됩니다.” 

그런데 나는 요섹남 열풍이 싫지도 부담스럽지도 않았다. 
실은 별 관심이 없었다. 
아마 기본 적으로 음식에 대해 남들보다 시큰둥해서인 것 같다. 
라면이나 편의점 도시락이나 패스트푸 드로 끼니를 때워도 큰 불만이 없고, 똑같은 메뉴를 몇 끼씩 연속해서 먹기도 한다. 
그마저도 귀찮아서 거를 때도 있다. 찬장에는 에너지바를 잔뜩 쟁여 놓았다. 
‘집밥’에 대한 애정이나 향 수도 없고, 아내에게 밥상을 차려달라고 한 적도 없다.

나라고 미각이 없는 건 아니니까 맛없는 음식보다는 맛있는 음식이 좋고, 어떤 미식은 시간 과 노력을 들여 경험해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아내와 같이 외식을 하면 즐겁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누군가 멋지게 음식을 조리하는 장면이나 남이 맛있게 그걸 먹는 모습까지 즐기 면서 보지는 않는다.
그리고 무엇보다 TV에서 요섹남들을 보면, ‘요리를 잘하니까 섹시해 보인다’는 생각이 안 들 었다. 그보다는 ‘(원래부터) 멋지고 섹시한 남자들이 TV에서 요리를 하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그러니까 ‘이제 섹시해지려면 요리까지 해야 하는 거냐’는 부담도 당연히 생기지 않았다.

‘남자들이 그간 기피하던 집안일을 하는 걸 보고 여성이 대리만족을 느낀다’는 식의 해석도 억지스럽게 들렸고. 그랬다가 얼마 전 미용실에서 한 남성 미용사를 보고 요섹남의 섹시함을 이해하게 됐다.
그 미용사는 중키에 통통한 체형이었는데 편한 옷에 앞치마를 걸친 흔한 차림이 아니라 몸에 딱 달라붙는 회색 줄무늬 정장 양복과 흰색 화이트셔츠를 입고 있었다. 
처음에는 터질 듯한 양복을 입고 손님의 머리를 다듬는 그의 모습이 우스웠다. 
허세처럼 보였다.
그는 권총집 같은 커다란 가죽 주머니를 허리에 찼는데 거기에는 각종 크기의 가위가 꽂혀 있었다. 
그는 주머니에서 가위를 꺼내거나 다시 꽂을 때 서부의 총잡이처럼 날렵하게 그걸 한 바퀴 돌렸다. 
나는 점점 그 모습에 빠져들었다. 
그러다가 손님이 샴푸실로 머리를 감으러 간 동안 그가 밀대를 들고 직접 자기 자리의 머리카락을 치우는 데서 내 마음은 찬탄으로 변 했다. 

그는 엄청 섹시했다!

왜 그런 마음이 들었을까? 
일단은 그가 자기 몸을 쓰는 육체 노동자였기 때문에 그랬던 것 같다. 
그의 동작에는 빈틈이 없었고, 그것은 그가 오랜 시간 자신을 단련해왔음을, 곧 그가 자제력 있는 인물임을 의미했다.
두 번째로 그에게는 자신만의 공간이 있었다. 
그 공간에서는 그가 배타적 전문가였고, 주인 이었다. 
그는 매우 남성적인 의미에서 자기 영역을 온전히 지배했다.
셋째로 그에게는 스타일이 있었다. 
스타일은 곧 자신감이다. 그는 자기 영토 밖 세상에 대해 어떤 의견이 있었고, 그 의견을 주저함 없이 밝혔다.
말하자면 그는 강하고 자신만만하고 동시에 현명한 수컷처럼 보였다. 

요섹남 역시 마찬가지다. 
그들은 주방이라는 자신의 공간에서 무소불위의 권력자가 된다. 
오랜 수련자만이 보여줄 수 있는 자신감으로 자기들의 도구를 능숙하게 다뤄서, 세상에 자신만의 의견을 내놓는다. 
소위 ‘뇌섹남’(뇌가 섹시한 남자)에 대해 내가 아직까지 큰 매력을 못 느끼는 이유도 이 때문 아닌가 싶다. 
뇌섹남들에게는 육체도 공간도 없이 오직 의견만 있는데, 의견만으로 섹시해지 기는 참으로 힘든 것 같다.



필자소개 장강명 
공대를 졸업하고 건설회사에 들어갔다가 그만두고 나와 신문기자가 되었다. 
신문사에서 11년 일하다 그만두고 나와 소설가가 되었다. 
결혼식을 올리지 않고 혼인신고만 했다. 
자신의 소설에 대해 ‘월급 사실주의’라고 설명한다. 
장편소설 〈표백〉, 〈한국이 싫어서〉, 〈댓글부대〉,
〈우리의 소원은 전쟁〉, 소설집 〈뤼미에르 피플〉, 에세이 〈5년 만에 신혼여 행〉 등을 썼다. 
주로 부엌에서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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