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피투데이

문화
count
2,891
마고의 매직 라이프 - 한국 어르신들의 지혜를 빌어 프랑스 집에 온돌을 놓다 (2)
마고의 매직 라이프

글과 사진 마고


한국 어르신들의 지혜를 빌어 프랑스 집에 온돌을 놓다 (2)


돌난로를 만들며 에너지 자립을 실현하는 삶을 살고 있는 벤은 온돌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다. 
흙과 돌 등 자연의 재료들로 만들 수 있는 온돌을 두고 벤은 ‘친환경적이고 이상적인 시스템’이라고 말했다. 
부엌에서 요리를 하는 열로 방까지 데우고 흙과 돌을 데워 원적외선으로 몸을 지지는 방식이 아주 현명한 방법이라고 칭찬을 하는 벤의 이야기를 듣고 보니 서구에서 온 현대식 난방 방식은 그야말로 낭비가 넘쳐났다. 
벤은 돌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다. 
우리가 사는 지역 근처에는 에너지가 충만한 고인돌 지역이 있는데, 그 옆 에서 커다란 돌난로를 만들어 지피는 일이 벤에게는 아주 큰 의미를 지니고 있는 듯했다. 
새와 대화를 나누 는 마담 브롱웬처럼 벤은 수천 년의 삶을 살고 있는 돌에서 나오는 에너지에 매료된 듯 보였다.





프랑스 집에 온돌을 놓고 이웃들과 궁둥이를 지지다

전기세가 어마어마하게 나오는 라디에이터를 사용하지 않고 겨울을 보낸다는 건 도시에서와 마찬가지로 이 곳 시골에서도 쉽지 않은 일이다. 
태양열판을 사용하거나 촛불을 활용 하는 사람들도 있고, 심지어 가스레인지 불을 켜놓는 친구도 보았지만 이는 극소수일 뿐 대부분의 세입자들은 전기 라디에이터를 사용하게 된다.
자기 집이 아닌 월세집에 살면 아무래도 집주인 눈치를 보느라 벽에 못 자국 하나도 마음대로 낼 수 없다 보니 태양열판을 장착하거나 벽에 연통 구멍을 내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오래된 집에 딸린 벽난로는 요즘처럼 유리문이 달려 있지 않다. 
집을 보수할 때는 이 같은 트여 있는 벽난로를 창문이 달려 있는 난로로 바꾸거나 전기 라디에이터를 설치하는 사 람들이 많다. 
연기가 많이 나고 난방이 잘 안 된다는 게 주된 이유다.

그도 그럴 것이 요 즘 사람들은 특히 겨울에는 창문을 닫아놓고 산다. 
난로를 지피거나 라디에이터를 틀어놓 았을 때는 혹시라도 온기가 밖으로 나갈까 봐 더욱 꼭꼭 닫는다. 
우리는 겨울에도 너무나 따듯한 실내에서 생활하는 것에 익숙해졌지만 실내 공기가 바깥과 너무 큰 차이가 나지 않고 조금 차가운 편이 오히려 건강에 더 좋다는 것은 이곳에서나 한국에서나 마찬가지로 통하는 상식이다. 
바닥은 따듯하고 공기는 시원한 외삼촌 네 온돌을 내내 그리워했는데 마침내 내가 사는 이곳 프랑스에 온돌을 놓게 된 것이다.

온돌이 완성되자마자 외삼촌은 마른 흙도 말릴 겸 불을 지피기 시작했다. 
시골 아궁이에 익숙한 삼촌은 벽난로 문을 활짝 열어놓고 불을 지피셨다. 
집 문도 활짝 열어놓아 환기가 잘 되었지만 그래도 실내는 훈훈했다. 연기가 난다고 난로 문을 꼭꼭 닫는 이곳 사람들과 는 다른 역시 한국 시골 스타일이었다.
온돌이 마르기도 전부터 사람들은 엉덩이를 붙이고 가만히 앉아 자연스럽게 우리네 사랑 방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의자와 탁자를 두고 앉았다면 몇 명 못 앉을 자리지만 서로 등 을 붙이고 앉으니 꽤 많은 사람들이 앉을 수 있었다.
다들 엉덩이를 따듯하게 지지며 좋 아했다. 모두 온돌에 앉아 떠날 생각이 없었다. 
외삼촌은 옛 시골 풍경이 떠오르신 듯 두 레에 관해서 이야기해주셨다. 
두레는 이제 한국의 시골에서도 보기 힘든 풍경이 되었고 나 역시 겪어본 적이 없지만 삼촌이 들려주신 이야기가 뼛속 깊이 파고드는 것 같았다.
 


온돌을 놓으며 에너지 자립을 꿈꾸다

이곳 프랑스 시골에 와서 처음 겨울을 났을 때 집에 난로가 있었지만 많이 추웠다. 
한국에선 따듯한 아파트 생활에 익숙했던 내게 이곳의 겨울은 춥고 길게 느껴졌다. 
냉기 가득한 방에 서 아이를 재우면 안 되겠다 싶어서 잘 때는 방문을 꼭 닫고 라디에이터로 난방을 했다. 
다음해 겨울부터 다와는 겨울마다 코가 막혀 밤에 잠을 잘 때 힘들게 숨을 쉬었다.
날씨가 추워져서 그런가 하고 문을 더 신경 써서 닫고 라디에이터를 더 세게 돌렸지만 나아지지 않았다. 

어렸을 때부터 나 또한 비염으로 이비인후과에 가서 젓가락 같은 기다란 꼬챙이로 코 를 자주 쑤셨던 아픈 기억이 있다. 
약국의 웬만한 약도 다 써보고 아침마다 억지로 연근을 갈아 먹기도 했지만 별 차도가 없이 서른이 될 때까지 겨울마다 콧물을 달고 살았다. 
그렇기에 다와가 그런 것이 유전이려니 생각하고 민간요법에 따라 배를 많이 먹이는 식으로 대처를 해왔다. 
하지만 온돌에서 잠을 자고 환기가 잘 되는 환경에서 몇 주를 지내니 뚝뚝 떨어지던 콧물이 끊긴 것이다. 
사실 추운 날씨에 방 안이 아닌 곳에서 자는 것이 걱정이 되었 었는데 말이다. 
내겐 기적 같은 일이었다.

다와가 아직 어릴 적, 나는 유모차에 다와를 태우고 반원전 집회에 참가했던 적이 있다. 
우리 가족이 렌이라는 작은 도시에 살 때였다. 
몇 년 만에 열리는 대규모 원전 집회라 전국에 서 많은 사람들이 참가했다. 
원자력 반대 로고를 직접 뜨개질한 스웨터를 입은 할아버지와 원전을 풍자한 괴기스럽고 재밌는 모습으로 치장한 사람들이 인상적이었다. 
마치 축제를 연상케 하는 모습이었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원자력을 보유하고 있는 이곳에서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원자력 반대에 나서고 있다.
원자력을 보유하고 사는 것은 마치 시한폭탄을 안고 사는 것과 같다고 두려워한다. 
몇 년 전 수공예 마켓에서 우연히 만난 백발의 할머니는 사별한 남편이 원자력 회 사에 다녔다고 했는데, 죽기 전 남편이 회사에 대한 극비사항이 담긴 노트를 그녀에게 건네 줬다고 한다. 
그녀를 비롯해 원자력을 반대하는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수록 두려워졌다. 
지구 환경 파괴의 주된 요인인 원자력 사용을 줄이고 에너지 자립과 절약을 실천하는 것은 내 삶을 더 주체적으로 살기 위한 노력으로도 볼 수 있지 않을까? 
작은 물방울이 바다 를 이루듯이, 한 명 한 명의 사람들이 모여 사회를 이루듯이, 나의 작은 실천들이 모여 변화를 이룰 것이라 믿는다.





커다란 가마솥에 고깃국을 끓여 정겹게 나눠 먹었던 날

사람들이 온돌에 모여 앉아 이야기를 나누자 엄마와 이모는 저녁상 차리기에 분주해지셨다. 
한국 엄마들의 공통점 중 하나는 사람들이 모여 있을 때 식사 때가 되면 밥상 차리기에 바빠진다는 거다. 
개인주의가 확고한 이 곳에서는 심지어 아이들 밥도 안 챙기는 어른들이 있으니 이런 풍경이 당연하지 않고 다소 특별하게 여겨질 것이다. 
한국인들이 ‘정’이라고 일 컫는 가치들이 서구사회, 현대사회에서는 살아남기 힘든 것이 되었다.
고기를 먹지 않고 채식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많이 모인 자리였지만 역시 한국 어르신들이 계신 자리에서 밥상에 고기가 없으니 너무 조촐한 느낌도 들었다. 
이 곳에선 거의 채식을 한다고 미리 말씀을 드려놓았지만 그래도 먼 길을 오신 분들께 불효하는 느낌까지 들었다.
두부와 김치 같은 반찬으로는 아무래도 부족했다. 
소주까지 가져오신 아버지를 보며 ‘아버지 좋아하시는 삼겹살이라도 구워드려야 할 텐데…’라는 생각이 자주 머리를 스쳐 갔다. 
그러다 이모가 가마솥을 보시고서 ‘어렸을 때 일 년에 한 번씩 이런 가마솥에 돼지를 푹 삶아 국을 끓여 맛있게 먹었다’고 지나가듯 하신 말씀이 귀에 들어왔다. 





마침 프레도의 아내 로자가 집에 얼려놓은 돼지고기가 있는데 필요하면 언제든지 말하라고 귀띔해주었다. 
돼지는 프레도가 직접 잡은 건강한 녀석이라고 덧붙여 말했다. 
그렇게 로자는 20kg은 족히 될 커다란 돼지고기 덩어리를 가지고 왔다. 
우리는 어르신들이 한국으로 돌아가시기 전 마지막 날 경상도 시골 스타일의 가마솥 돼지고추장국을 끓이고 또 끓였다. 
커다란 파를 마구 집어넣고 부모님이 직접 가져오신 장을 넣고 있는 야채를 가득 넣은 국은 인기 만점 이었다. 
종일 돌을 나르고 막노동을 한 남자들이 시골 머슴들처럼 잘들 먹으니 어르신들도 좋아하셨다. 

어르신들 덕분에 감사하고 또 감사할 날들의 연속이었다. 
그렇게 부모님의 존재는 우리에게 감사함 그 자체가 되었다.





필자소개 마고 
레게 음악 뮤지션인 프랑스인 남편, 다람쥐처럼 온종일 뛰어다니는 아이 셋과 함께 잘 알려지지 않은 지역을 떠 돌아다니며 사는 마고는, 낮에는 살림을 하고, 밤에는 사계절의 변화와 닮은 그림을 그린다. 
현재 프랑스 서부 브르타뉴 지방 의 작은 시골마을에서 자연이 주는 무구한 은혜를 껴안으며 살고 있다.
 

목록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