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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시사철 서점여행자 - 책들과 함께 차근차근 미래를 준비 중 <제주 미래책방>

사시사철 서점여행자

글 김미경
사진 이민영



책들과 함께 차근차근 미래를 준비 중

제주 <미래책방>





고3 때 나의 담임선생님은 다양한 방법으로 수험생인 우리들을 독려했다. 
기체조에 깊이 심취해 있던 선생님은 이따금 오묘한 기체조 동작으로 아이들 한 명 한 명에게 기를 불어넣어주셨고(물론 아이들은 질겁하며 싫어했다), 조례나 종례 시간엔 우리가 딴청을 피우건 말건 긍정적이고 교훈적인 말씀을 들려주셨다. 
“코끼리를 다 먹는 방법이 뭔 줄 아나? 한 번에 한 입씩 먹는 거다.” 들으나 마나 공부 열심히 하란 소리인 게 뻔했다. 
새침한 여고생들한테 전혀 와 닿을리 없는, 재미없는 아저씨 선생님의 고루한 훈화 말씀이 그로부터 10년이 훌쩍 넘은 지금 문득 떠오른다. 
그때 우리들은 큰물로 밀려나가기 직전의 은어 떼처럼 파닥거리는 에너지를 몸속에 꾹꾹 눌러 담은 채 저마다의 미래를 꿈꾸고 있었다. 
기회도 변수도 가능성 도 너무 많았기에 오히려 한 치도 가늠할 수 없었던 미래. 당시의 나는 도저히 알 수 없었던, 그토록 궁금해했던 10년 뒤의 내 인생을 지금의 나는 이토록 덤덤히 살아내고있다. 
‘한 번에 한 입.’ 선생님 말처럼 요행 같은 건 바라지 않고 하루하루 성실히 살아왔다면 나는 코끼리만큼 커다란 업적을 이룩한 멋진 사람이 될 수 있었을까? 
제주에서 마주친 <미래책방>의 ‘미래’라는 글자 앞에서 왠지 조금 부끄러워졌다.





미래에 대한 고민을 담아 책방을 열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서점 주인이 되는 상상을 해보 지 않을까.
좋아하는 책들에 가득 둘러싸여서 온종일 책을 뒤적거 리며 보내는 하루. 
떠올리기만 해도 즐겁다. 

하지만 가게세와 매출 을 걱정해야 할 것이고, 가끔은 책을 함부로 보는 진상 손님도 있 을 것이며, 어쩌면 손님이 한 명도 오지 않는 외로운 나날이 이어 질지도 모르고….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면 결국 고개를 젓게 되 기 마련이다. 
그런데 나와 같은 상상을 하던 어느 청년이 더하기 빼기 셈하기를 멈추고 그냥 자신의 꿈을 실현해보기로 한다.
제주 에서 열린 집짓기 워크숍에 참여했다 이곳에 눌러 앉은 그녀는 꽃 피는 4월 봄날에 제주공항과 가까운 구도심 어느 식당 터에 소규모 편집 책방을 차렸다. 
서점의 이름은 <미래책방>.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까’라는 그녀의 고민에 대한 크고 작은 해답이 담긴 책들이 이곳에 모여 있다.

동글동글 참 예쁘게도 생긴 현무암 돌멩이로 괴어놓은 책장에 생활, 환경, 지역, 기술 영역 등 실용서적들이 한가득 꽂혀 있는 모습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장차 자급자족 하는 삶을 목표로 하고 있는 그녀는 농사와 먹거리, 목공 관련 책들에 관심이 많다. 
전기 없이 작동하는 냉장고, 제습기, 세탁기, 청소기 등의 매뉴얼이 수록되어 있는 책 이라든지, 공동거주 실전 안내사항이 담긴 <마흔 이후, 누구와 살 것인가> 같은 책들 도 눈에 띈다. 
이 책들과 함께 그녀는 차근차근 미래를 준비 중이다. 
책방을 찾는 손 님들에게도 이 책들이 종잡을 수 없는 미래에 대한 작은 힌트라도 되어줄 수 있기를 바라면서.
제주 여행 첫날 우연히 들르게 된 이 서점에 반해버린 나와 일행들은 사진도 왕창 찍고 질문도 왕창 던졌는데, 그녀는 조금 당황해하면서도 그런 상황을 재미있어했다.






기존 식당 간판을 떼지 않고 그대로 달아둔 것이나 조리대 등 내부 구조를 허물지 않고 원형을 살려 인테리어한 것을 보고 멋스럽다 생각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그녀는 건축학을 전공한 사람이었다. 
게다가 계약이 얼마나 더 연장될 지 모를 세입자로서 인테리어 비용에 돈을 쏟아붓는 것도 지혜롭지 못한 일이라 생각하는 내심이 그녀에게 있었다. 
부산 출신인 그녀는 종종 고향에 갈 때마다 보수동 헌책방 골목을 뒤져 중고책들 을 짊어지고 오기도 하고, 제주에서도 부지런히 이웃 책방들을 드나든다고 했다. 
일주일에 한 번씩 직조와 그물 짜기 수업을 듣고, 골목 상인들이 참여하는 플리마켓에 나가 책을 팔기도 하고, 선선한 밤에는 동네를 산책하며 ‘제주에 사는 것은 복된 일’이라 되뇌인다는 그녀의 일상은 언젠가 내가 꿈꾸었던, 상상만으로 그치곤 했던 장면들과 어딘지 닮아 있었다. 
문방구집 딸내미가 되고 싶었던 유년시절을 떠올리며 문구 코너 를 작게 꾸며보기도 하고, 음료와 예쁜 컵을 준비해놓고 부수입을 도모하기도 하면서 그녀는 책방 주인으로서 누릴 수 있는 소소한 즐거움들을 놓치지 않고 있었다.





<미래책방> 인스타그램에는 그녀가 미처 들려주지 못한 이야기들이 한 장면 한 장면 기록되어 있어서 시간가는 줄 모르고 염탐했다. 
사다리에 올라타 손수 책방 간판을 달 았던 날 ‘미래책방’의 ‘미’를 깜빡한 업체 사장님 덕분에 한동안 간판이 미완성으로 달려 있었다는 이야기, 목수 아저씨에게 사정사정해서 어렵게 수리한 낡은 의자를 책방에 들여놓았다는 이야기, 책방 오픈하고 처음으로 우산꽂이를 내놓았던 날이나 천장에 비가 새서 급한 대로 뚝딱뚝딱 보수공사를 했던 날의 이야기 같은 것.
책방에서의 일상을 최근 소식부터 역순으로 훑어가는 동안, 그곳에 대한 애정이 몽실몽실 피어나 서 약간은 내 가게처럼 여겨지기도 하는 이상한 경험을 했다. 
책방에 들여다 놓은 극락조 화분에 새 잎이 천천히 피어나 연두색 그라데이션이 생겼다는 소식이며, 책방 지붕 위에서 두다다다 뛰어다니는 길고양이의 안부(결국 이 녀석은 책방의 새 식구가 되 었다) 같은 것들에 내 일처럼 관심이 갔다.




최근엔 어떤 손님이 옥수수를 주고 가서 책방에 온 분들과 나눠먹었다는 소식이 업데이트되어 있었다. 
책방에 이리저리 관심을 가져주는 손님들 덕분에 그녀는 힘이 난다 고 했다. 
‘작은 책방 운영이 금전적으로 녹록지 않다는 걸 알고 시작했지만 일희일비 하지 않기는 쉽지 않은 일’, 언젠가 그녀가 인스타그램에 남겼던 이 글은 책방 주인으 로서 그녀가 감당하고 있는 현실의 무게를 아주 가볍게 압축시킨 문장일 것이다. 
그 무게는 소소하고 아름다운 지금의 일상을 단번에 무너뜨릴 수도 있을 만큼 강력할 게 분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녀의 오늘과 그녀의 내일을 응원하고 낙관한다.
‘한 번에 한 입’, 하루치의 기쁨과 보람을 소중히 받아들이며 성실하게 오늘을 살아낸 이라면 결국 코끼리만큼 커다란 현실의 벽도 이겨낼 수 있을 테니까.





<미래책방>을 방문할 이들을 위한 팁

1. 주인장에게 요청 시 책방 카운터에 놓인 타자기로 손님이 요청한 짧은 문장을 타이핑해 천 원에 증정한다. 
소설이나 시 구절, 좌 우명, 노래 가사 등 가지고 싶은 문장을 미리 생각해가자.

2. ‘책’이라는 글자가 적힌 32㎜ 크기의 앙증맞은 배지는 <미래 책방>에서 자체 제작한 오리지널 굿즈다. 
에코백에 달면 영락없이 잘 어울린다. 
가격이 저렴하니 하나쯤 기념품으로 구입할 것을 추천한다.


미래책방
주소 제주 제주시 관덕로4길 3
전화 010-3656-1753
홈페이지 instagram.com/mirai_books
운영시간 12:00-20:00 (휴무일 인스타그램 공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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