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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방곡곡 탐식유랑단 - 시큼한 맛이 일품인 옛날식 김치찌개에 반하다

방방곡곡 탐식유랑단
글 윤혜자
사진 윤혜자, 이민영


시큼한 맛이 일품인
 
옛날식 김치찌개에 반하다






어느 날 페이스북에 내 시선을 강탈한 사진이 한 장 올라왔다. 
얇은 어묵을 수북하게 얹은 김치찌개. 
사진만으로도 쨍하도록 시큼한 맛이 그려졌다. 
여기에 밥을 말 듯 비벼 먹으면 두 그릇은 뚝딱 일 것이다. 

이 사진을 올린 이는 자칭 ‘대중식당 애호가’였다. 
나와 같은 사람이 많았는지 이 사진의 댓글엔 이 식당에 대한 정보를 묻는 이들이 많았고 곧 답이 달렸다.
인사동 ‘간판 없는 김치찌개집’, 사람들이 부르는 이 집의 이름이다. 

평일, 직장인들의 식사 타임이 한 차례 지난 오후 1시에 친구들과 이 식당을 찾았다.
1시가 조금 지 난 시간이었음에도 손님이 가득했다. 
골목에 자리 잡은 식당의 문 양옆으로 간이 테이블을 펴고 앉 아 밥을 먹는 손님들이 보였다. 
그들의 메뉴는 모두 김치찌개. 식당의 메뉴판엔 김치찌개, 칼국수, 콩국수가 적혀 있었지만 다른 메뉴를 먹는 사람은 없었다.
시큼한 김치찌개 냄새에 끌려 김치찌개 4인분, 어묵 하나, 라면 하나를 추가해 주문했다. 
밥 네 그릇을 내어주며 ‘혹시 남기실 것 같으면 밥을 물려라. 부족하면 얼마든지 더 드리겠다’고 설명하신다. 
우리 넷은 밥 두 그릇을 물렸다. 
그러나 식사 중에 다시 라면 하나와 밥 한 그릇을 달라고 했다. 
김치찌개는 역시 밥도둑이다.


50년 역사의 인사동 터줏대감 맛집 <김치찌개집>

<김치찌개집>의 상차림은 단순하다. 
반찬은 달랑 김치 한 그릇 그리고 밥.
김치찌개를 파는 식당에서 반찬이 달랑 김치 한 가지라니 언뜻 이해가 안 된다. 
 흔한 계란말이라도 있어야 하지 않은가? 
그래야 매운 맛을 잡아줄 것이 아닌가? 
그러나 찌개를 한 숟가락 떠서 먹는 순간 상에 올라온 김치조차 보이지 않는다. 
잘 익은 김치가 내는 신맛은 매우 짜릿하게 입 안을 자극한다. 
짭짤한 간이 딱 좋다. 
찌개에 얹은 어묵을 반찬 삼아도 되고 맵지 않으니 굳 이 계란말이도 필요 없다. 
묵은 김치의 쨍한 신맛에 어묵이 더해져 감칠맛이 돌기 시작한다. 
어묵을 건져먹고 나서 라면을 넣는다. 
라면을 건져먹고 나면 냄비 아래에 있던 두부와 두툼한 돼지고기 그리고 김치를 밥에 얹어 비비듯 먹는다. 
다른 반찬이 필요 없다.





반찬으로 나온 이 집의 김치 맛을 제대로 본 것은 세 번째 방문 때였다. 
붉은 빛깔이 선 명하게 고운 김치를 한 조각 집어 먹었다. 
큼큼한 향과 함께 젓갈 맛이 났지만 텁텁하지 않고 담백한 맛이 인상적이었다. 
식감 역시 무르지 않고 먹기 좋았다.
이 시큼하게 잘 익은 김치가 이 집 김치찌개의 핵심이다. 
상에 오른 김치의 상태에서 조금 더 익으면 찌개용 김치가 된다. 
식탁에서 직접 끓여먹는 김치찌개는 찌개가 끓은 후에도 김치의 아삭함이 살아 있다. 
단맛은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오로지 신맛과 짠맛이 완벽하게 조화를 이룬다.

만약 부드러운 식감의 김치찜 형태의 찌개를 좋아한다면 이 집 맛에 만족하지 않을 수 있다. 
맛있는 김치가 있다면 별다른 양념 없이 멸치 육수만 부어 끓여도 맛있다. 
내겐 이 집의 김치찌개가 그 원형의 맛에 가까웠다. 
단순한 양념으로 김치를 담가 잘 익힌 후 비계가 넉넉히 붙은 돼지고기를 넣고 끓이는 것이다. 
그럼 김치의 신맛이 돼지고기의 냄새를 잡고 돼지고기는 찌개에 맛을 더한다. 그 맛은 담백하고 시원하다. 어
묵을 추가하 면 감칠맛이 더해져 다음 숟가락질을 재촉한다.
이 집 주인 내외는 김치찌개만 거의 50년을 끓였다고 한다. 
현재 이 자리에서 30년, 그 이 전에 바로 앞에서 20년 정도 식당을 운영하며 근처 직장인들의 식사를 책임졌다고 한다.
그럼에도 이 집이 크게 소문이 나지 않은 이유는 대중들에게 식당이 알려진 지가 그리 오래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수운회관, 통계청, 덕성여대 직원들만 와서 먹었어. 다른 사람들이 와서 먹으려 해도 자리가 없으니 받을 수 없었지. 
지금은 우리 단골들이 다니던 회사들이 모두 이전해 다른 분들에게도 식사를 팔 수 있게 되었어.”
간판이 없는데 원래 상호도 없느냐 물었다.
“아니 왜 상호가 없어. <김치찌개집>이야. 그게 우리 집 이름이야. 그런데 손님들이 모두 다르게 우리 집을 불렀어. 
덕성여대 직원들은 ‘뽀빠이집’, 통계청 사람들은 ‘기차집’, 어떤 분들은 ‘담벼락집’이라고 불렀어.”

오랜 시간 찌개 맛이 유지되는 데는 50년 전부터 지금까지 주인아주머니가 직접 김치를 담가왔기 때문이다. 
아들이 식당 운영을 이어받았지만 김치는 아들에게 맡길 정도가 아니란다. 
예전에는 배추를 트럭으로 배달받아 손질도 직접 했지만 지금은 절인 배추를 배달받아 담그기 때문에 조금 편해졌을 뿐 별로 변한 게 없다고 한다. 
김치 양념을 아직 누구에게 맡기지 않고 찌개에 넣을 김치의 익힘 정도는 반드시 직접 확인한다.
가격은 1인분에 5,000원 2인 이상 주문이 가능하다. 
주중엔 점심, 저녁 영업을 하지만 주말엔 점심 영업만 한다.




바리스타 사관학교 <카페 뎀셀브즈>

김치찌개를 먹고 나면 자극적인 신맛 때문인지 유독 커피가 당긴다. 
김치찌개집 골목 입구의 카페에서 파는 커피도 맛이 좋지만 낙원상가를 지나 종로 방향으로 조금 더 나가 보자. 
외국어 학원이 많은 동네에 자리한 15년 전통의 커피전문점 <카페 뎀셀브즈>가 있다. 
프랜차이즈 카페들이 작은 커피숍을 밀어내기 시작할 즈음 문을 연 <카페 뎀셀브즈>는 그러한 풍파 속에서도 자기만의 정체성을 단단히 지켜왔기에 더욱 귀하게 느껴지는 곳이다. 

커피를 다루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이곳이 ‘바리스타 사관학교’라고 불린다. 
그만큼 실력 있는 바리스타를 많이 배출했을 뿐만 아니라 커피를 다루는 사람들이 최신의 시스템으로 실력을 기르고 발휘할 수 있어 고객들이 더 맛있는 커피를 마실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뎀셀브즈 커피는 신맛과 고소한 맛의 매끈한 조화가 일품이다. 

커피와 함께 이 집의 자랑인 티라미수나 계란말이 샌드위치를 맛보길 권한다. 
폭신한 식감의 일식 달걀요리인 타마고가 들어간 샌드위치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선보인 계란말이 샌드위치는 부드러운 질감이 빼어나 최근 인기를 모으고 있다. 
간단한 브런치 메뉴도 있어 식사도 가능하다. 
테이크아웃 커피는 2,000원 할인되니 여유가 있다면 커피를 한 잔 사들고 청계천을 거닐어보는 건 어떨까.






청춘의 열병이 떠오르는 곳, <정독도서관>

식사가 너무 과해 산책을 하고 싶다면 삼청동 방향으로 가자.
삼청동에 오면 꼭 <정독도 서관>에 들른다. 
책을 읽을 목적도 공부를 할 목적도 없다. 
세련된 외형의 요즘 도서관과 달리 옛 시절의 정취가 느껴지는 정독도서관은 지금은 삼성동으로 자리를 옮긴 경기고등 학교 건물이었다고 한다. 
아마 지금 도서관의 정원은 예전에 운동장이었을 것이다. 
그래 서인지 정독도서관 정원 곳곳에 있는 등나무 아래 벤치에 앉으면 사춘기 시절 방황하던 마음이 아련하게 떠오른다.

이곳은 1938년 스팀난방방식을 도입한 최고급 철근콘크리트 구조로 건립되어 한국 전쟁때는 미군 통신부대에서 사용하다 1956년 고등학교로 반환되었다. 
그 후 1975년 경기고등학교가 강남구 삼성동으로 이전한 뒤 1977년부터 지금까지 도서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보존 가치를 인정받아 건물 중 오래된 4개 동은 등록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으며, 무엇 보다 계절마다 변하는 정원 풍경이 정말 빼어난 곳이다.
서예, 문인화, 역사 특강, 기공수련, 요가 등 이곳에서 주최하는 다양한 문화강좌를 수강 해보는 것도 도서관을 알차게 누릴 수 있는 방법일 것이다. 
또한 도서관 정문 오른쪽에 자리한 <서울교육박물관>은 자녀와 함께 방문해볼 것을 추천한다.




<김치찌개집> 서울시 종로구 인사동 10길 23-14
<카페 뎀셀브즈> 서울시 종로구 삼일대로 388
<정독도서관> 서울시 종로구 북촌로 3길 48



필자소개 윤혜자 
책을 비롯한 다양한 컨텐츠를 엮는 기획자로 일했다. 
나이 들어 결혼, 아침을 안 먹으면 하루 일과를 시작 못 하는 남편과 살며, 그리하여 즐거이 매일 아침밥을 지어 상을 차린다. 
손수 밥을 지어 먹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깨닫고 음식공부를 하고 있다.
남편과 함께 동네 술집과 밥집을 어슬렁거리며 맛있고 즐거운 음식점을 만나면 여기저기 소문내는 일을 즐거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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