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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근두근 문화 채집단 - 젊은 필진들이 선별한 이달의 문화

두근두근 문화 채집단

영감과 만족을 주는 것이면 장르를 불문하고 무엇이든 OK! 통통 튀는 젊은 필자들이 취향껏 선별한 각종 문화 정보를 소개합니다.





사랑의 계절

책 <여름의 끝> 윌리엄 트레버



6월의 어느 날, 아일랜드의 작은 마을 라스모이에 장례행렬이 지나간다. 
아일린 코널티라는 사람이 삶의 저편으로 건너갔다. 
같은 날, 카메라를 든 이방인이 마을에 나타난다. 
플로리언 킬데리라는 사람이 마을사람들의 삶으로 걸어 들어왔다.
단편소설의 거장 윌리엄 트레버가 81세에 쓴 장편소설 <여름의 끝>은 이렇게 마을 유지의 죽음과 낯선 사람의 등장으로 시작해 이 사건이 마을에 미치는 파장을 들여다본다. 
노년의 작품이라 그럴까,
회한의 정서가 지배적인 가운데, 이야기의 중심에 있는 젊은 연인 엘리와 플로리언만이 사랑의 감각을 일깨운다. 
어떤 바람이나 기약도 없이 두 사람이 만끽한 한철은 아릿하게 저물어가지만 그들의 삶에 무언가를 남길 것이다. 
나는 이 문 장을 기억하기로 한다. 
“지금까지 두 사람이 함께한 이 여름은 앞으로도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비로소 사랑의 계절이다. 
박지형



비밀의 숲에 시초가 되는 나무, 시목(始木)

드라마 <비밀의 숲> 안길호, 이수연 



인내심 부족한 내가 한 편의 드라마를 끝까지 정주행(?)한 건 참으로 오랜만의 일이었다. 
드라마 <비밀의 숲>은 어린시절 트라우마로 인해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황시목 검사(조승우)와 정의롭고 따뜻한 형사 한여진(배두나)이 함께 검찰 스폰서 살인 사건과 그 속에 숨겨진 진실을 파헤 치는 추적극이다. 
이 드라마의 이수연 작가는 검찰 출신 작가이거나 신인 작가가 아닐 거라는 추측이 있을 정도로 매회 앞을 예측할 수 없는 탄탄한 스토리 전개를 선보였다. 
또 사건 해결의 모든 열쇠를 쥐고 있던 서부지검 차장검사 역의 유재명을 비롯한 모든 등장인물의 세밀한 내면 연기는 가히 칭찬할 만하다. 
“선택은 지금 내리는 게 아니라 이제까지 어떤 사람으로 살아왔느냐로 이미 내려져 있는 것” 
황시목 검사의 대사이다. 
드라마를 시청하는 동안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던 이 대사의 의미를 나는 마지막회까지 모두 보고나서야 비로소 알 수 있었다. 
혹 <비밀의 숲>을 놓친 시청자들 중, 저 대사가 주는 의미가 무엇인지 궁금한 이들은 부디 이 드라마를 끝까지 보길 권한다. 
시간이 아깝지 않을 것이다.
신영배



서른두 살에 만난 인생 향수

향수 메종 드 파팡



영화 <캔디>에서 히스 레저가 연인을 위해 들꽃 한 아름을 안고 집으 로 돌아오는 장면을 좋아한다. 
들판에서 아무렇게나 꺾어왔을 것이 분 명한 너무나 야생적이고 아름답고 풍성한 꽃다발. 
딱 그 꽃다발에서 날 것 같은 향기를 찾았다.
올해 생일 선물로 받은 향수
‘작은 식물들’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는 이 향수는 국내 향수 편집매장 메종 드 파팡이 조향사들과 협업한 ‘올 팩티브 프로젝트 퍼퓸 컬렉션’ 제품 가운데 하나다. 
탑노트는 시트러스향이 도드라지지만 향이 거의 휘발되고 나서 은근하게 남아 있는 잔향은 그야말로 ‘작은 식물들’ 그 자체다. 
화사한 꽃잎보다는 푸른 잎사귀가 떠오르는 향. 
매끄럽고 안정감 있는 메탈 캡과 투명한 보틀의 이 향수는 각종 요란한 화장대 위 향수병들 사이에서 심플의 미학을 제대로 보여준다. 
피부에 분사되 는 느낌도 산뜻하기 그지없다.
적절한 분사반경으로 피부에 부드럽게 내려앉는 향수 입자들의 감촉에 후각보다 촉각이 먼저 반응한다. 
메종 드 파팡의 나머지 제품들이 매우 궁금하다. 
김미경



이토록 놀라운 결말

책 <동급생> 프레드 울만



한국에 출간되기 전부터 이라는 소설을 유럽에 있는 친구 들로부터 여러 번 추천받았다.
신기하게도 대강의 줄거리를 이야기해준 후엔 모두들 입을 모아 결말에 대해 말했다. 
마지막 한 문장을 읽고 놀라 처음부터 다시 읽었다거나, 마지막 문장이 없었더라면 이 책이 이만큼 위대하지 않았을 거라고 말하는 친구들에게 혹시 반전을 위한 반전 을 노린 트위스트 엔딩이 아니냐고 물으니 그건 아니라며 웃었다. 
시간이 지나 올해 초, 프레드 울만의 이 <동급생>이라는 제목으로 한국에서 출간되었다. 
주인공 한스의 학교에 콘라딘 그라프 폰 호엔펠스라는 이름을 가진 소년이 전학 온다. 
역사적으로 멋진 영웅들이 많았던 호엔펠스 가문의 성이 주는 위엄과 더불어 콘라딘의 품위에 한스가 매료되는 것으로 소설은 시작한다.
홀로코스트 시대 직전의 평화 로운 학교 정경 사이로 반(反)유대 감정이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싹터 간다. 
한스는 유대인이고 이제 이 소년은 많은 슬픈 일들을 겪게 될 것이다. 
마지막 문장을 통해 콘라딘에 대한 한스의 얽힌 감정이 풀 렸다고 해야 할지, 더 깊어졌다고 해야 할지는 여러 번 다시 읽으며 생각해보고 싶다. 
한지운



단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 레베카의 존재감

뮤지컬 <레베카> 미하엘 쿤체, 실베스터 르베이



난 가끔 어떤 영화나 드라마를 보지 않고, 수록된 사운드 트랙만 아낄때가 있다. 
뮤지컬 <레베카>의 사운드 트랙인 <레베카 ACT 2>가 그 경우이다. 
댄버스 부인 역으로 열연한 옥주현과 막심 드 윈터를 만나 사랑에 빠지는 인물 I의 임혜영이 부른 이 곡은 음습한 분위기와 두 사람의 깊은 감정 변화가 노래를 통해 섬세하게 표현돼 있다.
2013 년 국내에서 초연돼 ‘상반기 최고의 뮤지컬’이란 호평을 받았던 <레베카>가 8월 10일부터 11월 12일까지 <서울 블루스퀘어 삼성전자홀>에서 펼쳐진다. 
뮤지컬 <레베카>는 사고로 숨진 막심 드 윈터의 전 부인 ‘레베카’를 숭배하며 맨덜 리 저택을 지배하는 집사 댄버스 부인, 사랑하는 막심 드 윈터와 자신을 지키려고 댄버스 부인과 맞서 는 I를 중심으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뮤지컬이다. 
긴장감 넘치는 미스터리한 스토리와 을씨년스러 운 기운을 머금은 맨덜리 저택의 무대, 그 무대를 극대화시키는 영상 속에서 ‘댄버스 부인’과 ‘I’가 실 제 들려주는 <레베카 ACT 2>는 어떨지,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신영배



자연의 순환고리에 들어가기

책 <진짜 채소는 그렇게 푸르지 않다> 가와나 히데오



이 책을 처음 읽었던 건 내가 처음 직장을 구했던 2013년 여름이었고, 다시 읽게 된 것은 얼마 전 아빠에게 선물하기 위해서였다. 
아빠는 마당 한쪽의 밭을 일구며 시간을 거의 다 보내기 때문이다. 
서점에서 나와 버 스를 타고 가며 오랜만에 책의 소제목들을 훑어본 나는 겸손한 사람이 만든 이 작은 책이 지난 5년 동안 내 삶의 표면에 잔잔한 무늬들을 만들 어 놓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 책은 농약과 비료 없이 자란 채소들 이 어떤지, 식물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관찰한 내용과 그 내용을 뒷받침할 만한 간단한 실험들로 채워져 있다.
어쩌면 지식서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글쓴이 가와나 히데오 의 지식은 채소를 키우고 싶은 대로 키우며 얻은 것이 아니고 채소의 삶을 지켜보며 이해하기 위해 애 쓴 흔적이기 때문에 가끔은 시처럼 읽힌다. 
내가 가장 오래 기억하는 부분은 열매를 맺는 나무에 관한 이야기다.
나무는 시든 나뭇가지나 잎을 떨어뜨릴 때 에너지를 가장 많이 쓰는데, 그 사실을 알게 된 그는 쓸모없는 가지를 잘라주는 것으로 더 맛있는 과일이 열리게 도울 수 있고, 그것이 자연의 순환고리에 들어가는 일이라고 말한다. 
순환고리를 이해하는 일과 비닐하우스를 짓는 일은 다르다. 
그리고 그 태도의 차이는, 늘 그렇듯, 우리가 누군가와 어울려 살아가는 태도와 연결되어 있다. 
전진우



솔직해지는 용기

영화 <언노운 걸> 장 피에르 다르덴, 뤽 다르덴



나는 매일 붐비는 지하철에서 적어도 일주일에 한 번, 다른 사람의 발을 밟거나 내 발을 밟힌다. 
누군가의 발을 밟았을 때 나는 즉시 사과하기 위 해 귀에 꽂은 이어폰을 빼는데, 반대로 밟힌 뒤에는 사과 받아본 기억이 많지 않다. 
사과에 익숙지 않은 것이 우리들의 문화인가 싶다.
그런 의미 에서 영화 <언노운 걸>의 주인공 닥터 다방(Dr. Davin)은 집요할 만큼 죄책감에 대해 솔직하고 진중하다. 
이 영화를 보는 내내 그녀가 왜 굳이 저렇게까지 깊이 파고드는 걸까 하는 불편한 마음마저 들었다. 
하나의 사건을 되짚어가는 그녀의 날들을 좇으며 그동안 모른 척하고 넘겨버렸던 내가 하거나 하지 않은 일들에 대한 죄책감이 떠올랐다. 
영화의 모든 장면을 맨몸으로 느끼길 바라는 감독의 의도였을까, 
이 영화는 크래 딧이 올라가는 순간까지도 음악이 없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살아가는 모든 순간에는 음악보다는 소음이 존재한다. 
물론 나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은 그런 소음에 귀 기울이지 않는다. 
앞으로는 가장 보고 싶지 않고, 듣고 싶지 않고,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해야 할 때, 그때는 음악을 끄고, 주변의 소음과 내 마음에 집 중해야지 생각했다. 
그리고 그때는 이를 마주할 만큼의 용기를 낼 수 있으면 좋겠다. 
박윤혜



이질적 조합이 주는 색다른 에너지

JAMBINAI X IDIOTAPE 합동 공연  



 “취미가 뭔가요?” 
대학을 졸업하고 구직활동을 하던 시절,
면접 보러 간 회사에서 가장 많이 받았던 질문 중 하나다. 
남들은 입사지원서에 취미 적는 것도 힘들다던데, 나는 딱히 그렇지도 않았다. 
누가 봐도 ‘취미’인 일을 매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누군가 취미를 물으면 그때마다 나는 ‘공연 관람’이 라고 대답했다. 
관객이 수만 명 되는 대형 콘서트건, 자취방만 한 지하클럽 에서 하는 어쿠스틱 연주회건 시간만 허락한다면 공연을 보러 다녔다. 
그게 쌓이고 쌓이다 보니 일 년 동안 본 공연만 서른 번이 넘었다. 
그게 벌써 5년 째다. 나는 매년 연말이 되면 ‘올해 최고의 공연’을 뽑곤 하는데, 거기서 제일 많이 등장한 뮤지션이 이디오테 잎과 잠비나이다.
두 밴드의 음악은 평소 내가 좋아하는 장르와 거리가 멀지만, 그럼에도 나는 이들의 공연 을 최고로 꼽을 수밖에 없다. 
이디오테잎이 실제 악기로 구현하는 일렉트로니카, 잠비나이가 국악과 록으로 펼치는 크로스오버 연주는 스튜디오 앨범과 차이가 없는, 무결점에 가까운 라이브였다. 
‘내 생애 최고의 공 연’을 만들어준 두 팀이 공교롭게도 이번엔 연합 공연을 펼친다. 
장르적 지향이 완전히 다른 이디오테잎과 잠 비나이가 하나의 무대에서 어떤 접점을 찾아 그 에너지를 표출할지 벌써 궁금해진다. 
서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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