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피투데이

문화
count
2,442
김소연의 낯선 사람이 되는 시간 - 집에서 해변까지 <베트남 안방비치>

김소연의 낯선 사람이 되는 시간
글과 사진 김소연





집에서 해변까지


자전거를 타고 흙길을 달린다.
민박집 다음에 민박집 다음에 민박집, 
식당 다음에 식당 다음에 식당,


그리고 벌판.


강아지 한 마리가 내 뒤를 쫓아 뛰어온다.
맞은편에서는 한 가족이 탄 여러 대의 자전거가 다가온다. 
나는 잠시 멈추어 길을 비킨다.


그리고 지평선. 그리고 수평선.


수평선에는 구름이 있고
벌판에는 사람들이 있다.
그 사이를 땡볕이 채우고 있다.


아무것도 없는 바다. 
아무것도 없어서 좋은 바다.


사람이 없는 바다.
사람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닌 바다.
 

그리고 낮잠.


자전거를 타고 흙길을 달린다. 
식당 다음에 식당 다음에 식당,
민박집 다음에 민박집 다음에 민박집,
그리고 집.

Vietnam, An Bang Beach, 2017





다시 오게 될 것 같은 바다를 만나게 된 여름이었다. 
모든 것이 불편했지만, 바다가 평온했으니 모든 것이 좋았던 여름이었다. 
단순하기 짝이 없는 동선과 단순하기 짝이 없 는 일과를 반복하였지만 지루하지 않았다. 
나날이 장 보는 솜씨가 늘어갔고, 나날이 단 골집이 생겼고, 나날이 인사하며 지나치는 사람들이 생겼고, 나는 나날이 새까매졌다.
잘 먹지는 못하였으나 나는 충분히 배불렀다. 
낡은 운동화와 낡은 수영복과 거의 다 써버린 선크림을 한편에 남겨두고 내가 살던 방을 떠났다. 
‘집으로 돌아가요’ 하고 집 주인에게 말했으나 또 다른 여행지로 떠나는 사람의 마음과 더 닮아 있었다. 
돌아와 나는 지금 궁금해하는 중이다. 
내가 어떤 일과를 반복하고 싶은지. 
누구와 인사하며 지 내고 싶은지. 
어떤 것들로 내가 포만감을 느낄지. 
그리고 다음번엔 어디로 떠날지.


2017년 8월 20일


필자소개 김소연 시인. 
나조차 나를 낯설어하길 원하며 살고 있다. 
어제까지의 나와 다른 사람이 되고 싶다. 
낯선 사람이 되기 위하여 자주 여행을 떠난다. 
틈만 나면 떠나고 틈을 내서 떠난다. 
일 년의 반 정도는 낯선 장소에서 살아간다. 
낯익었던 것들이 돌연 낯설어질 때에 적는 문장, 그것만이 시가 되거나 시에 가까워진다고 믿고 있다. 
시집 <극에 달하다>, <빛들의 피곤이 밤을 끌어당긴다>, <눈물이라는 뼈>, <수학자의 아침>과 산문집 <마음사전>, <시옷의 세계> 등을 출간했다.

목록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