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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의 세상時 나침반 - 페미니즘이 어때서


서민의 세상時 나침반

서민



페미니즘이 어때서

 


한 달여쯤 전, 위례별초등학교 교사들이 갑자기 네티즌들의 공격대상이 됐다.

페미니즘 모임을 했다는 게 그 이유였다.

거기에 더해 위례별초 교사 한 명은 인터뷰 도중 이런 말을 했다.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축구하고 노는 것은 다 남자아이들이다. 교사가 이 모습을 당연히 여겨서는 안 된다왜 여자아이들은 운동장을 갖지 못하는가?”

이 교사를 비롯해 학교와 교육청에는 온갖 민원이 쏟아졌다.

이에 관한 기사에도 분노에 찬 네티즌들의 댓글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 누가 뛰어놀지 말라든? 뛰어놀아. 피해망상 걸려 남혐밖에 못하는 한심한 X.

- 여성우월주의자는 교단에서 내려와야 한다.

- 저런 교사는 좀 교단에서 퇴출시켜라. 여자라고 만날 봐줄 문제가 아니다.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공산주의 조직이라도 적발된 것으로 오해할 만하다.

교사들끼리 모여 서 페미니즘을 공부하는 게 도대체 뭐 그리 큰일 날 일일까?

페미니즘은 지금까지 남성에게만 지워진 짐을 여성도 나눠지자는, 한 마디로 성평등을 추구하자는 운동이다.

남편이 직장에 나가 돈을 벌어오고 여성은 집안일을 전담하는 게 가부장제의 프레임이라면, 페미니즘은 여성도 얼마든지 일을 통해 자아실현을 할 수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남편이 전업주부가 되는 것도 가능한 사회를 만들고자 한다.

이런 사회가 오면 남자가 가정경제를 책임진다는 부담을 내려놔도 되니, 남성에게도 불리할 게 없다.

다만 페미니즘은 일하는 여성을 위해 그간 남자들이 내팽개쳐왔던 가사노동과 육아를 분담해달라고 요구하고, 직장에서 여성을 보다 동등한 직원으로 봐달라고 한다.

너무도 당연해 보이는 이 얘기에 남성들은 불편함을 감추지 못한다.

오히려 페미니즘을 이야기하는 여성들을 마녀사냥하고, 그들을 일베와 동일시하려 한다.

지금은 사라진메갈리아라는 반()여성혐오 커뮤니티의 일부 페미니스트들이 거친 말로 남성을 공격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오랜 기간 여성들에게된장녀’, ‘김치녀’, ‘맘충이라는 언어폭력을 가했던 남성들에게 그 폭력에 대한 미러링(Mirroring)으로한남충이라는 단어를 쓴 게 그렇게 천인공노할 행동일까?

게다가 일베가 세월호 유가족을 비롯한 사회적 약자들을 비하해왔던 반면, 페미니즘은 억압받는 약자들이 목소리를 내자는 운동이니, 이 둘을 같은 선상에서 비교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놀라운 일은 해당 학교와 교육청에 민원을 제기하는 이들 중엔 학부모들도 포 함돼 있다는 사실이다.

부모라면 자기 자식들은 보다 나은 환경에서 살 수 있기를 바라는 게 인지상정이다.

그런데 페미니즘, 그러니까 성평등 운동을 불온하게 보고 해당 교사들을 규탄 하는 그들은 자신의 딸들도 성차별이 일상화된 사회에서 살기를 바라는 것일까?

변화는 지극히 당연해 보이는 일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남자는 의사, 여자는 간호사를 맡았던 병원 놀이가 성차별임을 지적한 페미니스트들이 아니었다면 지금처럼 여학생이 전체 의대생의 30% 이상을 차지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여자가 집에서 밥이나 하지'라는 고정관념에 문제제기를 한 페미니스트들이 없었다면, 일을 통해 성취감을 가지려는 여성들이 나올 수 없지 않았을까.

'초등학교 운동장을 왜 남학생들이 독점해야 할까'는 진작 나왔어야 함직한 의문이다.

우리는 은연중에 운동장을 넓게 쓰는 공놀이는 남학생만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했던 건 아닐까?

어쩌면 남학생들이 더운데 운동장에 나가 공놀이를 하는 게 싫을 수도 있는데 말이다.

해당 교사가 공놀이를 하는 남학생들을 운동장에서 쫓아낸 것도 아니고, 그들에게 공놀이를 자제하라는 강요를 한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이렇듯 거품을 물고 해당 교사들을 해임하라고 요구하는 목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우리 사회가 아직도 성숙하지 못한 사회라는 걸 새삼 느낀다.

아니, 남녀가 운동장 좀 같이 쓰자는 게 도대체 뭐가 나쁘냐고요.






필자소개 서민 

단국대학교 기생충학 교수이자 칼럼니스트. 

그의 글은 가 벼운 듯하면서 풍자와 반전, 사회를 보는 건강한 시선을 묵직하게 담고 있다. 

인터뷰어 지승호와 나눈 인터뷰를 실은 <서민의 기생충 같은 이야 기>, 서평집 <집 나간 책>, 각종 기생충 이야기를 담은 <서민의 기생충 콘 서트> 등 다양한 책을 세상에 내놓고 있으며, 블로그 ‘서민의 기생충 같은 이야기(seomin.khan.kr)’에서도 그의 글을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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