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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고의 매직 라이프 - 프랑스 들판에서 엄마와 신나게 고사리를 땄다

마고의 매직 라이프
글과 사진 마고


프랑스 들판에서 엄마와

신나게 고사리를 땄다




 

부모님과 함께한 2주의 시간이 금세 지나가고 아버지는 오전 비행기를 타기 위해 새벽 일찍 파리로 떠나셨다.

아버지와 헤어지는 마지막 밤, 하늘에는 별이 반짝였다.

아버지는 내게 북두칠성을 가르쳐주셨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아버지와 함께 바라본 밤하늘이었다.

아버지와 삼촌, 이모는 한국으로 떠나셨지만 엄마는 나와 좀 더 함께 지내시기로 했다

다행히 엄마가 계셔서 허전함이 덜했지만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헤어짐은 언제나 아쉬움과 후회를 남긴다

누구나 한 번씩은 부모와 이별을 하게 되어 있지만 그래도 매번 후회를 반복한다.





바구니 하나 들고서 고사리가 가득한 들판으로


우리 집은 작아서 엄마가 편히 계시기엔 마땅치 않았는데 다행히 프랑수와즈 아줌마가 뒷 방을 내어주었다.

집에서 100미터도 채 안 되는 거리라 다와는 곧잘 그리로 가서 할머니와 함께 동화책을 읽으며 잠이 들었다.

프랑수와즈 아줌마는 호기심 많은 소녀처럼 엄마에게 이런저런 궁금한 것이 많았다.

엄마가 프랑스에 머물렀던 두 달 동안 아줌마는 거의 매일 하루에도 몇 번씩 우리 집으로 찾아오셨는데 그럴 때마다 항상 부엌에서 뭔가를 하고 계신 엄마를 보고 깜짝 놀랐다.

아줌마는 마냥 신기해했지만 한국 요리라는게 다듬고 씻고 하다 보면 하루 반나절이 가기 일쑤이니 내게는 익숙한 엄마의 모습이었다.

엄마는 한창 야들야들한 잎이 오른 민들레를 따서 무치고 질경이와 달래를 찾았다.

잡초 라고 무지막지하게 뜯어 버리던 것들이었다.

그리고 그 싱싱한 풀들을 거대한 대야에 담아 바로 무쳐서 먹었는데 그 어마어마한 양을 본 우리 시어머니는 수십 인분은 족히 되겠다고 깜짝 놀라시기도 했다.

마침 프랑수와즈 아줌마가 맛이 일품인 갈색 상추를 하루에 대 여섯 포기씩 가져다주셨는데 엄마는 매번 이 상추들로 겉절이를 하셨다.




엄청난 양이었지만 우리는 남기지 않고 다 먹어 치웠다

싱싱한 채소를 워낙 많이 먹다 보니 하루에 세 번은 화장실에 다녀왔다

몸이 가볍고 기운이 넘쳤다.

온돌을 함께 만들었던 존과 아멜네 집 근처에 있는 거석 유적지를 구경하러 갔다가 고사리를 발견한 엄마는 그 후 고사리를 찾으러 가자고 여러 번 말씀하셨다

마침 고사리가 피기 시작한 4월이었다

이파리가 올라오기 시작하면 독성이 강해지기에 동그랗게 말린 어린 순만 먹을 수 있다

우리 가족은 엄마와 함께 고사리가 많이 자라는 근처의 군인캠프로 갔다

한가한 길가에 차를 세우고 바구니나 봉지를 하나씩 들고 길가를 유심히 살폈다

생 전 고사리를 따본 적이 없는 나는 대강대강 길을 쳐다보며 엄마를 따라 걸었다

얼마 지나 지 않아 엄마가고사리다!” 하고 외치셨다

마치 심마니가심봤다하는 소리처럼 기분 좋게 들렸다

그 후 나와 남편과 아이들도 고사리를 찾았고 우리는 가져간 바구니를 반 정도 채워서 집으로 왔다.






고사리나물 맛에 푹 빠진 프랑수와즈 아줌마


며칠 후 아이들과 남편과 함께 물을 뜨러 간 엄마는 시간이 한참이나 지나서야 집에 돌아왔다

엄마는 볼이 발갛게 상기되어 신이 난 어린아이처럼약수터 근처 언덕을 오르니 고사리 천지였다고 말씀을 하셨다

고사리 두께가 어마어마하게 두껍고 튼실하더라하시면서아직 고사리가 많이 열려 있으니 다시 한 번 가야겠다고 덧붙이셨다.

허리도 아픈 엄마가 웅크린 자세로 고사리를 따야 하는 상황이 걱정도 됐지만 바구니 한가득 고사리를 채워 집에 돌아오는 날의 엄마는 기운이 넘치셨다.

그렇게 우리는 친구 집에 저녁 초대를 받아 밥을 먹으러 갔던 날에도 그 집 근처에서 고사리를 따기에 바빴고, 축제 구경하러 간 날에도 축제 장소엔 들어가지도 않고 달래를 따기에 바빴다.

엄마는축제나 관광지 같은 것엔 관심도 없다고 말씀하시면서괜히 기름 쓰지 말고 나물 캐거나 돌멩이 주우러 가는 게 낫다, 동네 교회에나 갈 수 있으면 좋다고 하셨다

프랑수와즈 아줌마는 고사리의 독성을 걱정하면서 위험하니 굳이 먹지 말라고 말렸지만 엄마는 개의치 않고 싱긋 웃으면서 삶은 고사리를 하나하나씩 돗자리에 깔아 놓으셨다.




며칠 후 고사리를 신나게 무쳐 먹고도 아무 문제가 없는 우리 가족을 보고 고사리나물 맛을 본 프랑수와즈 아줌마는 고사리의 맛에 푹 빠졌다.

아줌마는 자기네 집 근처에 있는 벌판에 고사리가 많다며 우리를 안내했다.

고사리 천지인 벌판에 도착하자 엄마는 볼이 발갛게 상기되어 어디서 그런 힘이 나오는지 허리 통증도 잊으신 듯 고사리를 따는 데 전념하셨다

그간 아줌마는 엄청난 속도로 번져서 금세 밭을 이루는 고사리를 보면서무지 막지하게 땅을 점령하는 잡초’라고만 생각했다고 고백했다.

자기 친구 중에도 땅에 고사리가 너무 많이 자라 골치 아파하는 이가 있는데, 이렇게 다 뜯어주면 아주 좋아할 거라고 했다

아줌마는 고사리를 삶아서 겨자를 넣은 샐러드 소스에 찍어서 친구들과 함께 먹 었는데 맛이 버섯과 비슷하다며 맛있게 먹었다고 한다.

아줌마 또한 우리 엄마만큼 열정에 넘쳐서함께 고사리 따는 것을 꼭 계속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프랑스 파티에서 한국인의 밥상과 손맛을 선보이다


텃밭을 직접 가꾸거나 좋은 먹거리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눌 때 남편은 항상 길가에서 나물을 뜯고 있는 한국의 아줌마들 이야기를 빼놓지 않는다.

이곳에서도 야생식물들에 관한 관심이 유행처럼 번져 많은 책들과 정보가 넘쳐나지만 막상 집 앞에 있는 약초를 몰라보고 약국에 가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지식과 삶의 괴리가 큰 서양인인 남편의 눈에 약초나 나물을 캐는 아줌마들의 모습은 살아 있는 지식처럼 멋져 보였나 보다

엄마도 만날 겸 집에 놀러온 엘리즈 언니가 부엌 바닥에 앉아 고사리를 다듬는 엄마의 모습을 봤다.

언니는 리파이 파티에서 한국 음식을 하자고 제안했고 엄마는 흔쾌히 좋다고 하셨다.

그렇게 우리는 손님들에게 한국식 시골밥상을 선보이게 되었다.

메뉴는 한국인에게는 너무 익숙한 불고기, 미역국, 두부조림, 계란 장조림 등 밑반찬 몇 가지였는데 엄마의 밥상을 본 사람들은 넘쳐나는 반찬 가짓수에 입이 쩌억 벌어졌다.

서양의 파티에는 손님들도 음식을 하나씩 가지고 와서 함께 나눠 먹는다

처음에는 합리적 으로 보였고, 파티를 주최하는 입장에서도 편하겠다 생각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보니 꼭 그렇지만도 않다.






음식들이 대부분 거기서 거기에 성의가 없고 음식을 할 줄 아는 사람들이 점점 줄어드니 사오는 경우도 많다

우리는 한국 밥집 스타일로 반찬을 팍팍 리필해줬다.

남편은 한국 음식이 생소한 사람들에게 설명을 해줬다.

한국에선 음식점에 가면 모르는 아줌마에게도이모라고 부르고 반찬이 리필이 된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심지어 가족관 계인 이모와 삼촌도 이름을 부르는 이곳에서, 게다가 음식점에서 물 한 잔도 돈을 주고 시켜야 하는 이곳 사람들에게 이런 이야기들은 정을 느낄 수 있는 예가 되었다

서양의 파티 와 다르게 잔칫집에는 뭐니 뭐니 해도 맛있는 밥을 지어주는 엄마(아주머니)가 있고 그 엄마의 따듯한 손맛과 인심이 있기에 우리 마음까지 든든해지는 것이다.



필자소개 마고

레게 음악 뮤지션인 프랑스인 남편, 다람쥐처럼 온종일 뛰어다니는 아이 셋과 함께 잘 알려지지 않은 지역을 떠 돌아다니며 사는 마고는, 낮에는 살림을 하고, 밤에는 사계절의 변화와 닮은 그림을 그린다. 

현재 프랑스 서부 브르타뉴 지방 의 작은 시골 마을에서 자연이 주는 무구한 은혜를 껴안으며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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