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피투데이

문화
count
2,747
여행, 책을 만나다 - 별들에겐 옳고 그름이 없다, 그냥 거기 있을 뿐 <요르단>

여행, 책을 만나다
글과 사진 이희인


 

별들에겐 옳고 그름이 없다

그냥 거기 있을 뿐

 

찾아간 곳 요르단

동행한 책 칼 세이건 <코스모스>

 






이집트를 탈출한 모세와 그의 백성들이 40여 년 광야와 사막을 헤매다 마침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발견하게 된다고 성경에 적혀 있었다

그러니까 우리가 차를 몰고 누비고 다닌 그 땅이 바로 모세와 백성들이 한 세대에 걸쳐 방황하고 헤맨 땅임에 틀림없다

어떤 땅에 대해, 그 땅을 거쳐 간 사람들에 대해 상상하는 일은 늘 가슴이 뛴다

수도 암 만을 출발한 그날 오후, 친구의 차는 요르단의 이름난 관광지이자 세계적인 불가사의라는 페트라 유적을 향해 가는 중이었다.

중동의 요르단에 수년간 파견근무 가 있는 친구가 늘 그쪽으로 한번 넘어오라고 했다

가족이 함께 이사해 살고 있지만 타향의 삶이 외롭고 적적하긴 어쩔 수 없는 듯했다.

그 해가 저물 무렵, 친구가 사는 요르단으로 향했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의 얼굴은 검게 그을려 있었다




친구의 차로 이튿날 아침 여행을 떠났다

페트라와 와디럼 사막 외에도 현 지인들만 아는 숨은 협곡이나 장소를 알고 있다고 했다

가장 궁금한 페트라 유적으로 먼저 향했다.

너른 주차장에 차를 세운 뒤 안내된 길을 따라 들어서자 절벽 사이로 긴 통로가 이어졌다

한참을 걸어 들어가자 절벽의 통로 끝에 뭔가 심상치 않은 광경이 기다리고 있더니, 통로를 빠져나오자마자 탁 틘 협곡 안쪽에 드넓은 광장이 드러나면서 정면에 늠름하게 버티고 선 유적이 나타났다.

페트라 사진에 거의 빠짐없이 등장하는 알카즈네 신전이었다

불그죽죽한 빛깔의 신전은 외부에서 돌이나 인공 자재를 가져다 쌓거나 덧붙인 흔적 없이, 눈앞에 버티고 선 거대한 절벽을 안쪽으로 깎아 만든 천연의 요새였다

여섯 개 돌기둥이 받치고 선 신전은 흡사 SF 영화에나 나올 법한 판타지 속 궁전처럼 보였다

고개를 꺾어 한참 올려다보고 섰자니 한없이 작고 초라한 인간이 높은 신의 세상을 우러 르는 모습이 되었다.

오래전 나바테아라는 나라의 수도였다는 이곳은 선사시대 때부터 사람들이 모여 산 곳이라 했다

고대부터 로마와 아라비아, 인도로의 중계무역이 이루어진 중심지로 수많은 대상들이 이곳을 거쳐 갔다고 했다

쉽게 상상이 가지 않았다. 저 웅장하면서도 접근을 불 허할 것만 같은 신성한 바위의 궁전에 사람들이 터를 잡아 일을 하고 일상을 살아가는 모습은 좀체 그림이 그려지지 않았다

지금은 관광객들만이 공간을 차지하여 저마다 탄 성을 내지를 뿐이었다

알카즈네 신전 외에도 유적은 안쪽으로 더 길게 이어져 옛사람들이 살았던 삶의 흔적을 짐작하고 상상하게 하였다.

하지만 그곳에서 더 머뭇거릴 수가 없었다. 그날의 목적지인 와디럼 사막까지 부지런히 달려가야만 했다

사막의 베두인족 캠프에서 하룻밤을 보내기로 한 것이다.




친구의 차가 와디럼 사막 초입의 여행사에 도착한 것은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던 초저녁 이었다

거기다 차를 주차해둔 뒤 여행사가 제공하는 지프로 갈아탔다

한참을 들어가야 하는 사막 안쪽으로는 따로 길이란 게 없어서 지프가 아니면 달릴 수도, 목적지를 찾아 갈 수도 없었다

와디럼 역시 붉은 사막이었다. 선홍빛이라 할까, 다홍빛이라 해야 할까

알고 있는 컬러의 지식을 동원해도 쉽게 정의할 수 없는 빛깔의 사막

사구와 모래로 된 사막이 아니라 태곳적 거인족과도 같은 거대한 바위산들이 붉은 사막 위에 우쩍우쩍 웅크리고 있는 독특한 지형의 사막

살바도르 달리의 그림에서나 봤을 법한 초현실적 빛깔 과 모양의 사막이었다

모세의 백성들도 어쩐지 이 사막을 거쳐 갔을 것만 같았다

사막 너머로 저물어가는 태양과 반대 방향으로 지프의 그림자가 길게 드러눕기 시작했다.

와디럼 사막은 대하 역사 영화를 주로 제작해 영국 왕실로부터 작위를 받은 바 있는 데이비드 린 감독의 영화 <아라비아의 로렌스>의 촬영 장소이자 실제 역사적 배경이 된 장소이기도 했다

영화 초반이던가, 사막에 흩어져 있는 베두인족을 설득하기 위해 애쓰던

영국군 장교 로렌스가, 저 멀리 지평선에 한 점으로 등장해 차츰 눈앞으로 다가오던 족장을 원 씬으로 바라보던 장면은 영화사에 길이 남을 명장면이 되었다

이 사막에서 어떻 게 영화가 촬영되었으며, 실제 역사적 배경이 된 사건들이 어떻게 진행되었을까.

그런 것 을 상상하며 바라보는 사막은 그저 텅 빈 적막의 사막만은 아니었다.

늦게 도착한 탓에 우리가 예약한 베두인족 텐트에는 벌써 저녁거리가 마련돼 있었고 밤을 보낼 캠프파이어도 준비돼 있었다

텐트 안에 마련된 뷔페 음식이 먼 길을 달려온 여 행자의 허기에 부응하듯 맛나고 든든했다

베두인 현지인들은 빨갛게 달군 숯덩이에 불 을 붙여 물담배를 피워대기 시작했다.

식사가 끝나기 무섭게 텐트 앞 너른 마당에서 캠프파이어가 시작되었다

끝과 시작을 알 수 없는 광활한 사막이 온통 우리 것이었다

그렇다고 시끄럽게 노랠 부르고 춤을 추는 파티가 아니었다

베두인 악사가 조용히 현악기 따위를 뜯고 그 악기에 맞춰 구슬픈 노래 를 불렀다

둥글게 둘러앉은 중앙에 탁, , 타들어가는 장작더미를 바라보다가 튀어 오 르는 불꽃을 따라 시선을 천천히 올려다보다 하늘에 시선이 가 닿았다.




! 언제 저렇게 많은 별들이 몰래 파티에 합석해 들어와 있었던가

세상에 저렇게 많은 별들이 하늘에 숨 어 있었구나. 우리가 보지 못하거나 잊고 있었구나

우리의 짧은 감각으로 다 표현해내기 엔 감당하기 힘들 정도의 별이다

그 별들을 카메라에도 담고 마음에도 담았지만 제대로 그걸 가져오지는 못했다.

한참 뒤에야 나는 천문학의 고전이자 그 자체로 아름다운 산문인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를 읽었다

꽤 두꺼운 책인데 평생 우주와 별을 사랑한 한 과학자의 정열과 헌신, 인 생이 빼곡 담겨 있었다. 그 책 정도라면 그 밤 내가 본 별을 온전히 떠올리고 가져올 수 있을까?

 

 

우주에는 은하가 1,000억 개 있고 각각의 은하에는 저마다 평균 1,000억 개의 별이 있다.

(중략게다가 각 은하에는 적어도 별의 수만큼의 행성들이 있을 것이다

이토록 어마어 마한 수의 별들 중에서 생명이 사는 행성을 아주 평범한 별인 우리의 태양만이 거느릴 가 능성은 얼마나 될까

(중략우리의 특별한 행운을 생각하는 것보다 우주가 생명으로 그 득그득 넘쳐 난다고 생각하는 편이 훨씬 더 그럴 듯하다

- 칼 세이건 <코스모스>

 

셈과 상상이 불가능한 이런 얘기들이 책 속에 가득했다

멀리 원시 인류가 바라본 별들로부터 고대 이집트, 그리스, 로마와 동양의 현자들 이야기, 현대까지 이어진 별과 우주를 향한 인간의 사랑과 집념이 딱딱한 과학 용어가 아닌 인간의 온기가 흐르는 글들로 채워져 있었다

특히 저자도 합류하여 1977 8, 우주 멀리로 쏘아 올린 보이저 1, 2호 프 로젝트에 관한 얘기는 현재진행형으로, 아련하다

인간이 만든 인공물 중 가장 먼 곳까지 날아간 물체라 했다

벌써 40. 얼마 전 마침내 해왕성, 천왕성을 넘어 태양계 바깥으로 향하고 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그 절대고독과 어둠, 빛과 방향을 분간할 수 없는 우주로 항해하고 있을 보이저 1, 2호들도 하나의 별이 되었을 것이다.

<코스모스> 같은 책을 읽다 보면 우리가 접하는 지식에도 몇 개 층위가 존재한다는 생각이 든다

삶과 일상의 문제를 탐구하며 법과 정의, 정치를 따지는 인문 지식이 있는가 하면, 그러한 가치 판단을 넘어서는 긴 호흡의 인류학이나 고고학 같은 책들 그리고 인 간 존재와는 무관해 보이는 자연과 과학을 다룬 책들이 그렇다.

캠프파이어에서 빠져나와 별빛 아래서도 붉게 반사되는 사막을 걸으며 하늘을 바라보 는 것만으로도 행복하고 부끄러워졌다

영화 <플래툰>에서 생사가 오가는 전투를 끝낸 뒤 맞은 고요한 밤, 잠복근무 중이던 군인이 내뱉은 다음과 같은 말을 그때는 기억하지 못했다.

 

 

“난 여기가 좋아, 특히 밤엔. 저 별들…. 별들에게는 옳고 그름이 없어. 그냥 거기 있을 뿐 이야.” 

- 이명현 <이명현의 별 헤는 밤>

 

 

별은 탐험가와 순례자, 여행자들의 오랜 벗이었다

수천 년 전 이집트를 탈출한 모세와 그 백성들도 저 별을 보며 가나안을 찾아갔을 터다

별의 언어는 알 수 없지만, 우리에게 어떤 삶의 길을 시시때때로 암시해주는 것은 아닐까. 그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었다.

 

 

 

필자소개 이희인 

공식적 직업은 카피라이터

비공식적 직업은 여행가

언제부턴가 자신의 카메라가 기가 막힌 풍경보다는 사람 들의 변화무쌍한 표정을 좇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

지은 책으로는 <현자가 된 아이들>, <여행자의 독서> 등이 있다.

 

목록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