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유난히 서 있는 시간이 많았다.
광주에 가야 하는데 기차표 예매를 하루 전에 했다가 입석 밖에 남아 있지 않았던 것이 그 시작이었다.
간이 의자는 이미 누군가가 다 차지해 있었다.
돌아오는 기차에서는
아무 데나 앉고 싶다는 생각을 해보았지만 아무도 그러질 않아서 나도 그냥 서 있었다.
여행지에서 아무 데나 철퍼덕 앉곤 하던 기억들이 떠올랐다.
오늘처럼 누군가가 불러주지도 않았는 데 나는 여기저기 매일매일
쏘다녔다.
오늘은 누 군가가 몇 번이며 꼭 내려오라고 불러주어서 찾아 간 것인데, 아무 이유가 없을 때보다 조금쯤 기차 를 타는 일이 즐거웠을 법도 한데, 그런
마음이 생기질 않았다.
피곤함이 밀려오는 귀갓길에 버스 정류장에 서서 생각했다.
‘오늘은 유난히 서 있는 시 간이 많았구나’ 하고. ‘이런 날의 피곤함은 왜 달 지 않을까’ 하고.
‘아무래도 나는 아무렇지도 않고 아무 이유도 없는 것에 관해서만 홀가분해하는 사 람이 아닐까’ 하고.
그리고 시를 썼다.
이유가
있을 때에는 우는 게 마땅할 때에도 울지 않는 나에 대하여.
아무 이유가 없고 아무도 없는 데에서나
울고 싶어지는 것에 대하여.
- 2017년 9월 14일
필자소개 김소연 시인
나조차 나를 낯설어하길 원하며 살고 있다.
어제까지의 나와 다른 사람이 되고 싶다. 낯선 사람이 되기 위하여 자주 여행을 떠난다.
틈만 나면 떠나고 틈을 내서 떠난다.
일 년의 반 정도는 낯선 장소에서 살아간다.
낯익었던 것들이 돌연
낯설어질 때에 적는 문장, 그것만이 시가 되거나 시에 가까워진다고 믿고 있다.
시집 <극에 달하다>,
<빛들의 피곤이 밤을 끌어당긴다>, <눈물이라는 뼈>, <수학자의 아침>과 산문집 <마음사전>, <시옷의 세계> 등을 출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