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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고의 매직 라이프 - 집으로 가는 길의 대모험


마고의 매직 라이프

글과 사진 마고

 

  

집으로 가는 길의 대모험

 



 

아이들이 학교를 마치는 4시 반에 맞춰 엄마와 함께 막내를 유모차에 태우고 길을 나섰다

가는 길에 나물도 캘 겸 점심을 먹고 서둘러서 길을 나섰다

엄마와 함께 가는 길에 새소리를 들으면서 길을 걷고 싶었지만 우리가 걸었던 4차선 도로 쪽은 너무나 시끄러웠다.

그렇게 길을 살짝 틀어 지나가는 차가 거의 없는 한적한 길로 빠졌다

매일 지나다니는 길에서 살짝 벗어났을 뿐이니 설마 길을 잃겠나 싶었다.

그래도 워낙 길눈이 어두운데다 표지판 하나 없는 비슷비슷한 시골길은 더 헤매는 편이기에 정신을 바짝 차리고 길을 걸었다.





나물 캐고 뻐꾸기 소리 들으며 집으로 향하다

 

도시의 건물과 상호에 익숙한 내게 간판 하나 없는 시골길은 길을 잃기가 십상인 곳이다

그러나 다행히 시간에 맞춰 애들 학교에 도착할 수 있었다

아이들과 동네 구멍가게에서 군것질거리를 사서 다시 집을 향해 길을 떠났다

아까 왔던 샛길을 따라 걸으며 뻐꾸기 소리를 듣고, 멈춰 서서 고사리도 캐고, 나무 그늘에 앉아서 간식도 먹고 하면서 쉬엄쉬엄 걸었다

우리가 걸었던 샛길에선 사람 한 명 마주칠 수 없었다

인적 없는 휑한 나무그늘에 서 아이들과 과자를 먹으며 엄마의 어릴 적 이야기를 들었다

엄마가 자란 시골에서는 농 작물 위에 그늘이 드리워지지 않도록 밭 근처의 나무는 잘라버렸다고 한다

그래도 몇몇 나무는 베어지지 않고 큰 그늘을 드리웠고 그 아래 마을 사람들이 모여앉아 이야기꽃을 피우곤 했다고 하셨다.

엄마는 달래와 질경이 그리고 고사리를 뜯으면서 걸었다

엄마의 레이더망에는 그런 것만 보이는 것 같았다

신기하게도 엄마의 그런 행동은 전염성이 강해서 옆에 있는 우리들도 엄마를 따라 보이는 것들을 뜯어서 비닐봉지에 담으면서 걷게 되었다

그렇게 열중해서 나물을 캐다 보니 시간이 훌쩍 지나가버렸다.




그렇게 길을 걷다가 갑자기 우리 눈앞에 탱크 한 대가 나타났다

가슴이 철렁했다

물론 아무도 타고 있지 않은 움직이지 않는 탱크였지만 어쨌든 마주쳐서 그리 반가운 것은 아니다

알고 보니 우리가 엉뚱한 방향으로 너무 많이 걸어서 인근의 군부대에 도착해버린 것이다.

눈앞에 펼쳐진 고사리와 나물들에 정신이 팔려 군부대까지 오는 줄도 모르고 걸어왔다.

이미 해가 질듯 어둑어둑해져오는 하늘을 보고 딸아이가 울먹이며 말했다

엄마, 집을 못 찾아서 여기서 자게 되면 멧돼지가 달려들 거야. 아빠가 보고 싶어.”

딸아이로서는 운전도 못 하고 길눈이 어두운 엄마와 이곳 지리는 전혀 모르는 할머니를 믿을 수 없었을 것이다.

나도 당황스러웠지만 어린 아이처럼 울 수도 없는 일이었다

지나가는 사람 하나 없고 차 한 대 없는 이 휑한 군부대는 예전에 남편이운전을 배우기 좋은 한적한 곳이라며 나를 데려왔었던 곳이었다.

고사리나 버섯을 따기 위해 오기도 했었다

그 규모가 너무 커서 자동차를 타고도 길을 잃기도 한다고 들었었다

밤에 그곳을 거쳐 집에 오는 길에는 쉽게 멧돼지 등 야생 동물들을 볼 수가 있다.




십자가를 표지판 삼아 겨우 집에 도착하다

 

어느새 저녁이 되어 기온이 내려가며 바람이 차가워지기 시작했다

여기서 빠져나가지 못 하면 밤새 추위에 벌벌 떨면서 야생동물들을 물리쳐야 할 텐데 그런 상상을 하니 오싹해졌다

서둘러 아가를 태운 유모차를 반대로 돌려 왔던 길을 되돌아가기 시작했다

처음으로휴대폰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그나마 유일하게 엄마가 휴대폰을 갖고 계셨지만 한국이 아닌 이곳에서는 사진기의 역할을 대신하고 있을 뿐이었다.

아직 만 네 살도 안 된 둘째는 피곤하다고 찡찡대기 시작했다.

그도 그럴 것이 하교 후 거의 서너시간을 걷고 있었다

쉬엄쉬엄 걸었지만 그래도 꽤 먼 거리였다

유모차에 타고 있던 아가도 유모차가 지겨운지 온몸을 들썩거리며 찡찡대기 시작했다

예전부터 허리가 불편한 노모가 징징대는 아가를 업고 길을 걸었다.

불안하고 걱정스러운 마음을 들키지 않으려고 마음을 추스르며 왔던 길을 돌아가기 시작했다

고사리고 뭐고 길에만 집중을 하며 걸었다

갈림길이 나올 때마다 왼쪽 길로 틀어야 하나 오른쪽으로 가야 하나를 망설이며 걸어가는데 눈에 익은 십자가가 시야에 들어왔다.

 


 

돌로 만들어진 오래된 십자가인데 가톨릭 신자인 엄마의 눈에 띄어서 오는 길에 유심히 바라봤던 것이었다.

자동차를 타고 지나다 보면 길가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오래된 십자가가 예전에는 동서남북 지표를 가리키는 역할을 했다는 이야기가 떠올랐다

십자가가 나 를 살렸구나생각하며 십자가에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왼쪽으로 난 길로 방향을 틀어 걷기 시작했다

그리고 아까 오면서 봤던 소들에게 다시 인사를 했다.

그렇게 우리는 먼 길을 돌아 집으로 돌아왔다.

그날이 아이들에게는 큰 모험담으로 남았다.

불편하고 힘든 순간들을 잘 지나고 나면 더욱 특별한 추억이 된다.

그러면서 더 단단해지고 여물어간다

무교였던 부모님은 내가 열살이 되던 해 천주교를 택해 세례를 받았고 우리도 유아세례를 받았다.

하지만 성인이 되고 독립을 하면서 나는 자연스럽게 성당을 가지 않게 되었다.

매일 졸음을 참고 참여했던 지겨운 미사를 보지 않게 된 것이다

어쩌다 보니 가톨릭 국가 에서 자란 신랑을 만나게 되어 이 작은 동네에도 교회는 하나씩 있지만 여태껏 미사를 볼 일은 한 번도 없었다

우리 동네에 있는 작은 성당에 미사를 보러 오는 사람들은 꼬부랑 노인들이 전부이고 그나마도 몇 명 안 된다.





켈트 시대서부터 전해 내려온 묵직하고 아름다운 십자가

 

믿음이 사라진 이곳에서 사람들에게 성당은 권력을 부리는 피곤한 존재일 뿐이다

이웃들 말로는 이곳 성당이 오랫동안 정부의 역할을 하며 사람들을 괴롭혀왔다고 한다

때문에 동네 입구마다 걸려 있는 십자가의 모습도 내심 곱지 않게 보고 있던 차였다

하지만 엄마와 함께 산책을 하면서 지나치게 된 오래된 십자가들에는 뭔가 끌리는 구석이 있었다

모양과 크기가 다양하고 장식 또한 각기 달랐던 그 십자가들은 하나같이 묵직한 느낌을 주었다

알고 보니 그런 십자가 중에 오래된 것은 예수님이 태어나기도 전에 만들어진 아주 오래된 것들이라고 한다

가톨릭의 대표적인 심벌로 사용되는 십자가가 예수 탄생 이전의 켈트 시대서부터 중요한 표지의 하나로 사용됐었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이곳 사람들의 이야기에 따르면 켈트족들은 무당이나 마법사들처럼 신비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영적인 것을 중시하며 부족 단위로 지내던 그들의 영토에 나라를 통합하려는 로마군들이 쳐들어오면서 켈트족의 모든 문서들은 불태워지고 사라졌다고 한다

그 후 켈트족의 전통은 거의 입으로만 전해지게 됐고 마지막 켈트 문화를 지속하려는 사람들이 아일랜드와 이곳 브르타뉴 지방에 살고 있다고 한다.




프랑스의 유명한 만화영화인 <아스테릭스>는 세계를 정복한 로마인들에 대항해서 싸우는 골족(켈트족의 여러 부족 중 한 부족)의 이야기인데, 역사 교과서처럼 일방적으로 승자의 입장에서 쓰이지 않아서 이곳 사람들에게 인기가 많다.

무속신앙과 전통신앙 등이 미신으로 치부되며 사라지고 있는 현대사회, 하지만 우리가 수천년 동안 믿어왔던 무언가가 순식간에 사라지는 것이 안타깝기도 하다.

세상에 하나의 신이 있든 다양한 신이 존재하든, 어떤 신이든 자신의 성전인 지구를 파괴하고 있는 인간들의 행동을맞다고 하지는 않을 것이다

엄마가 믿는 그 신이 진짜이건 가짜이건, 심지어 신이 존재하든 존재하지 않든 간에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손주들을 위해 사랑을 담아 죽을 끓이는 엄마의 마음이고 꽃과 나무를 심는 엄마의 따뜻한 사랑이다.

그래서 엄마의 사랑은 모든 것을 다 덮어줄 수 있다.

 

 

필자소개 마고

레게 음악 뮤지션인 프랑스인 남편, 다람쥐처럼 온종일 뛰어다니는 아이 셋과 함께 잘 알려지지 않은 지역을 떠돌아다니며 사는 마고는, 낮에는 살림을 하고, 밤에는 사계절의 변화와 닮은 그림을 그린다

현재 프랑스 서부 브르타뉴 지방 의 작은 시골 마을에서 자연이 주는 무구한 은혜를 껴안으며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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