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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연의 낯선 사람이 되는 시간 - 빈집 <한국 제주>


김소연의 낯선 사람이 되는 시간

글과 사진 김소연

 


 

빈집

 

 




 

이 집의 주인은

이 집을 버린 사람.

 

 

이 집에는 누구든 들어올 수 있다

안에 누구 계세요?

묻지 않고 문을 슬며시 열어도 된다.

 

 

이 집의 주인은

이 집을 지키는 것들.

 

 

갈라진 방바닥에선

억세게 솟구친 키 큰 풀들.

색을 잃은 커튼에 묵직하게 얹은 먼지들.

 

 

누군가

다녀간 숱한 신발 자국들.

숱한 낙서들.


 

해가 뜨면 빛이 들고

해가 지면 어둠이 드는

 

 

이 집의 손님은 허리를 구부려

방바닥에 널브러진

인형을 줍는다.

 

 

이 집을 찾아온 사람을 위해 

누군가 남겨놓은 것 같아서.

 

 

한국, 제주시, 2013







시골에 가서 오래 머물면 빈집을 기웃거리게 된다.

분명 아무도 살지 않는데, 우편함엔 고지서가 묵직하다.

수도요금, 전기요금, 전화요금 같은 것들 이 수개월 동안 버려진 집 대문 앞에 꽂혀 있다

청첩장 같은 것도, 연하장 같은 것도, 성탄 카드 같 은 것도 꽂혀 있다

너무 오래되어 흰 봉투가 누렇게 변해 있고 제대로 다물려 있지도 않다

이 집의 주인인 양 그것들을 꺼내어 읽어본다.

모르는 사람의 이름을 한 글자 한 글자 읽어본다

다시 우편함에 꽂아둔다.

어떨 땐 집 안으로 들어가본다

아무 도 없지만 누군가 있는 것만 같다

누군가가 있었으니까

노인이 살았나 보네

아이가 살았나 보네

버려진 것들을 통해서 버린 사람들의 사연을 상상 해본다

그래서일까. 나는 이사를 나올 때마다 내가 살았던 흔적들을 말끔하게 없애기 위해서 필요 이상의 정성을 들였던 것 같다

무언가를 남긴다는 게 무언가를 들킨다는 것과 같은 의미 같아서.

 

 

- 2013 8 24


 

 

필자소개 김소연 시인.

나조차 나를 낯설어하길 원하며 살고 있다

어제까지의 나와 다른 사람이 되고 싶다

낯선 사람이 되기 위하여 자주 여행을 떠난다.

틈만 나면 떠나고 틈을 내서 떠난다

일 년의 반 정도는 낯선 장소에서 살아간다

낯익었던 것들이 돌연 낯설어질 때에 적는 문장, 그것만이 시가 되거나 시에 가까워진다고 믿고 있다.

시집 <극에 달하다>, <빛들의 피곤이 밤을 끌어당긴다>, <눈물이라는 뼈>, <수학자의 아침>과 산문집 <마음사전>, <시옷의 세계> 등을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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