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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고의 매직 라이프 - 텃밭을 가꾸며 자연스럽게 알게 되는 것들

마고의 매직 라이프

글과 사진 마고


텃밭을 가꾸며
자연스럽게 알게 되는 것들





아파트 안에서 엄마가 정성스럽게 가꾸던 화분들만 가끔 바라볼 뿐 생전 물 한 번 줘본 적 없는 내가 처음 프랑스시골로 이사 와서 한 일은 마트에서 프로모션 세일을 하는 6개들이 금잔화 화분을 사서 대문 앞에 심은 것이다.
그렇게 처음 땅에 심어 본 금잔화는 비실비실하다가 그 해를 넘기고는 다시 볼 수 없었다.
금잔화가 한해살이 꽃이라곤 하지만 그래도 잘 자란 한해살이 꽃들은 씨앗을 많이 남겨 다음 해에 새싹이 오르기도 한다.
다음 해 봄날 우리 집 텃 밭에 예쁜 주황색 금잔화가 햇살을 받으며 한 가득 피어났다.
그렇게 거저 찾아와 활짝 자라준 금잔화가 반가워 또 대문앞에 옮겨 다 심고는 물을 한껏 주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모든 꽃마다 가지치기를 하거나 옮겨심기에 좋은 시기가 따로 있는 법인데 그냥 보이는 대로 옮겨심었던 금잔화가 잘 자란 걸 보면 ‘금잔화는 이동에 강하다’는 속설이 맞는 것 같다.
물론 독성이 있는 잡초라 프랑수와즈 아줌마는 얼른 뽑아버리라고 하기도 했지만 말이다.




평화롭고 아름다운 꽃 천국, 프랑수와즈 아줌마의 정원

어쩌다 처음 들르게 된 프랑수와즈 아줌마의 정원은 나에게는 거의 충격이었다.
깡마른 아줌마 혼자서 어떻게 이 큰 정원을 건강한 식물들로 빼곡히 가득 채웠을까.
아줌마의 텃밭은 평화롭고 아름다운 꽃 천국이었다.
건강하게 자란 야채들 사이로 한 사람이 겨우 지나 다닐 수 있는 좁은 길이 있었고 밭의 가장자리에는 꽃들이 무성하게 피어 있었다.
나는 수시로 꽃을 구경하러 아줌마네 텃밭에 갔다.
갈 때마다 다른 모습의 꽃들이 피고 지며 꽃들의 시즌 패션쇼가 벌어지곤 했는데, 알고 보니 텃밭에서 저절로 자라난 꽃들을 아 줌마가 가장자리로 옮겨 심다 보니 그렇게 많아진 것이라 한다.
아줌마의 텃밭에 뿌리 내린 꽃들은 어마어마하게 큰 키를 자랑하며 서로의 색을 뽐내고 있었다.
텃밭의 다른 구역에는 비닐하우스 하나와 닭들이 뛰어다니기 좋은 커다란 닭장이 있고 사과, 체리, 자두, 살구 등 과일 나무들이 여기 저기 있었다.
육십대 부부가 먹기에는 차고도 남을 엄청 많은 양이지만 아줌마네는 버리는 것이 거의 없다고 했다.
매주 몇 상자의 야채들은 아줌마의 아들, 딸 가족네로 간다.
아줌마의 창고는 밭에서 따온 열매와 야채들로 가득 차 마치 가게처럼 보였다.




햇빛이 전혀 비치지 않는 집 뒤쪽 창고의 벽면 쪽에는 다양한 과실주, 사이다 등 직접 만든 음료들이 선반에 가득 차 있었다.
다양한 종류의 잼, 삶아서 진공 유리병에 담아둔 야채 등도 가지런히 보관돼 있었는데 각 병에는 만든 날짜와 내용물에 관해 꼼꼼히 적혀 있었다.
아줌마 말대로 전쟁이 일어나도 3년은 거뜬히 먹고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도 그 후 자극을 받아 짬짬이 아줌마를 따라 무언가를 만들곤 했다.
아줌마 마당에서 엄청나게 자라고 있는 고수를 처리할 겸 올리브오일과 호두를 넣고 갈아 페스토를 만들어 시장할 때마다 기분 좋게 실컷 먹었다.
아줌마 마당에서 엄청나게 번식을 해버린 배추과의 식용 꽃으로 김치를 담가 맛있게 나눠 먹었을 때 아줌마는 그 누구보다 뿌듯해했다.
그렇게 아줌마가 일하는 모습을 곁에서 보니 이건 뭐, 휴가도 없이 겨울에도 종일 마당에 서 뭔가를 해야 하는 어마어마한 노동이었다.
아이들이 자는 밤에도 손을 움직여야 했고 해가 뜬 낮에는 흙을 만지고 다듬고 고르는 등 단순한 노동의 끝없는 반복이 이어졌다.
해를 넘기면서 우리 집 텃밭에도 프랑수와즈 아줌마네서 온 채소와 꽃들이 자라기 시작했다.





아줌마가 건네준 씨앗들로 풍성해진 우리 집 텃밭

초봄이 되면 거의 매일 아침 집 앞에 새싹들이 놓여 있다.
심을 철이 된 새싹들이다.
아침을 일찍 시작하는 아줌마가 대문 앞에 새싹을 놓고 가면 초반에는 귀찮기도 하고 ‘잡초가 단단하게 자라버린 땅을 언제 갈아 저걸 다 심나’ 하고 차일피일 미루기 일쑤였다.
그러다가 말라죽기 직전에 겨우 심곤 했었다.
그런데 이제는 만사 제쳐놓고 우선적으로 하는 일 중 하나가 되어버렸다.
작은 씨앗에서 작고 연약한 새싹이 나오고 이파리들이 자라서 어린아이 팔뚝만한 튼실한 오이를 여름 내내 먹는 뿌듯함과 갓 딴 토마토를 흙을 털어낸 후 그 자리에서 먹는 달달함을 알아가면서부터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었다.
물론 여전히 아줌마가 우리 집에 들를 때는 게으름에 손이 덜 간 밭을 보이기가 민망해 숙제를 덜하고 선생님께 들킨 듯한 학생처럼 쭈뼛쭈뼛 할 때도 있지만 그래도 아줌마는 잔소리없이 못 본 척 이해해주신다.
심어 놓은 새싹들이 얼마나 자랐나 볼 겸 간만에 텃밭에 가봤다.
식물이 잘 자라게 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잘 들여다봐야 한다.
그렇게 프랑수와즈 아줌마처럼 잘 들여다보기 시작하면 항시 그 모습이 바뀌는 텃밭에서는 끝이 없이 손길이 가는 곳이 생긴다.




텃밭의 씨앗들이 품은 이야기

하나의 씨앗이 잘 자라서 다음에 수백 개의 씨앗을 가져다주는 자연의 너그러운 신비라면 양을 타고 당나귀를 타고 그리고 어떤 베두인의 스카프자락에 붙어 대륙을 건넌 씨앗의 마법 같은 신비한 이야기도 충분히 가능하다.
우리는 마당의 씨앗들을 보면서 아이들에게 씨앗의 모험담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그림을 그렸다.
제일 신난 딸내미가 열심히 씨앗들을 스케치북에 그리고는 커다란 날개를 그려 넣었다.
그렇게 우리는 짧은 씨앗의 모험담을 완성시켰다.
알고 보니 아줌마의 집에서 온 씨앗의 정체는 쇠비름이었다.
혼자 이곳까지 먼 길을 찾아온 쇠비름이 기특해서 물도 잘 주고 주변의 잡초도 제거해주었더니 엄청난 번식력으로 여기저기서 자라기 시작해 그 양이 꽤 되었다.
프랑수와즈 아줌마는 생으로 샐러드소스 와 먹는다고 했지만 나는 살짝 데쳐서 초고추장에 무쳐 먹었더니 오독오독한 특이한 식감과 그 맛이 일품이었다.
양껏 무쳐 냉장고에 넣어뒀더니 친구들과 맥주 한 잔 마시던 남편이 꺼내서는 다 먹어치웠다.




쇠비름뿐만 아니라 질경이, 까마중, 초석잠 등 도시에서는 익숙하지 않던 이름의 잡초로 불리는 야생초들은 나름대로의 약 성분을 가지고 있다.
어느 날 가뭄으로 말라가는 쇠비름을 뜯으러 오라는 아줌마의 호출을 받고 소쿠리를 가지고 아기를 데리고 갔다. 
아줌마는 마당에 벌들을 위한 호텔을 바구니로 짜서 설치하고는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신이 세상을 창조하고 나서 흐뭇한 마음으로 창조물들을 바라보는 듯이 말이다.
성당에 절대 나가지 않는 프랑수와즈 아줌마에게 갑자기 궁금한 마음이 들어 “신을 믿냐”고 물었다.
아줌마는 “신을 믿진 않지만 이렇게 텃밭 에서 수많은 생명들에 둘러싸여 있으면 그 에너지를 느낀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고개를 돌려 사방의 냄새를 맡는 듯하며 “신은 모든 곳에 다 존재하고 있어. 하나의 신?” 하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녀는 성당에 가는 대신 그녀의 텃밭에서 신께 감사의 기도를 올렸다.



필자소개 마고
레게 음악 뮤지션인 프랑스인 남편, 다람쥐처럼 온종일 뛰어다니는 아이 셋과 함께 잘 알려지지 않은 지역을 떠 돌아다니며 사는 마고는, 낮에는 살림을 하고, 밤에는 사계절의 변화와 닮은 그림을 그린다.
현재 프랑스 서부 브르타뉴 지방 의 작은 시골 마을에서 자연이 주는 무구한 은혜를 껴안으며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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