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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근희의 도플갱어 영화 - 예측 불가능한 삶 속으로 뛰어드는 일

임근희의 도플갱어 영화

임근희



예측 불가능한 삶 속으로 뛰어드는 일


작년 12월 31일에도 별일은 없었다.
특별한 이벤트도, 회고나 반성의 시간을 가질 여유도 없이 매년 새해를 맞이하곤 했다.
학생 때는 그래도 다음 단계가 있었다.
한 학년 진급하거나 새로운 학교로 진학해 새 친구들을 사귀는 등의 일들 덕분에, 10대와 20대 때에는 수많은 시작과 끝들을 경험할 수 있었다.
그땐 ‘내가 전보다 더 성장했구나’라고 스스로 확신할 수 있는 순간들을 일상에서 자주 경험했었다.
하지만 30대엔 그런 순간들을 만난 적이 없는 것 같다.
시작은 있지만 끝이 없어 보이는 일들이 일상을 가득 채우고 있다.
회사일, 육아, 소설 쓰기, 각종 경조사 등등.
여행을 통해 일상의 반전을 노려보지만, 돌아가면 해야 할 일들 생각에 마음이 편치 않다.
주변 사람들 상황도 거의 비슷하다.
이제는 스스로 시작과 끝을 결정해야 하는 나이이다 보니 헷갈리기도 하고 두렵기도 해서, 어쩔 수 없이 계속 달린다고 한다.
‘열심히 살아가고 있으니 다 잘 될 거야’라고 스스로에게 막연한 위로를 건네면서 말이다.
그런데 결국 이런 위로가 잘 먹히지 않는 순간이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것 같다.
올해 여름, 나에게 도 그런 순간이 찾아왔다.
한동안 답답해 미칠 것 같은 기분에서 헤어나오질 못했다.
힘들었던 그때의 내 처지를 떠올려보면 영화 <굿’바이>와 <스틸 라이프> 속 주인공들의 모습이 오버랩된다.




<굿’바이>는 오케스트라 첼리스트 다이고, <스틸 라이프>는 고독사한 이들의 장례를 돕는 장의사 존 메이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어느 날 이들에게 악단 해체, 정리해고라는 큰 변화가 들이닥친다.
답답하고 미칠 것 같은 상황 속에서 둘은 새로운 길을 찾는다.
다이고는 어쩌다 보니 납관사로 일하게 되고 첼로를 다루던 손으로 시신의 염을 하게 된다.
메이는 마지막 의뢰인의 외롭지 않은 장례식을 꾸리기 위해 영국 전역을 돌며 그의 가족을 찾는다.
둘은 유족들과 친구들을 만나면서 조금씩 변해간다.
가족들, 친구들 또한 사랑했고 증오했던 이의 죽음을 받아들이면서 마음속의 짐을 내려놓는다.
다시 첼리스트의 자리로 돌아갈 생각에 납관사 일에 집중하지 못하던 다이고, 다른 이들의 죽음을 챙기느라 제대로 자신의 삶을 살아보지 못한 메이, 둘은 결국 새로운 삶의 방향을 받아들인다.
그리고 그 방향이 옳다는 확신도 갖게 된다.
 



그런데 속도를 올리기 시작하자 갑자기 둘에게 예상치 못한 일이 발생한다.
올해 가을 나는 큰 회사에서 작은 스타트업으로 회사를 옮겼다.
급여와 안정성 같은 현실 적인 요소들을 포기했다.
대신 새로운 회사에서 새로운 일에 집중하자 여름 내내 나를 괴롭혔던 답답하고 미칠 것 같은 기분이 사라져갔다.
그리고 왜 그런 기분이 들었는지도 깨달았다.
그 회사를 계속 다니면 내가 앞으로 몇 년 동안 어떻게 살아가게 될지 뻔히 그려졌기 때문이었다.
주어진 일의 내용은 달라져도 일하는 방식은 똑같을 수밖에 없을 것이 분명했다.
몇 년 동안 그 회사를 다니던 내내 그랬다.
일하는 방식이 매번 똑같으니 결과의 완성도도 나아지지 않아 실망스러웠고, 그래서 만족하지 못했다.
일이 끝날 때마다 마음속에 스며들던 조그마한 불안들이, 결국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쌓여 고통스러웠던거였다.
새로운 기회는 갑자기 나타났다.
이것저것 따지지 않고 마음의 소리를 따라 망설임 없이 움직였다.
예측 가능했던 삶이 이제 예측하기 어려운 삶으로 변했다.
분명 힘든 순간들이 찾아올 것이다.
그래도 긴장감을 되찾고 현재에 충실하게 됐다.
이제 새로운 미래를 받아들일 준비가 어느 정도 된 거 같다.
올해 2017년 12월 31일은 예년과는 좀 다를 것이다.



필자소개 임근희
이야기 애호가.
그동안 영화, 음악, 소설 등등 이곳저곳 기웃거리며 스무 해 넘게 살아오다가, 그래도 무언 가 남겨야 하지 않겠냐는 생각이 들어 4년 전부터 소설과 영화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했다.
얼마 전 <그들의 일: 자정의 시작> 이라는 소설을 냈다.
그리고 직접 쓴 원안을 바탕으로 영화도 한 편 제작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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