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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방곡곡 탐식유랑단 - 술을 당기는 쓸쓸함 그리고 짠맛의 도시, 군산

방방곡곡 탐식유랑단

글과 사진 윤혜자




술을 당기는 쓸쓸함
그리고 짠맛의 도시, 군산


잠깐이라도 짬이 생기면 여기저기 돌아다닌다.
못 가본 곳도 많고 아직 맛보지 못한 음식도 많으니 해야 할 일도 참으로 많은 바쁜 인생이다.
가을에서 겨울로 접어드는 어느 날 군산을 다녀왔다.
평소에 난 군산에 별 기대가 없었다.
군산 하면 십중팔구 <이성당>의 빵과 <복성루>의짬뽕을 이야기하니 도대체 흥미가 생기지 않았다.
그런데 영화 촬영 덕분에 군산에서 두어 달을 보낸 친구가 군산을 예찬했고, 이윽고 군산에 다녀온 난 그 예찬에 쉽게 동조했다.
터미널에 내려 목적한 꼬막무침집(<고량진미>)을 찾아 나섰다.
터미널에서 1km 조금 넘는 거리라 걷기로 했다.
쇠락한 구도심 풍경을 구경하며 목적지에 다다를 무렵, 점심시간이 지났는데도 무척 긴 줄이 있는 음식점을 보았다.
<복성루>만큼 유명한 군산의 또 다른 짬뽕집이었다.
며칠 전 방송에 나와서 줄이 더 길어졌다고, 차례를 기다리던 이가 귀띔해주었다.
짬뽕집을 지나쳐 꼬막집에 도착했는데, 문이 닫혀 있었다.
휴일에 대한 설명을 찾지 못해 무작정 찾았더니 마침 휴일이었던 모양이다.
예정했던 집을 가지 못하니 내겐 또 다른 기회가 열린 셈이다.




군산에서의 밤을 더욱 군산답게 만드는 <째보선창>

실수를 줄이기 위해 군산 토박이인 게스트하우스 <다호> 사장님이 추천해 준 리스트를 꼼꼼히 살폈다.
이 게스트하우스의 음식점 리스트는 여행객에게 제법 인기가 높다.
리스트엔 여행자들이 좋아할만한 유명 음식점과 그렇지 않은 동네 식당이 적절히 들어 있었다.
그중 밥과 술을 동시에 해결할 수 있고, 아직 유명세를 타지 않은 순수한 집 그리고 군산의 지역색을 담은 집이 목표였다.
여기저기 기웃대다 발견한 집은 <째보선창>.
깨끗하고 단정하면서 튀지 않는 외관과 상호가 눈길을 잡아끌었다.
들어가 메뉴판을 살폈다.
다양한 해산물 요리가 나열되어 있었고 ‘해산물모둠장’은 대표 선수였다.
고기를 좋아하지 않는 내게 해산물은 늘 반가운 음식이다.
대표 메뉴를 시켰다.
다양한 해산물이 과하게 짜지도 달지도 않은 장에서 잘 익어 내 앞에 놓였다.
새우는 먹기 좋게 껍질도 발라져 있었다.
주문을 받는 직원은 ‘먹다 짜면 밥을 비벼 먹어도 좋다’는 설명까지 친절하게 해주었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생긴 지 얼마나 되었느냐’ 물으니 올가을에 열었지만, 요리를 하는 사장님이 이미 서울에서 솜씨를 갈고닦은 실력자라는 설명도 같이 해 주었다.
“호텔외식조리학과를 졸업하고 줄곧 외식업계에서 일했어요.
다양한 외식업체를거쳐 신촌에서 꼬치집과 한과 브랜드를 창업했어요.
조금 더 탄탄하고 제대로 사업을 하고 싶어서 제가 어린 시절을 보냈고 부모님도 계신 군산으로 내려왔죠.
도시재생사업에도 관심이 있었는데 군산이 맞춤한 도시였어요.
부모님과 같이 살기 때문에 생활비를 줄여 그 돈을 투자할 수 있으니 제겐 일석이조입니다.
그리고 이제 군산에서 더 많은 기회를 만들 수 있을 것이란 확신이 들고 있습니다”라며 사장님은 군산으로 내려온 자신의 판단이 꽤 성공적이었다고 말했다.
‘째보선창’은 군산의 여러 포구 중 하나인 ‘죽성포’의 옛 이름이다.
이름의 유래도 사뭇 해학적이다.
Y자로 살짝 째진 강안에 석축을 쌓아 조성한 포구가 째보(언청이)처럼 생겼다고 해서 부르기 시작했다고 한다.
지금은 옛 명성이 사라졌지만, 그래도 ‘째보선창’이란 지명은 여전히 군산 사람들에게는 정겨운 이름이다.




<째보선창>은 바로 이 이름에서 상호를 따왔다.
상호뿐만 아니라 내어놓는 음식 역시 군산의 특색을 담았다.
군산에서 가장 구하기 좋은 식재료인 해산물을 중심으로 메뉴를 구성하고, 음식 만들기에 공을 더했다.
해산물모둠장이 그렇고, 계절에 따라 나오는 꼬막무침이나 어묵탕도 그렇다.
<째보선창>에서 십여 분 거리에 대규모 해산물 시장이 있어 <째보선창>은 이 시장에서 매일 장을 본다.
해산물 요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재료의 신선도이기 때문이다.
당연히 <째보선창>에서 내놓는 모든 해산물 요리는 그야말로 탱글탱글 해산물의 탄력이 살아 있다.
문제는 이 맛이 술을 자꾸 잡아끈다는 것이다.
모둠장의 기본이 되는 장은 일정한 염도를 유지하기 위해 감에 의존하지 않고 염도계를 사용하며 맞추고, 담백하고 깨끗한 장맛을 유지하기 위해 ‘씨육수(오랜 기간 사용한 깊은 맛이 나는 육수)’를 사용하지 않는 것도 특징이다.
늦은 밤, 여행지에서 술 한 잔 마시고 싶다면 <째보선창>을 추천한다.
이곳은 오후 5시에 문을 열고 새벽 2시에 닫는다.




아욱국 한 뚝배기로 속풀이 완성 <일출옥>

군산시 월명동에는 소고기뭇국으로 대표되는 해장국밥집 거리가 있다.
<한일옥>의 소고기뭇국과 <일흥옥>의 콩나물국밥이 대표적이고 여기에 최근 아욱국이 추가되었다.
멸치와 마른 새우를 기본으로 육수를 내고 된장으로 간을 하는 아욱국을 별도의 메뉴로 구성해 판매하는 집은 그다지 많지 않다.
<일출옥>도 처음에 <일흥옥>처럼 콩나물국밥만 팔았다고 한다.
그러다 아욱국을 내놓자 아욱국을 찾는 이가 많았다고 했다.
“젊은 사람들은 콩나물국밥을, 나이 드신 분들은 아욱국을 더 좋아하는 것 같아요.”
<일출옥> 사장님의 설명이다.


 


아욱국의 미덕은 다른 음식보다 저렴하다는 것이다.
군산은 물가가 높은 도시다.
어지간한 음식값은 서울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다.
단순한 메뉴인 국밥류만 한 끼에 5,000원대를 유지하고 있었다.
서울의 국밥집과 다른 점이 있다면 깍두기와 젓갈 한 가지 정도로 반찬이 단순한 서울에 반해 군산은 깍두기와 젓갈 그리고 장아찌와 나물류가 다양하게 상에 오른다.
그리고 이 반찬들은 모두 제 몫을 다하며 나름의 맛을 냈다.
아욱국의 핵심은 뭐니 뭐니 해도 바로 된장.
된장 맛이 깊고 진하며 동시에 달지 않아야 제대로 된 아욱국 맛이 난다.
아욱이 이미 충분히 단맛을 가진 채소이기에 된장에서 단맛이 강하면 비릿한 맛이 돌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일출옥>의 아욱국은 좋았다.
직접 담근 된장과 시판 된장을 적절히 섞어서 사용하는 것이 그 비결이라고 했다.
무엇보다 <일출옥>은 밥맛이 아주 좋았다.
윤기가 돌고 향이 좋았다.
이 밥을 한 숟가락 크게 떠서 아욱국에 말았더니 밥의 단맛과 아욱국의 고소한 된장 맛이 아주 잘 어울려 순식간에 한 그릇을 비우게 했다.
더불어 아욱국은 해장에도 그만이다.


 


군산의 궁금증이 풀리는 책방 <마리서사>

여행을 가면 꼭 그 동네의 책방에 간다.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지역을 대표하는 한두 개의 서점이 고작이었는데, 최근 도시마다 작은 동네책방이 생기면서 나의 여행은 더욱 풍성해졌다.
군산에서도 작지만 아주 아름다운 서점을 만났다.
여행객이 많이 다니는 근대역사거리 끝 아파트 단지 앞에 있는 <마리서사>는 한눈에 들어왔다.
일본식 주택을 개조하여 만든 서점은 주인 임현주 씨를 그대로 닮았다.
서울에서 출판사 편집자 생활을 하다 고향 군산으로 내려와 책방 <마리서사>의 문을 연 것은 8월.
1년도 채 되지 않았지만, 책방은 제법 모양새를 갖추고 있었다.
“저희 서점 주변에만도 커피집이 백 곳이 넘어요.
그래서 동네서점에서 다 파는 커피를 팔지 않기로 했죠.
서점 바로 옆에도 찻집이 있으니까요.
대신 책을 더 여유롭게 조금 다양하게 두었습니다.”
‘다른 동네 책방처럼 커피는 팔지 않느냐’ 물으니 책방 주인에게 돌아온 답이다.
보통의 동네책방은 주인의 취향을 반영하여 판매할 책을 구성한다.
그러나 <마리서사>는 자신의 취향에 대해 고객의 요구도 적극적으로 반영하고, 군산이라는 지역적 특색을 충분히 살려 판매할 책을 구성했다.
남들이 다 읽는 베스트셀러를 사러 왔다가 큰 서점에선 쉽게 눈에 띄지 않는 주인 취향의 다양한 책을 보고, 그 책에 이끌려 또 서점에 왔으면 하는 마음을 담았다고 한다.
그리고 다른 곳에서 흔히 만날 수 없는 군산과 근현대역사에 관련된 책들도 매우 흥미롭다.



<째보선창> 전라북도 군산시 구영3길 47
<일출옥> 전라북도 군산시 구영6길 22-3
<마리서사> 전라북도 군산시 구영5길 21-26



필자소개 윤혜자
책을 비롯한 다양한 컨텐츠를 엮는 기획자로 일했다.
나이 들어 결혼, 아침을 안 먹으면 하루 일과를 시작 못 하는 남편과 살며, 그리하여 즐거이 매일 아침밥을 지어 상을 차린다.
손수 밥을 지어 먹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깨닫고 음식 공부를 하고 있다.
남편과 함께 동네 술집과 밥집을 어슬렁거리며 맛있고 즐거운 음식점을 만나면 여기저기 소문내는 일을 즐거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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