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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라의 밀양댁 엄마 손 밥상 - 기다려야 먹을 수 있는 겨울철 별미 <돼지목살 김치말이찜>

이미라의 밀양댁 엄마 손 밥상

글과 사진 이미라



기다려야 먹을 수 있는 겨울철 별미

돼지목살 김치말이찜





겨울의 초입에 김장김치를 담그고 나면 1년을 마무리하고 다가올 한 해를 준비했다는 생각에 마음 한편이 뿌듯하다.
갖은 재료를 듬뿍 넣은 김장김치는 포기김치로 담아 저장하는게 정석이다.
숨이 덜 죽어 뻣뻣한 배추는 따로 골라두었다가 죽죽 찢어서 겉절이를 만들어둔다.
하지만 숙성이 막 시작되는 시점이 오면 겉절이는 도통 맛이 없어진다.
작년에 담근 묵은지가 다시 그리워지는 순간이다.
‘묵은지’ 하면 김치찌개가 떠오른다.
김치찌개로 유명한 한 식당의 비법이 3년 묵은 김치라는 말을 듣고 2년을 묵혀서 김치찌개를 끓여본 적이 있다.
숙성 기간이 1년 모자라서였을까?
그 맛은 기대 이하였다.
신맛이 과해서 함께 숭덩숭덩 썰어 넣은 돼지고기까지 시큼하게 느껴졌다.
물론 그 식당만의 특별한 김치보관 방법이 있으리라 여겨지는데 아무래도 3년이라는 시간 동안 고이고이 보관한 정성이 맛을 내는 조미료가 된 것이 아닐까 싶었다.
나로서는 1년 전 담가둔 김치를 봄이 오기 전에 먹어치우는 것이 새로 담근 김장김치에 대한 예의일 것이므로 2년 숙성, 3년 숙성 묵은지를 만들 겨를이 없다.
비록 1년 숙성이지만 묵은지를 넣으면 맛있지 않은 요리가 없다.
게다가 김치가 맛있으면 김치를 넣는 어떤 요리든 실패할 확률도 적다.
굳이 한 가지 단점을 찾노라면 그 모양새가 아름답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특히나 부글부글 끓이는 국물 요리의 경우 고춧가루들이 지저분하게 넘쳐흘러 손님상에 내기에는 부족함이 있어 보인다.
그럴 때 즐겨 만드는 요리가 ‘돼지목살 김치말이찜’이다.
돼지목살은 로스구이용으로 두툼하게 잘려 있는 것을 사야 한다.
그리고 김치는 꽁다리를 잘라내고 큰 이파리들을 준비한다.
한 장 또는 두 장을 펼쳐 그 위에 돼지목살 한 장을 올리고 돌돌 말아서 김치말이를 만든다.
밑이 넓은 냄비에 김치말이를 쭉 돌려 담은 후 자작하게 물을 붓고 뭉근하게 끓인다.
멸치 우린 물이나 다시마 우린 물을 넣어도 맛있겠지만, 곰탕 국물을 넣어서 끓이면 담백하면서도 진한 국물맛이 별미다.
오랫동안 끓여야 김치가 부드러워지고 고기에 간이 잘 배는데, 큰 접시에 김치말이를 소복이 담아서 서빙을 하고 먹을 때 한 덩이씩 개인접시에 덜어 먹게 세팅을 하면 근사한 손님맞이용 요리가 된다.
돼지목살 김치말이찜을 맛있게 먹는 방법은 하얀 쌀밥에 반숙으로 익힌 계란 프라이를 올려서 함께 먹는 것이다.
또 조미김을 곁들여 먹으면 아주 잘 어우러져 다른 반찬이 필요가 없다.
가끔 돼지고기가 없을 때는 멸치와 김치만으로 김치찜을 만든다.
밑이 넓은 냄비에 멸치를 한 움큼 깔고 김치를 두 포기 정도 포기째 펼쳐 올린다.
용유 두 스푼, 설탕 한 스푼 정도 뿌린 후 쌀뜨물을 붓고 뭉근히 오래오래 끓인다.
식용유를 넣어야 김치가 부들부들해지고 설탕을 넣어야 신맛이 덜 느껴진다는 엄마의 비법이 숨어 있는 이 요리는 희한하게 중독성 있는 맛이다.
마지막 남은 묵은지 한 통이 다 비워져간다.
더 곰삭으면 맛이 없기에 열심히 먹고는 있지만 아쉽기까지 하다.
이런 김치를 맛보려면 또 1년을 기다려야 한다.
비움을 위한 요리였지만 결국은 기다림의 요리였고, 시간은 음식에게조차 호락호락하지 않음을 또 한 번 실감한다.



필자소개 이미라
고향을 벗어나고 싶어 발버둥쳤으나 고향 남자와 결혼해서 고향에 살고 있는 밀양댁.
1961년부터 이어져 온 <청학서점>의 안주인이자, 독서모임 <다락방>, <멜로디>의 리더.
두 아이의 엄마로 사교육을 멀리하고 예술을 사랑하는 아이로 키우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으며, 보약 한 번 안 먹이고 오로지 밥의 힘으로 건강하게 키우기 위해 열심히 집밥을 차리고 있음.
비전문적인 다양한 분야에서 활발히 활동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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