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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타와 함께한 서몽골 유랑기 - 몽골 어느 산골짜기에서 보낸 일주일

낙타와 함께한 서몽골 유랑기

글과 사진 긴수염



몽골 어느 산골짜기에서 보낸 일주일




여름이 끝나갈 무렵, 서몽골의 유목민은 겨울을 대비하여 가축들과 함께 남쪽으로 이동한다.
동무들과 문명의 흔적을 찾을 수 없는 산골짜기를 일주일 동안 걸어서 통과하기로 했다.
마부 둘, 말 둘, 낙타 둘에게 길 안내와 짐을 부탁했다.
식량과 텐트, 마부의 짐을 쌍봉낙타 두 마리에 나누어 싣고 우리는 각자의 짐을 지고 걷기로.
처음 만난 마부일행과 인사할 때였다.
몽골인에게나 동물들에게나 똑같이 말이 통하지는 않았지만 “잘 부탁합니다” 하고 마음을 전했다.
낙타는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그저 풀을 뜯을 뿐이었다.




마부들이 낙타의 등에 짐을 올리고 단단히 묶은 뒤 일어서게 했을 때 “끼욱-!” 하는 외마디 비명이 내 마음을 불편하게 했다.
아직 출발도 하지 않았는데 낙타가 과연 짐을 지고 갈 수 있을지 걱정되었다.
하지만 내 짐도 만만치 않았다.
가파른 산길을 걷는데 돌을 진 것처럼 무거웠다.
같이 고생하는 것 같아 오히려 마음이 편해지는 아이러니.
저 출발했는데 나중에 마부 일행이 우리를 따라잡았다.
힘들어 보였지만 낙타들은 강인했고 미안한 마음은 고마움으로 바뀌었다.
유목민의 삶에 없어서는 안 될 존재들.
길이 없어 탈 것이 허용되지 않는 공간에서 잠시 유목민이 된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산을 넘자 거대한 호수가 보였다.
좁은 길에서 이동하는 유목민을 만나 길을 비켜주었다.
이불, 가방, 안테나 등등 낙타에 매여 있는 짐이 그들의 전 재산이다.
게르(유목민의 집)를 철거 중인 유목민이 우리를 반기며 수테차(가축의 젖에 차를 넣어 끓인 몽골 전통차)와 먹을 것을 주었다.
평소 채식을 지향하지만 몽골에 오면 자연스럽게 그들의 음식을 먹게 된다.
거의 모든 것이 유제품이다.
농사를 지을 수 없는 척박한 땅에서 살아남기 위한 유일한 수단.
옛날부터 지금까지 이렇게 살아온 것이다.
먼 길을 떠나는 그들에게 고마움을 표시하고 우리도 길을 떠났다.
걷다가 지칠 때쯤 아무 데나 드러누워 쉬었다.
앞에 가는 낙타는 풀을 뜯어 먹을 수 있었는데 뒤에 가는 낙타는 앞의 낙타와 줄로 짧게 연결되어 있어 풀을 뜯을 수가 없었다. 
침을 흘리는 녀석에게 허브 향이 나는 싱싱한 풀을 뜯어주었더니 우적우적 잘 먹는다.
그렇게라도 고마움을 표시했다.
하루 종일 걷다가 해가 지평선에 닿을 무렵 멈추는 곳이 잠자리가 되었다.
짐을 내린 낙타들은 자유의 몸이 되어 멀리멀리 사라지려 했지만 시력이 무한대인 마부들은 말을 타고 저 멀리 점처럼 보이는 낙타를 데리고 왔다.
그대로 둔다면 낙타들은 돌아오지 않겠지?
저 멀리 보이는 야생낙타를 보면서 가축으로 길들여진 낙타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들의 마음이 궁금했다.




다음 날 아침, 텐트를 사각사각 긁는 소리에 문을 열었더니 온 세상이 하얬다.
원근감이무시되는 하얀 도화지 같은 세상.
눈가루가 대지에 닿는 소리, 말과 낙타의 숨소리, 사람들의 말소리가 꿈결처럼 들렸다.
너무 추워 다시 잠들었다가 따스한 햇살에 깨어났을 때 하얀 세상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없었다.
꿈이었나? 잠결에 기록한 사진 속의 풍경이 꿈이 아니었음을 알려주었다.
텐트를 말리고 짐을 꾸려 출발했다.
종잡을 수 없는 날씨.
맑았던 하늘이 구름으로 뒤덮이고 눈발이 날리기 시작한다.
그 사이로 내려오는 햇살, 빛나는 눈가루들.
걸으면서도 꿈을 꾸는 것 같았다.
어느새 입을 벌리고 웃으며 눈을 먹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궂은 날씨와 끝이 보이지 않는 길에 몸도 마음도 지쳐갈 무렵, 저 멀리 게르가 보인다.
‘아직 이동하지 않았구나!’ 천천히 다가가 인사를 하고 그들이 내어준 따뜻한 수테차를 마셨다.
추위에 얼었던 몸과 마음이 녹아내린다.
갓 만든 버터를 빵에 올려먹다가 깜짝놀랐다.
이게 버터라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맛에 연신 감탄했다.
신선한 풀을 뜯으며 비교적 자유롭게 사는 동물의 몸에서 나온 우유로 만든 버터이기에 가능한 맛이었으리라 추측해본다.
공장식 축산 시스템에 갇혀 항생제를 맞으며 생산되는 동물의 몸에서 나온 것과는 당연히 다를 수밖에 없다고.
그 순간만큼은 채식 지향도 다 잊어버리고 몸과 마음을 충전했다.
척박한 야생에서 길들여져 유목민의 먹을 것, 탈 것, 입을 것이 되어주고 야생동물의 위협으로부터 지켜주는 양, 말, 소, 낙타 그리고 개.
본질적으로 이용되는 것은 비슷하지만 사는 동안이라도 비교적 자유롭게 지내는 몽골의 동물을 보며 자꾸만 같은 시대를 사는 다른 동물의 처지가 비교되었다.
자본주의 문명에서 인간의 곁에 살거나 여러 가지 용도로 생산 및 이용되는 동물들은 단순히 생존의 문제를 넘어서 인간의 즐거움을 위해 존재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이 먹이사슬의 최고점에 있는 기형적 구조에서 인간의 쾌락은 당연한 듯이 여겨져 다른 생명체의 온전한 삶과 고통을 쉽게 지워버리고 있었다.
하지만 나 역시 여행의 편의를 위해 동물을 이용하고 있다는 생각이들어 괴로웠다.
그러던 차에 가파른 벼랑길을 내려온 날, 낙타 한 마리가 옆으로 픽픽 쓰러졌다.
아무래도 무리를 했나 보다.
그런데 쓰러지는 모양새가 어째 심상치 않다.
마부들이 약을 달라고 해서 진통제를 주었더니 잘게 쪼개어 낙타에게 먹였다.
별 차도가 없자 비누를 갈아 물에 넣고 흔들어 비눗물을 만든 뒤 낙타에게 강제로 먹였다.
낙타는 꽥꽥거리며 완강히 저항했으나 먹을 수밖에.
비눗물을 먹이고는 일으켜서 계속 빙빙 돌며 뛰어다니게 했다.




뭔가를 토하게 하려는 것 같았다.
한참을 돌다가 쉬는데 낙타가 고개를 땅바닥에축 늘어뜨렸다.
낙타는 힘이 하나도 없어 보였다.
낙타가 불쌍하고 미안한 마음이 들어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렸다.
검은 천에 수를 놓은 것처럼 빛나던 별들에게 기도하려고 고개를 들었을 때, 밤하늘이 일순 붉어졌다.
헛것을 보았나 했지만 같이 있던 친구도 놀라며 봤다고 했다.
불길한 예감이 들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낙타가 낫기를 바라는 것밖에 없었다.
한참을 뒤척이다 잠들었고, 코에 줄이 꿰인 채로 허리가 휘어질 듯이 무거운 짐을 옮기는 꿈을 꾸었다.
내 등에 혹이 두 개 있었다.
다음 날 아침, 온몸이 뻐근했고 텐트 문을 열자 낙타가 어제의 그 모습 그대로 축 늘어져 있었다.
코에서 콧김이 나오는 걸 보자 눈물이 핑 돌았다.
‘살아났구나!’ 나와 눈이 마주치자 눈을 감아버린다.
마부들은 낙타가 독초를 먹은 것 같다고 했다.
대체 뭘 먹었을까.
어제 걸어오다가 봤던 커다란 빵처럼 생긴 버섯을 먹은 건 아니었을까.
뉴질랜드 야생에서 열매를 잘못 먹고 배앓이를 했던 기억이 났다.
동물도 실수를 하는구나.
어쨌든 낙타가 살아서 다행이었다.
트레킹을 무사히 마치게 해준 마부 일행에게 여전히 말은 통하지 않았지만 “고맙습니다” 하고 인사를 했다.
그들은 무거운 짐을 훌훌 털어버리고 돌아갔다.




유랑의 마지막.
늑대가 나온다는 계곡에 들어가 땅다람쥐들의 겨울 준비를 몇 시간이고 지켜보았다.
처음에 바짝 경계를 하던 녀석들이 내가 돌처럼 가만히 있자 조심스럽게 굴에서 나와 먹이활동을 했다.
풀을 득득 뜯어 입에 한가득 물고는 굴로 내달린다.
건초를 만들어 집을 따뜻하게 하고 겨우내 먹을 것을 저장하는 모양이다.
유목민도 가축도 야생동물도 모두 혹독한 겨울을 살아낼 준비를 하고 있었다.





자연을 배경으로 계절의 흐름에 따라 돌아가는, 막힌 곳 하나 없는 순환이 느껴졌다.
동시에 기후변화로 인해 자연에 살아가는 이들의 삶이 고단해지고 있는 현실도 보였다.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다는 단순한 진리가 떠올랐고, 지구별 어딘가에서 자연을 파괴하고 동물을 착취하는 시스템에 편승하여 살아가는 나의 존재를 돌아보게 되었다.
모두가 똑같은 방식으로 살아갈 수는 없지만 지구별에서 공생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서몽골 어느 골짜기에서 그만 가슴이 먹먹해지고 말았다.
땅다람쥐 한 마리가 그런 나를 보며 ‘찌-’ 하고 소리를 질렀다.
알았다, 여기서 썩 꺼지라는 거구나.
몽골서 돌아온 뒤로도 종종 낙타로 고생하는 꿈을 꾼다.



필자소개 긴수염
지구별에 인간으로 태어난 생명체.
다른 생명체와 더불어 사는 길을 고민합니다.
야생동물을 좋아해서 지구별 이곳저곳을 떠돌며 야생생활을 하지만 그들과 맨몸으로 조우하는 순간의 긴장감은 무뎌지질 않습니다.
그러나 그만둘 수가 없네요.
죽을 수도 있다는 걸 알면서도. (차라리 자연의 순환 속에서 죽는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도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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