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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건 너머의 물건들 - 내게 말 거는 기타
물건 너머의 물건들

글과 사진 전진우



내게 말 거는 기타

벽에 가만히 세워둔 기타가 돌연 목이 부러져버렸다.
‘지금도 빙하가 녹고 있다.’
그런 유의 사실이 된 것이다.
나는 부러진 기타를 빤히 바라보고 앉아 있었다.




불편한 소리

‘괭괭’이라고 해야 하나, ‘깅깅’이라고 해야 하나.
저쪽으로 옮겨놓으라는 누군가의 지시에 그렇게 하려던 것뿐이었는데, 내가 기타를 들어 올렸더니 거기서 작은 괴물 우는
듯한 소리가 났다.
그 팽팽한 쇠줄에서 소리가 어떤 식으로 나는지, 중학생이었던 나는 잘 모르고 있었다.
지금처럼 기본이라도 알았더라면 기타 목과 여섯 개의 쇠줄을 한 손에 움켜쥐고서 가볍게 들어 올렸을 텐데.
그때 나는 어떻게든 소리가 나지 않게 하려고 고양이를 도망 못 가게 하듯이 그저 기타를 품에 꼭 안았다.
그렇게 소리를 나지 않게 한 것이 내가 기타를 가지고 한 최초의 일이었다.
소리가 나는 물건, 소리를 내기 위한 물건이라는 그 고유한 특징 때문에 나는 한동안 기타를 다시 안아보지 않았다.
십 대 때 나는 소리를 안 내는 삶이 편했고 나한테서 나는 소리들이 왠지 모르게 부끄러웠다.
시끄럽게 말하고 자꾸 누굴 웃기려고 했던 나였지만, 그때 나의 활발함이라는 건 일종의 집단의식 같은 것이었고 전혀 개인이 되기 싫은 기분에서 비롯된 일이었다.
정어리 떼처럼, 참새들처럼 그러고 싶었다.
몇 해가 지나 군에 입대했을 때, 나는 처음으로 외로움 같은 걸 느꼈다.
시간이 지나면 친구들을 다시 만나게 될 테니까 괜찮다고 생각해도 자꾸 막을 수 없는 감정이 나를 밀고 들어왔다.
군대에서는 그 감정들에 쓸려서 같이 흘러갈 수가 없었다.
군대를 감옥 같다고 하는 말은 그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밀려오는 감정들도 아마 나의 일부일텐데 매일 새벽 나를 두고 사라져버리는 걸 보고만 있어야 했다.
자신과 헤어짐을 반복하다가 군인들은 얼굴이 참 많이도 변한다.




거기에 또 기타가 있었다

관리하는 사람이 없어서 줄이 까맣게 변한 기타가 관물대 끝에 기대어 서 있었다.
옆 내무실 선임이 가끔 와서 치는 걸 보긴 했어도 퉁, 하고 부딪히듯이 내 눈에 들어온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나는 선임이 했던 것처럼 벽을 보고 앉아서 기타를 배에 대보았다.
검지로 한 칸 한 칸 옮겨 짚으며 복잡하기도 하고 단순하기도 한 구조를 더듬어봤다.
금세 다시 제자리에 세워놓고 내무실을 빠져나왔는데, 그 짧던 시간은 어쩐 일인지 내 머릿속에서 자꾸만 길게 늘어졌다.
나중에 나는 그날 하루를 ‘기타를 처음 쳐본 날’로 기억하기에 이르렀다.
“가르쳐줘?” 기타를 치러 가끔씩 오던 선임과 마주치는 건 시간문제였다.
<로망스>, <오래전 그날>, <이등병의 편지> 같은 걸 배웠지만 진도가 잘 나갈 리 없었다.
사람들은 나보고 ‘한 번을 제대로 못 치냐’고 머리를 툭툭 치며 지나갔는데 나는 어쩐지 한 곡을 오래오래 연주하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아마 그래서 계속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기본 코드를 대충 잡을 수 있게 됐을 때부터는 무얼 외워서 연습하기보다는 그냥 아무 코드나 잡고 거기에 맞춰서 흥얼거리는 게 좋았다.
내 배에서부터 나는 소리가 주변을 맴돌았다.
여러 사람들과 함께 지낼 수밖에 없는 시절에 기타를 배워서 그런지 나는 아직도 크게 연주를 잘 못한다.
노래는 더 못하고.
방에 혼자 있을 때도 조용조용 나만 잘 알아들을 수 있는 소리를 낸다.




누가 내게 혼자를 줬을까

지금 가지고 있는 기타는 내가 전역을 하고 나서도 한참을 지나 산 것이다.
나 말고 또 기타를 사려던 친구가 있어서 우리는 한가한 친구 몇 명을 대동해 낙원상가에 갔었다.
흥정 같은 것도 할 줄 모르니까 이리저리 걸어 다니다가 마음에 드는 걸 고르고 주인에게 한번 연주를 해달라고 말하는 게 전부였다.
그 소리가 마음에 들면 사겠다는, 그런 기준만 있었던 것이다.
‘언제부터 혼자가 편해진 걸까.’ 마음에 드는 기타를 사서 등 뒤에 메고 나오는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표정과 웃음소리까지 따라 하던 친구들은 다 어디로 갔는지.
그때의 나도 친구들과 함께 희미해져 있었다.
쩐지 이 기타를 메고 동네 쪽으로 돌아가는 게 아니라 반대 방향으로 멀어지는 기분이었다.
그날 친구들과 나는 동네 술집에 가서 길거리에 테이블을 펼쳐놓고 술을 좀 마셨다.
기타 두 대가 벽에 기대어 있었고 나는 그중 한 기타를 술 한 잔 마실 때마다 빤히 쳐다봤었다.
“뛰어가는 우리를 바라보네.”
내 기타가 생겼고, 나는 친구들과의 추억을 가사로 적어보기도 하면서 이런저런 노래를 계속해 만들었다.
녹음은 해놨지만 따로 악보를 만들어놓지 않아서 남의 노래 듣듯이 플레이어로 재생만 하고 있는 노래도 있고 어떤 것들은 이제 흥얼거리기만 가능한 노래도 있다.
나는 그 노래들이 나한테서 나왔으니까 다시 찾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그건 착각이었다.





‘부러진 적 있었음’

세워두는 시간이 더 많지만 그래도 항상 보이는 곳에 두고 가끔 기타를 쳐보는데 요즘에는 그러질 못했다.
기타 목이 부러졌기 때문이다.
넘어진 적도 없는데 겨울에 수축한 나무가 버티질 못하고 제자리에 서서 터져버렸다.
튜너 없이 음을 맞추다 보니 내가 은연중에 조금씩 줄을 조인 모양이다.
이번 주에는 기타 목을 다시 붙일 예정이다.
가구를 만들다 보면 나무가 부러지는 경우를 종종 보는데, 이렇게 결 방향으로 쪼개진 나무는 다시 붙여놓으면 더 단단해진다.
목공용 본드가 잡는 힘은 원래 나무의 그것보다 더 지독한 것이다.
그걸 붙이면서 나는 어떤 표시 같은 걸 해놓을까 싶다.
‘부러진 적 있었음’ 이 정도면 좋겠다.
내가 내 마음이 어떤지 잘 모르고 사니까 세상은 이렇게 한 번씩 일부러 알려주곤 한다.



필자소개 전진우
대학에서 체육과 문예창작을 전공하고 졸업 후 2년간 에디터 생활을 했다.
오래 지냈던 경기도 의정부에 친구와 가족이 모두 있어서 항상 생각이 그리로 흐르는 편이다.
편안한 마음으로 체험한 주변 이야기를 글과 사진으로 남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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