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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방곡곡 탐식유랑단 - 밥 향이 코에 스미는 밥집 <행복한 상>, <소로리 by 월향>

방방곡곡 탐식유랑단

글과 사진 윤혜자



밥 향이 코에 스미는 밥집

<행복한상>, <소로리 by 월향>





갓 지어 고소한 향이 나는 밥에 계란 프라이와 잘 익은 김치를 곁들여 먹는 것, 내게 있어 최고의 밥상이다.
김치는 양념이 풍부한 김장김치면 더 좋다.
김장김치에는 이 땅의 사계절, 땅과 바다의 식재료가 총동원된다.
그러나 아무리 맛난 김치도 홀로 그 빛을 발하지 못한다.
잘 익은 김치를 돋보이게 하는 것은 바로 밥이다.
햅쌀을 잘 씻어 30분간 불린 후에 압력솥에 안치면 불과 20분 만에 밥이 된다.
김빠진 솥의 뚜껑을 열면 고소한 밥 향이 코에 스미고, 이어 우리 집 작은 주방에 퍼진다.
하얀 밥을 한 그릇 담아 김치와 함께 먹는다.
이보다 맛있는 밥도 김치도 없다.
고소한 밥 향이 살아 있는 밥을 먹어본 기억을 더듬어보자.
아무리 비싼 밥솥이라고 해도 그 안에 밥이 머무는 시간이 길어진다면 이 향은 사라진다.
밥 향은 갓 지은 상태에서만 맡을 수 있다.
우리가 자주 다니는 음식점의 밥은 향을 잃은 지 이미 오래다.
음식점에서 흔히 만나는 뚜껑 있는 스테인리스 밥그릇이 등장하면서 우리는 갓 지은 밥이 아닌 온장고에서 여러 시간을 보내 향도 윤기도 잃은 밥을 먹게 되었다.


<행복한상> 쌀을 고르세요, 밥을 지어드려요

향과 반지르르한 윤기가 살아 있는 밥을 내주는 음식점이 최근 하나둘 등장하고 있다.
그중 꼭 가보라고 권하는 곳은 인사동에 문을 연 <행복한상>이다.
이 밥집의 발견은 인사동을 자주 찾는 나에게 정말 즐거운 일이다.
<행복한상>은 월간지 <행복이 가득한 집>을 발행하는 ‘디자인하우스’에서 운영한다.
잡지사에서 운영하는 밥집이어서인지 식기며 인테리어 등 구석구석 신경을 쓴 티가 확실히 난다.
이곳에서는 손님의 주문을 받고 밥을 짓기 시작한다.
모든 밥은 솥에 지어 개인별로 내어준다.
먹을 쌀도 직접 선택할 수 있다.
절기에 맞춰 백미와 현미 서너 종 중, 취향에 맞게 선택해 밥을 지어달라고 하면 된다.
친절한 메뉴판이 선택을 도와준다.
쌀은 도정하는 순간부터 산화되기 시작한다.
그래서 가장 맛있는 밥을 먹기 위해선 도정 직후에 밥을 지어야 한다.
<행복한상>은 별도의 도정실을 두고 매일 쌀을 도정한다.
가장 좋은 상태의 쌀로 맛있는 밥을 지어 제공하기 위함이다.
반찬은 단순하다. 젓갈, 장, 김치가 기본으로 제공된다.
여기에 취향에 따라 고등어구이나 맥적(貊炙, 돼지고기를 넓적하고 두툼하게 떠서 병이나 밀대로 두드린 후 양념에 재워 숯불에 굽는 전통음식) 중 하나를 고르면 이에 맞춰 김과 감태 혹은 채소쌈이 같이 나온다.




이 반찬의 면면이 특별하다.
장은 장 명인이 만드는 ‘기순도 장’이고 젓갈은 그 분야 명품인 ‘굴다리식품’의 것을 사용한다.
자꾸 젓가락이 가는 김치는 ‘이하연 봉우리김치’다.
이 단순한 차림이 우리 밥상의 기본이자 밥맛을 돋우는 음식임엔 틀림없다.
모든 음식은 그 유명세만큼이나 깊고 정갈한 맛을 낸다.
최고의 음식을 이렇게 한 상에 차려 내어주니 기쁠 수밖에 없다.




밥을 주문하면 주전부리라며 따듯한 고구마와 감자를 내준다.
식사 전에 웬 주전부리냐 할 수 있지만 이것을 먹으며 허기를 재우면 기다렸던 밥이 나온다.
솥뚜껑을 여는 순간 밥 향이 진동한다.
허기가 가신 상태라 그 밥맛을 더 천천히 음미할 수 있다.
작은 개인 솥에 나오는 밥은 잘 섞어 빈 공기에 담고, 아직 열기가 남아 있는 개인 솥에 뜨거운 물을 붓고 솥뚜껑을 덮어두면 밥을 먹는 동안 솥 안에 남아 있는 밥이 누룽지가 된다.
참, 나처럼 계란 프라이를 좋아한다면 계란 프라이도 추가할 수 있다.
이 정갈한 한 상 차림이 다소 아쉽다고 생각되는 분들이 있다면 계절별로 일품요리를 주문하면 된다.
수수밥 크로켓, 누룽지 샐러드, 닭 반 마리 연잎찜, 봉우리 보쌈김치 등이 그것이다.
주목할 것은 맛있는 음식뿐만이 아니다.
그릇과 담음새에 관심이 있는 이의 혼을 쏙 빼는 식기류도 지나칠 수 없다.
요즘은 인스타그램 덕분인지 많은 사람들이 음식 맛보다 그 꾸밈을 고려해서 음식점을 선택하기도 한다.
그런 면에서라면 이곳은 눈이 밝은 사람들에게 더할 나위 없이 좋다.
허명욱 작가의 옻칠 식탁매트, 이기조 도예가의 백자 식기, <호호당>의 유기 수저 등을 모두 <행복한상>에서 만나볼 수 있다.




<소로리 by 월향> 우리 쌀의 미래 그리고 맛있는 밥 안주

화려한 카페가 즐비한 홍대 거리에서도 우리 쌀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다.
<소로리 by 월향(이하 ‘소로리’)>이 그곳이다.
<소로리>는 외식업계에서 자리를 굳건히 잡은 ‘월향’이 운영한다.
‘쌀’을 이용해 젊은 사람들의 입맛에 맞게 메뉴를 개발한 월향은 요즘 사람들이 우리 쌀을 잊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을 담아 이 공간을 만들었다.
소로리는 청주시 청원군의 마을 이름이다.
소로리에서 발견된 1만 4천 년 전 야생 볍씨는 ‘한국이 쌀의 기원지’라는 고고학적 증거다.
<소로리>라는 상호는 이런 전통성을 근간으로 한다.
오후 2시에 문을 여는 이곳은 밥집이라기보다 술집에 가깝다.
늦은 점심을 먹기 위해 방문하는 손님도 적지 않지만, 그래도 이곳의 분위기는 해가 지기 시작하면서 무르익는다.
<소로리>에는 우리 쌀로 만든 전통주와 그 전통주에 잘 맞는 다양한 음식들이 많다.
그 중 대표 메뉴이자 인기 메뉴가 ‘강황쌀피자’다.
도대체 어떤 음식일지 감이 잘 오지 않는다.
주문을 했다.
지름 10cm 정도의 피자가 나왔다.
살펴보니 피자 도우가 밥이다.
강황을 넣어 밥을 하고, 이 밥으로 도우를 만든다.
그 밥 도우 위에 치즈와 베이컨 등 다양한 재료를 토핑했다.
영락없는 미니 피자다.
한 조각 떼니 치즈가 주욱 따라온다.
‘피자 토핑이 올라간 덮밥 맛이겠지’라고 예상했는데 아니다.
도우가 조금 특별한 피자다.
보통은 둘이 하나를 시켜서 먹는다는데 나는 혼자 하나를 다 먹었다.
끼니 대용으로도 아주 훌륭했다.
무엇보다 밀가루를 멀리하려는 요즘의 내 식성에 딱 맞았다.
이 외에도 장조림버터밥의 인기가 높고, 제대로 된 밥을 먹고 싶은 사람에게는 계절별로 엄선한 쌀로 지은 솥밥을 추천한다.





복합문화공간 <인사1길> 컬처 스페이스

<행복한상>에서 식사를 마쳤다면 이곳과 한 몸인 복합문화공간 <인사1길> 컬처 스페이스를 방문해보자.
<인사1길>은 오래된 건물을 리모델링한 공간으로서 보는 즐거움이 있다.
구조를 살펴보아도 좋고, 여기저기 드러난 옛 흔적을 찾아보는 것도 재미있다.
건물 외관에 ‘빠고다가구’라는 상호가 그대로 남아 있어 이곳이 가구공장이었거나 판매장이었다는 것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지난해 가을 개관한 <인사1길>은 종로 방면 인사동길 초입에 자리 잡고 있다.
1층엔 카페, 예술서적, 공예품을 전시하고 판매를 하는 공간이 있고, 2층에 갤러리와 카페가 있다.
갤러리에서는 개관기념 전시로 ‘아프리카 미술전’이 진행되고 있다.
갤러리 공간에서는 묘한 신비를 느낄 수 있다.
색색의 유리를 통해 비치는 햇살을 만난 것도 좋고, 2층에서 3층으로 연결된 계단은 그 화려함에 눈이 번쩍 뜨인다.
특별히 작품이 아니어도 오래 된 공간을 보는 것만으로도 시간이 즐겁게 흐른다.
화려한 계단을 따라 오르면 야외 옥상으로 이어진다.
겨우 3층 건물 옥상이지만 종로 거리와 서울의 스카이라인을 감상할 수 있기에 숨겨두고 싶은 공간이다.


<행복한상> 서울시 종로구 인사동1길 12
<소로리 by 월향> 서울시 마포구 와우산로29바길 11-4
<인사1길> 서울시 종로구 인사동길 7



필자소개 윤혜자
책을 비롯한 다양한 컨텐츠를 엮는 기획자로 일했다.
나이 들어 결혼, 아침을 안 먹으면 하루 일과를 시작 못 하는 남편과 살며, 그리하여 즐거이 매일 아침밥을 지어 상을 차린다.
손수 밥을 지어 먹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깨닫고 음식공부를 하고 있다.
남편과 함께 동네 술집과 밥집을 어슬렁거리며 맛있고 즐거운 음식점을 만나면 여기저기 소문내는 일을 즐거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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