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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라의 밀양댁 엄마 손 밥상 - '누렁뎅이'가 하사하는 겨울 별미 <달콤한 호박죽과 호박전>

이미라의 밀양댁 엄마 손 밥상

글과 사진 이미라




‘누렁뎅이’가 하사하는 겨울 별미

달콤한 호박죽과 호박전





시골에서 자란 나는 매일 아침 엄마의 비질 소리에 잠을 깨곤 했다.
마당에 감나무 한 그루가 있었고, 그 아래 똥개 한 마리를 키웠는데 그 둘의 조합은 매일 마당을 어지럽혔다.
웬만한 단풍나무 못지않게 곱게 물드는 감나무 잎사귀들은 매일 아침 낙엽을 듬뿍 선사했고, 똥개 ‘갑순이’는 엄청난 털 뭉치를 늘 날려댔다.
‘갑순이’에게 잔소리를 쏟아부으며 비질을 하시는 엄마의 모습이 너무 고생스러워 보여서 난 결혼 후 16년간 아파트 생활을 고집해왔다.
그런데 몇 해 전부터 남편이 전원생활을 하고 싶다고 노래를 불러댔다.
나는 못 들은 체하며 꿋꿋이 버티다가 두 아들의 성화가 더해지는 바람에 결국 설득당하고야 말았다.
1년여의 준비기간을 보내고 한 달 전 전원주택으로 이사를 왔다.
물론 나는 아침에 비질을 하지도 않고 엄마처럼 바지런하게 움직이지도 않고 있지만, 우리 집 마당에는 심은 지 한 달 된 아기 감나무도 있고 ‘오구’라는 이름의 개도 있다.
이사를 온 후 집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졌다.
쓸데없이 숯불을 지펴서 고등어도 구워보고 군고구마도 구워보았다.
그 맛에 반해 석쇠불고기까지 도전하다가 연기로 배를 반 채운 후 고기를 먹기도 했다.
그러다가 결국 마당에서 호박죽까지 끓이게 되었는데 만드는 김에 호박전까지 부쳤다.
물론 늙은 호박을 내가 장만하지는 않았고, 엄마가 정성스럽게 속을 긁어다주신 호박으로 만들었다.
호박은 정말 마법 같은 야채로 버릴 게 하나 없다.
애호박으로 반찬도 만들고 찌개, 국에 넣어 먹는 건 물론이며 여름에는 주구장창 호박잎쌈을 먹어댔다.
가을에 딴 늙은 호박은 씨를 빼고 숟가락으로 박박 긁어두었다가 죽도 만들고 전도 만든다.
엄마가 ‘누렁뎅이’라고 부르며 애정해 마지않는 늙은 호박은 시래기와 함께 늘 냉동실에 저장해두는 식재료다.
칼로 썰면 맛이 덜하다며 굳이 숟가락으로 긁어서 호박죽 재료를 준비해두신다.

긁어둔 호박 속을 냄비에 넣고 거기에 물을 자작하게 부어서 끓이다 보면 호박이 잘 익어서 부서질 지경에 이른다.
이때 삶아둔 팥과 콩을 넣고 소금과 설탕으로 간을 맞춘다.
그 위에 찹쌀가루를 두께 0.5cm가 되도록 뿌리고 뚜껑을 덮고 불을 줄인다.
잠시 후 열어보면 찹쌀가루가 보글보글 끓으면서 익어 있는데 이때 주걱으로 대충 저으면 죽이 걸쭉해지면서 찹쌀가루가 덩어리져 마치 떡을 넣은 것처럼 된다.
호박전은 찹쌀가루를 넣고 부치면 쫀득하고 밀가루를 넣고 부치면 겉이 바싹해진다.
시판용 부침가루 몇 숟가락과 설탕을 조금 넣고 반죽하면 간단하게 호박전을 만들 수 있다.
설탕을 넣지 않은 부침개를 꿀에 찍어 먹었더니 맛탕을 먹는 듯 색다른 맛이 났고 아이들이 좋아했다.
다가오는 봄, 텃밭을 가꿔 친환경 농사를 실천하겠다며 영하의 추위 속에서도 지렁이 통을 만들어놓고 매일 과일 껍질이며 채소 찌꺼기들을 넣어 퇴비를 만드는 남편을 보면서 ‘저 사람이 16년간 음식물쓰레기 한 번 버린 적 없는 그 사람이 맞나’ 싶다.
주인의 맘을 아는지 ‘오구’는 꼭 밭에 가서 똥을 싼다.
온 가족의 바람이 퇴비가 되어 새해 농사가 성공적으로 지어지길 꿈꾸어본다.
과연 ‘누렁뎅이’가 주렁주렁 달려 있는 호박넝쿨을 우린 만날 수 있을까?



필자소개 이미라
고향을 벗어나고 싶어 발버둥 쳤으나 고향 남자와 결혼해서 고향에 살고 있는 밀양댁.
1961년부터 이어져온 <청학서점>의 안주인이자, 독서모임 <다락방>, <멜로디>의 리더.
두 아이의 엄마로 사교육을 멀리하고 예술을 사랑하는 아이로 키우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으며, 보약 한 번 안 먹이고 오로지 밥의 힘으로 건강하게 키우기 위해 열심히 집밥을 차리고 있음.
비전문적인 다양한 분야에서 활발히 활동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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