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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대한의 시간을 듣는 남자 - 가면무도회

원대한의 시간을 듣는 남자

글과 그림 원대한



가면무도회





연말마다 선배들과 함께하고 있는 오케스트라 연주가 끝났다.
아마추어지만 끝내고 나면 이것도 연주회라고 공허함에 며칠을 앓아눕곤 한다.
올해는 더군다나 10주년을 앞둬서일까, 만감이 교차하는지 후유증이 길다.
매년 프랑스 가곡 모음, 영화와 드라마 삽입곡 모음, 바로 크곡 모음 등 주제를 정해서 연주했던 것이 벌써 9년이 쌓였다. 
올해는 레퍼토리가 동난 것인지, 모두가 조금씩 지쳤는지, 주제 없는 연주회를 계획해버렸다.
연주하고 싶은 곡 리스트를 멤버들에게 받았다.
가장 많은 표를 받은 <라라랜드> OST 모음을 선두로 크리스마스 캐럴, 베토벤의 교향곡 한 악장 등 10개 남짓한 연주 리스트가 정해졌다.
앙코르 곡 캐럴에 맞춰서 준비할 깜짝 코스튬을 생각하다가 불현듯 리스트에서 공통점을 가진 두 곡을 발견했다.
하차투리안의 <가면무도회 모음곡>과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 메들리. 지휘자 선생님 가면이라도 씌워드려야겠다고 우스갯소리를 했지만, 머리를 한 대 맞은 기분이 들었다.
사람은 누구나 가면을 쓰고 살아간다.
화려한 가면 속에 자신의 약점을 감추기도 하고, 지극히 평범한 가면으로 보이기 싫은 자신의 본성을 숨기기도 한다.
연주회 동영상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가면무도회 같은 삶에 시달리다 사라져버린 사람들을 떠올렸다.
그리고 그들뿐만 아니라 어른이 되기 전부터 SNS 기반의 삶을 산 세대인 나도, 친구들도, 여러 종류의 가면 속 삶의
역치에 다다른 한 해였던 것 같다.
우리는 이 가면을 벗을 수 있을까?
가면을 벗는 걸음마가 필요한 것은 아닐까?
아니면 가면을 쓴 채로 고른 숨을 쉬며 살 수 있는 방법을 배울 시점일까?
팬텀의 가면을 벗겨준 크리스틴같이, 누군가가 이 가면을 벗겨주기를 기다리고 있는 걸까?
머리가 조금은 아프지만, 이런 고민들과 함께 맞는 새해는 조금 더 건강할 테다.





하차투리안 <가면무도회 모음곡>
아르메니아 출신의 러시아 작곡가 하차투리안의 곡으로, 이 앨범은 키릴 콘드라신이 지휘한 버전이다.
이 곡은 레르몬토프의 드라마 <가면무도회>를 위해서 작곡되었고, 당시 여주인공 배역을 맡은 알라 카잔스카야에게 헌정된 곡으로도 유명하다.
2010년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일본 여자 피겨스케이팅의 아사다 마오가 이 곡에 맞춰 연기를 하기도 했다.


필자소개 원대한
그래픽디자이너.
느리게 작업을 하면서 때때로 여행을 다니곤 한다.
책 <엄마는 산티아고>와 <그날 오후의 커피>를 썼다.
오래오래 듣고 보고 부르고 연주하며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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