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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근두근 문화 채집단 - 젊은 필진들이 선별한 이달의 문화

두근두근 문화 채집단

영감과 만족을 주는 것이면 장르를 불문하고 무엇이든 OK! 통통 튀는 젊은 필자들이 취향껏 선별한 각종문화 정보를 소개합니다.



나의 그림자, 너의 거울

영화 <안녕, 나의 소울메이트> 증국상




나의 이야기로 다가오는 영화가 있다.
좋은 서사라면 무릇 그러하겠지만 인물의 경험이 내 것과 겹쳐질 때 그것은 더더욱 개인적인 것이 된다.
열세 살에 처음 만나 서로를 그림자처럼, 거울처럼, 또 다른 ‘나’처럼 여겼던 칠월과 안생, 시간의 흐름에 따라 두 사람이 현재의 자리에서 반쪽을 그리워하는 이야기인 <안녕, 나의 소울메이트>가 그랬다.
열일곱, 둘의 세계에 칠월의 남자친구 가명이 등장하며 둘은 셋이 되었다가, 안생이 베이징으로 떠나는 걸 시작으로 두
사람은 이별과 재회를 반복한다.
명백하게 떠나는 쪽과 머무는 쪽으로 나뉘는 듯 보였던 안생과 칠월은 서로의 발자취를 따르며 자리를 바꾸기도 한다.
미래를 약속하며 웃고, 둘뿐인 줄 알았던 세상에 다른 존재를 감지했을 때 절망하고, 이별이 슬퍼서 울고, 배신감에 소리치는, 날것의 감정을 보일 수 있는 관계란 얼마나 귀한 것인지.
누군가가 나의 안생, 나의 칠월을 떠올릴 수 있다면 행운이리라.  박지형



작은 피아노 소나타

음악 미츠코 우치다




특별히 클래식을 찾아 듣진 않았지만, 내게 클래식이 익숙한 이유는 눈을 뜨는 동시에 라디오를 켜는 엄마의 영향일 것이다. 
라디오에서는 하루 종일 서로 다른 장르의 음악을 틀어준다.
얼마 전 우연히 모차르트 소나타를 듣게 됐다. ‘Sonata Facile’이라는 별칭을 가진 곡(자장가로 많이 알려진 곡)이었는데, 한 번도 그 이름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문득 뜻이 궁금해져 피아노를 전공한 친구에게 물었다.
“Sonata Facile이 무슨 뜻이야?” 답이 왔다.
“작은 피아노 소나타? 쉬운?” 얼굴과 이름이 꼭 어울리는 사람처럼 그 곡에 정말 잘 어울리는 이름이었다.
음악 앱에서 모차르트 소나타를 검색하니 수십 개의 앨범이 나왔다.
미츠코 우치다(Mitsuko Uchida).
이유 없이 더 마음이 가는 연주자였다.
그녀가 연주한 모차르트 소나타 앨범 전체를 재생했다.
다섯 시간하고도 반.
나는 주로 산책을 하며 음악을 들었는데, 한 곡을 더 들으려고 산책길을 부러 돌아 걷기를 서슴지 않았다.
물론 나 같은 일자무식은 어떤 이유로 그녀의 연주가 다른 누구의 연주보다 더 좋은지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겨울나무 가지를 닮은 그녀의 피아노 솔로가 나의 코 시린 겨울 산책길을 기껍게 해줬다는 사실이다.  박윤혜



세계를 감동시킨 서른여섯 젊은 의사의 마지막 기록

책 <숨결이 바람 될 때> 폴 칼라티니




‘죽음이 우리 주변에 있다’는 말은 참 힘이 없기도 하고 가장 중요한 말이기도 하다.
그 말을 할 수밖에 없는 사람과 그 말에서 도망 다니는 사람, 그 둘 사이의 거리나 속도 같은 것들이 너무 차이 나기 때
문이다.
두 관계 사이에는 참 넓은 공간이 있다.
그런데 누군가 끈기를 가지고 죽음에 관해 말한다면, 끝나지 않는 질문들과 안타까움과 희망, 포기와 용기가 치열하게 섞인 문장들로 그 공간을 채웠다면 어떨까.
또 그가 여든 살이 된 것도 아니고, 오래전부터 죽음을 두려워했던 사람도 아니며, 잃을 게 없다거나 삶을 사랑하지 않던 사람도 아니라면.
도망치는 일은 아마 민망한 일이 되고 말 것이다.
폴 칼라티니는 길고 긴 과정을 마치고 이제 1년 뒤면 가장 신뢰받는 신경외과 의사가 될 예정인 사람이었다.
그는 안타깝게도 서른여섯살의 나이에 폐암으로 사망했고 이 책은 그가 죽기 전에 온 힘을 다해 적어나간 글을 엮은 것이다.
그는 우리와 타인, 삶과 죽음 사이에 관해 적었고 그래야 했던 것처럼 죽은 후에 우리를 정중히 초대했다.
그가 주최한 이 발표회는 우리가 죽기 전까지 매일, 어디에서나 열린다.  전진우



미야모토 테루의 슬픔 3부작

책 <반딧불 강> 미야모토 테루





2년 전〈 인사이드 아웃〉이라는 애니메이션 영화가 개봉했다.
주인공 라일리의 감정을 담당하는 슬픔, 기쁨, 버럭, 까칠, 소심이라는 캐릭터들이 마음 속 감정 컨트롤 본부에서 라일리의 행복을 위해서 각자의 임무에 최선을 다한다는 이야기다.
관객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은 캐릭터는 주인공 ‘라일리’나 씩씩한 ‘조이’가 아니라, 항상 무기력하고 우울한 ‘슬픔’이다.
‘슬픔’이는 이사 후 낯선 환경에 적응해야 하는 라일리의 어두운 기분을 관객들이 더 쉽게 이해하게 하고, 결정적인 순간 라일리가 차분하고 성숙한 선택을 하도록 돕는다.
요컨대 슬픔이란 마냥 부정적인 감정이 아니라는 것이다.
슬픔을 좋아한다는 것이 조금 이상할 수 있지만 슬픔이 모티브인 이야기나 음악이 도처에서 소비되는 것을 보면 슬픔이란 본래 인간에게 자연스러운 감정이라는 생각이 든다.
평소 밝고 화려한 이야기보다 차분하고 슬픈 이야기를 좋아한다면 미야모토 테루의 소설을 추천하고 싶다.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영화화한 <환상의 빛>이 성인 여성의 완벽하고 절제된 슬픔이라면, 미야모토 테루의 <흙탕물 강>과 <반딧불 강>은 슬픔이란 것을 처음 알게 된 유년기와 청소년기의 막막한 슬픔이다.
어쩌면 우리 모두가 한 번쯤은 겪어보았기에 낯설지 않을지도 모른다.  한지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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