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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인터뷰 1 - 담장을 허물고 이주민의 생을 기록하는 사람들 <이주민 구술 생애사 프로젝트 (담)>
따뜻한 인터뷰 1

인터뷰 장보영
사진 김영민



이주민 구술 생애사 프로젝트 <담>

담장을 허물고 이주민의 생을 기록하는 사람들



삭풍이 불던 1월의 어느 퇴근길, 지하철에서 인터넷 기사 하나를 읽었다.
네팔에서 온 오쟈 씨가 한국의 노동현장을 전전하면서 온몸으로 통과했던 차별과 혐오의 시간을 다룬 인터뷰였다.
문득 7년 전에 만났던 네팔 사람 이철수 씨(한국이름)가 떠올랐다.
당시 그는 5년 동안 안산의 수건공장에서 일했고 그때 모았던 돈으로 네팔에 돌아와 지금의 숙소를 지었다고 서툰 한국말을 들려줬는데, 지난해 네팔에 다시 갔을 때 숙소에는 빈 바람만 불었고 그는 그곳에 없었다.
굳이 오래된 기억을 불러낸 이유는 그것이 ‘이주노동자’에 대한 나의 최초의 기억이기 때문이다.
그 당시 네팔에서 내가 만난 네팔 사람 다수는 한국을 알고 있었고, 어색하게 한국말을 할 줄 알았으며, 한국에 무척 가고 싶어 하거나 한국에 다녀간 적이 있었다.
이는 1970년대 산업화시기를 지나며 우리나라의 많은 아버지들이 돈을 벌기 위해 중동 국가의 건설현장으로 파견됐던 상황과 겹쳐진다.
자본의 흐름 안에서 자신의 노동력을 팔고자 세계의 노동시장을 유랑하는 일이 여전히 현재진행 중인 셈이다.
이주민 구술 생애사 프로젝트 <담>은 총 7명(사월, 돌멩이, 재현, 박유호, 최수정, 정지윤, 손진우)의 경기지역이주노동자공동대책위원회 참여단체 소속 활동가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들은 오쟈 씨 외에도 여성 이주노동자 스레이나 씨, 북한이탈주민 김복주 씨, 이주청소년 황윤호 씨, 이주노동자 영상활동가 아웅틴툰씨, 종교적 난민신청자 A 씨, 귀국 이주노동자 날라끄 씨를 인터뷰해 <담을 허물다>라는 자료집으로 묶었고 <미디어오늘>에 원고 전편을 연재했다.
현재 한국에는 다양한 체류 자격을 가진 이주민들이 200만 명 이상 살고 있음에도 이주민과 이주노동자들의 인권과 노동 문제는 여전히 안갯속이다.
프로젝트 이름인 <담>은 우리 사회에 들리지 않는 이주민들의 이야기를 ‘담는다’는 의미와 함께 한국 사람과 이주민 사이의 ‘담’을 허물자는 의미에서 지어졌다.
지난 1월 중순, <담> 기획단을 대표해 정지윤 씨와 손진우 씨를 수원이주민센터에서 만나 프로젝트 전반에 관한 이야기들을 들어봤다.




우리 사회에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사람들


간단하게 본인에 대한 소개 먼저 부탁드려요.

정지윤
수원이주민센터에서 활동하는 정지윤이라고 합니다.
2007년부터 이곳에서 활동하며 이주민과 이주노동자들을 만나왔어요.
그 전에는 대안학교에서 교사로 지냈구요.
누군가가 저에 대해 누구냐고 물었을 때 ‘평화활동가’라고 소개합니다.

손진우
저는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에서 반도체 전자산업 노동자들을 위한 인권활동을 하고 있고, 최근에는 급증한 청소년 현장실습생 산업재해 및 사망사고와 관련된 대책활동 등 노동현장에서 발생하는 산업재해 문제들에 관심을 가지고 행동하고 있는 손진우라고 하구요.
프로젝트 활동명은 ‘푸우’입니다.

두 분 모두 오랜 기간 노동자들의 인권과 관련된 활동을 해오셨네요.
<담> 프로젝트는 어떻게 처음 출발하게 됐나요?

정지윤
저희가 소속된 경기지역이주노동자공동대책위원회(이하 경기이주공대위)에서 매년 초마다 연간 활동계획을 잡는데 그 과정에서 이주민들의 노동현황에 대한 문제의식이 제기됐어요.
1년에 몇 차례씩 크고 작은집회, 기자회견, 캠페인, 1인 시위 등을 진행하지만 정작 그 자리에 참석하고 있는 이주민과 이주노동자들의 이야기는 들을 기회가 없었죠.

손진우
우리 사회에 엄연히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취급되는 사람들이 바로 이주노동자와 이주민들이거든요.
일터에서 발생하는 이주민 산업재해 및 피해 사례들이 어느 정도 수면 위로 떠오르기는 했어도 구체적으로 그들이 어떤 노동을 하고 어떤 일상을 보내는지는 잘 알려져 있지 않아요.

그동안 지속해온 활동들의 포커싱이 ‘이주민’을 향한거로군요.

정지윤
매스컴에서 이주민을 다루고 소비하는 방식을 보면 굉장히 단편적이고 정형화되어 있어요.
차별받고 고통받는 노동자, 아니면 혐오대상인 범죄자, 아니면 ‘한국사람 다 됐다’며 우리 사회에 너무 잘 동화되어 살아가고 있는 다문화 이주여성.
그 획일화된 틀에서 벗어나 다른 이야기들을 담아보고 싶었어요.

손진우
이주민들의 일과 일상이 과연 어떤지, 한국 사회에서 그들이 얼마나 부당한 대우를 받으면서 살아가고 있는지 등을 자세히 들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경기이주공대위 활동가들이 주축이 되어 지난해 12월 18일 ‘세계 이주민의 날’을 맞아 1년간 이번 프로젝트를 진행했어요.

두 분을 포함해 총 7명의 프로젝트 팀원들은 어떻게 구성됐나요?

정지윤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노동당, 다산인권센터, 수원다문화도서관 지구별상상 등에서 이주민 인권과 노동 문제에 관심이 있는 활동가들이 뭉쳤습니다.
저의 경우 오래전부터 ‘이주민 아카이브 작업’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왔는데, 자발적으로 연대해서 팀을 구성하니까 이주민을 향한 다양하면서도 깊이 있는 시각들이 나오더라구요.
다만 일반 시민들의 참여가 빠졌다는 점이 아쉬워요.
이주민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과 이해가 아직까지는 넓게 확산되어 있지 않아 한계가 있었어요.




그 사람의 신발을 신고 그 사람의 눈으로 본다는 것


이주민들의 이야기를 그들의 입을 통해 직접 들어본다는 것이 상당히 의미 있다고 생각했어요.

정지윤
이주민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굉장히 서툴고 낯선 한국말인데도 새로운 관점들을 발견하곤 했는데요.
제가 집중했던 활동 중 하나가 이주노동자들이 생활하는 공장이나 기숙사에 직접 찾아가는 일이었어요.
밌게도 그들을 밖에서 만났을 때와 다르게 그들이 그들의 공간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것을 들어보니
말의 주도권이나 내용이 바뀌더라구요.

흥미롭네요. 예를 들면요?

정지윤
야간에 한국인 노동자들이 모두 집에 돌아가고 혼자 작업하는 상황에 대해 “기계, 나 똑같아요”라고 말한다거나, 그렇게 일하다가 시공간 감각이 무뎌지는 상황에 대해 “나, 천장, 바닥 똑같아요”라고 말한다거나…. 사실 별 말 아닌데 그렇게 순간순간 던져지는 짧은 이야기들이 건드리는 삶의 또 다른 진실이 있었죠.

손진우
아주 소중하게 다뤄져야 할 노동역사의 한 페이지잖아요.
가감 없이 ‘그 사람의 신발을 신고 그 사람의 눈으로 보면서 내가 대신 전달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전달하는 작업이다 보니 쉽지는 않았어요.

아무래도 외국인이다 보니 소통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겠네요.

손진우
경기이주공대위 주변 네트워크를 통해 활동도 열심히 하고 한국말도 어느 정도 할 수 있는 분들을 인터뷰이로 추천받았지만 기초적으로 드린 질문에서 막히는 경우도 많았고, 막상 저희가 알아듣기는 했어도 당사자가 처한 상황과 그의 언어, 감정, 느낌을 온전히 담아내고 전달한다는 게 참 어렵더라구요.

정지윤
인터뷰를 진행하다 보니 머리로 잘 이해되지 않는 경우도 생겼어요.
미등록 체류자로 잡힌 뒤에 난민신청을 해서 보호소에 감금되신 분들 이야기를 듣다보면 ‘고국으로 돌아가는 게 좋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곤 했는데 막상 이분들이 안 가시더라구요.
그럴 때 마다 ‘판단하거나 개입하지 말고 온전히 있는 그대로를 보고 듣자’고 다짐했어요.
따지고 보면 내 삶에도 잘 설명되지 않는 부분이 있잖아요.

‘하위 주체는 말할 수 없다’는 가야트리 스피박의 말이 떠오르네요.

정지윤
일차적으로는 ‘내 온몸이 귀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일단 그들의 말 자체가 나에게 흡수되도록 듣는 작업이 선행되어야겠다고.
그리고 ‘듣는다’는 것의 의미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어요.

인터뷰하신 7인의 이주민은 어떤 배경으로 참여하게 됐나요?

손진우
‘당신들의 진솔한 이야기를 담고 싶다’는 저희 프로젝트의 취지를 설명했을 때 이를 이해하고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실 수 있는 분들을 우선 섭외했어요.
그리고 이주민이라 했을 때 이주노동자만 있는 게 아니잖아요.
여성 이주노동자, 북한이탈주민, 이주청소년, 종교적 난민신청자, 귀국 이주노동자 등 다양하거든요.

정지윤
처음에는 ‘이주노동자들에게 포커스를 둬야 하나?’라는 논의도 있었어요.
경기이주공대위가 이주노동자들을 위한 단체이고 저희가 그들의 문제에 집중하고 있으니까요.
그런데 이주청소년, 여성 이주노동자 모두 일하면서 살잖아요.
커다란 틀에서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는 게 좋겠다는 의견이 모아졌죠.




최근 <오마이뉴스>, <미디어스>, <미디어오늘>에 프로젝트가 소개됐었죠.

손진우
이 내용이 되도록 많은 사람들에게 가닿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었어요.
감사하게도 저희의 뜻에 공감한 <오마이뉴스>, <미디어스>, <미디어오늘>에서 저희의 프로젝트를 소개했고 그중 <미디어오늘>을 통해서는 1월 한 달 동안 시리즈로 기획 연재됐어요.
로젝트 기사들의 댓글을 보면 ‘몰랐다’는 내용들이 참 많아요.
‘요즘 시대에 아직도 그런 곳이 있느냐’부터 ‘이렇게 다양한 이주민들이 우리나라에 있는지 몰랐다’는 반응들이요.
반면 그에 못지않게 공격하는 댓글도 많아요.
‘제 정신이냐, 인권 파리들아, 너희 같은 애들 때문에 나라가 망한다’ 같은.
이주민들의 이야기를 쓰고 그들을 옹호한다는 거 자체가 마음에 안 드는 거죠.

정지윤
인터뷰를 본 사람들이 말하길 정말 이런지 몰랐다고, 부끄럽고 화가 난다고 하더라구요.
그리고 인상적이게도 ‘이주민들에게 고맙다’고 하더라구요.
그러한 악조건 속에서도 한국의 노동시장에 기여하고 있는것을 인정한다는 이야기죠.

단행본으로 발간할 계획은 없으신가요?

손진우
이번 프로젝트 결과물을 <담을 허물다>라는 자료집으로 발간했고 유가로 지역에서 판매할 수 있을 분량만 찍었는데 다 팔렸어요.
책을 더 찍어야 한다는 요구들이 있어 현재 협동조합 등을 비롯해 출판을 지원해줄 수 있는 곳들을 알아보고 있습니다.


세계의 노동시장을 떠도는 경제적 난민들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특별히 마음이 아팠던 사연이 있었나요?

손진우
네팔에서 온 이주노동자 오쟈 씨 이야기인데요.
노동현장에서 그렇게 욕 듣고 차별 당하는데도 한국 사람들이 좋다는 거예요.
그러면서 마트나 백화점갔던 이야기를 들려주더라구요.
자신이 회사에서는 투명인간 취급받는데 손님으로 가니까 ‘안녕하세요, 어서오세요’라면서 점원들이 엄청 친절하게 잘해주더라는거예요.
그냥 형식적인 인사일 뿐인데 고마움을 느꼈다는 오쟈 씨의 말을 듣고 되게 미안하고 가슴이 아팠어요.
오자 씨는 한국에 와서 사업장을 무려 세 번이나 옮겼다고 해요.
그런데 한국인 노동자들과 함께 밥을 먹거나 회식을 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대요.
외국인 관광객들한테는 친절하면서 우리 일상에 깊숙이 들어와 있는 사람들에게는 어땠는지 되물음이 필요한 시점이라
는 생각이 들었어요.

정지윤
귀국 이주노동자 날라끄 씨의 이야기를 들려드리자면, 한국에서 10년 동안 애정을 가지고 정말 열심히 일했는데 굉장히 억울한 상황에서 강제 퇴거를 당하고 귀국한 경우거든요.
잘못한 것이 아무것도 없는데도 한국 대사관에서 비자를 안 내줘서 5년 동안 한국 재입국을 못하고 있어요.
활동가들과 계속 접촉해왔던 이주노동자들인데도 국가가 가지고 있는 권력 앞에서 저희가 아무 힘이 없더라구요.
굉장한 무력감을 느꼈어요.

국내에 거주하는 이주민이 무려 200만 명이나 되는데 이주민에 대한 인식이나 제도의 문제는 여전히 제자리걸음인 것 같아요.

손진우
대통령 선거나 국회의원 선거 앞두고 후보들이 제일 먼저 가는 데가 우리나라에서 가장 소외된 사람들이 있는 곳이잖아요. 
노인정에 가고 양로원에 가고 고아원에 가고 장애복지원에 가고. 그런데 이주노동자들이 있는 현장은 찾아가지 않아요.
왜냐하면 그들은 유권자가 아니니까요.

정지윤
흔히 이주민들이 한국에 오는 걸 본인 선택이라고들 생각하죠.
‘너희 돈 벌려고 한국 온 거잖아, 여기서 번 돈으로 너희 나라 가면 잘 살잖아, 너희가 오고 싶어서 온 거니까 못하겠으면 돌아가’라고.
그들이 개인의 노동력을 팔기 위해 온 사람들이라 생각하고 균등한 입장에서 교환이 이뤄진다고 단순하게 생각하죠.
그런데 그게 아니거든요.
자신의 노동력을 팔 데가 없어진 상황에서 최악에 몰려 결국 세계를 떠돌게 된 건데 이주민들을 단지 쉽게 돈 벌러 한국에 왔다고만 단편적으로 보는 거죠.

‘경제적 난민’ 아닐까요? 그로 인해 빚어지는 2차적인 문제들도 더러 있겠어요.

정지윤
우리나라는 가족 동반입국을 허용하지 않으니까 우리나라에 오래 거주했던 이주민들 중 일부는 가정이 파괴되기도 하고, 고향 돌아가기 직전에 두려움이나 우울증을 앓기도 해요.
그런 경우 고국으로 돌아가기는 가야 하는데 가족들과 다시 같이 살 엄두가 안 나는 거예요.
내가 키워보지 못한 자식, 남처럼 살았던 아내…. 돈과 삶을 바꾸면서 자기 삶을 파괴하고 있는 거예요.

손진우
‘세계화’라는 것이 원래 자기 땅에서 집단적으로 향유했던 공동체성을 파괴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어요.
오자 씨의 경우 주변 친구들이 다 한국에 왔어요.
식구 중 한 사람이 한국에서 돈을 벌고 그 돈으로 고국의 가족들이 생활하는 거죠.
그런데 기본욕구나 생활가치가 올라간 이상 네팔도 이제 한 사람이 벌어서 먹고 살 수 있는 구조가 아닌 거예요.

근본적으로 이주민들에 대한 우리의 인식부터 달라져야 할 시점인 것 같아요.

손진우
제 친구의 사례를 들려드리면, 네덜란드 사람과 결혼해서 지금 네덜란드에 살고 있는데요.
그런데 아이를 가지게 되자 시청 직원이 찾아와서 그러더래요.
당신 덕분에 당신의 자녀는 정말 특별한 재능을 가지고 자랄거라고. 당신이 한국 사람이라 자녀가 태어나면 한국말을 가르쳐줄 것이고 아빠가 네덜란드 사람이니 두 가지 언어를 동시에 배울 것 아니냐며.
이 이야기를 듣고 충격을 받았어요.
우리나라와는 완전 다른 이야기잖아요.


바위에 계란의 흔적은 분명 남을 것이다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뿌듯했던 점은 무엇이었나요?

정지윤
참정권도 없는 이주민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어디에 주장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잖아요.
아무리 혼자말을 해도 들으려는 사람들이 없으면 말은 사라지기 마련이죠.
그냥 그들의 이야기를 꾸준히 들으려고 찾아갔던 것 자체에 의미를 두고 싶어요.

손진우
위험은 사라지는 게 아니라 우리 눈에 보이지 않을 뿐이고 가장 열악한 사람들한테 옮겨지죠.
그 중심에 이주민들이 있는 거구요.
이건 국내의 상황인데 최근 청소를 낮에 하는 방식으로 바꾸겠다는 이야기가 드디어 나왔어요.
새벽에 일하기 때문에 그렇게 많은 청소노동자들이 차에 치여 죽는 사고가 발생했던거거든요.
대낮이었다면, 그들의 노동이 눈에 보였다면, 그렇게 안 됐겠죠.
눈에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보이게 하는 일에 힘쓰고 싶어요.

계란으로 바위치기처럼 느껴지기도 할 것 같아요.
럼에도 이 일을 꾸준히 해나갈 수 있는 동력은 어디에 있나요?

손진우
제가 산업재해 피해자들의 인권과 관련된 활동들을 해오다보니 그런 질문을 정말 자주 받는데 그럴 때마다 이렇게 대답해요.
계란으로 바위치기 맞다고.
그런데 그 바위에 계란의 흔적이 남을 거라고.
그러면 그 바위는 더 이상 깨끗한 바위가 아니죠.
이 구술사 작업으로 당장 뭔가가 바뀔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다만 지속적으로 우리가 흔적을 남겨야 한다고 생각해요.

정지윤
한국의 노동사를 보면 그 안에 미래가 있을까 싶게 정말 암울하잖아요.
그런데 그 길을 걸어왔거든요.
저는 특별한 힘, 큰 욕심, 사명감 같은 건 없어요.
저 이 시대를 살아가는 내가 내 주변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할 뿐이에요.
그리고 그들이 지나가는 말로 ‘네가 있어서 한국이 참 좋아’라고 해주면 힘이 나요.

프로젝트와 연관된 다음 계획이 있나요?

손진우 자료집 출간 기념으로 지역사회 네트워크를 통해 북 콘서트를 했었는데 다른 단체들에서 자체적으로 북 콘서트를 진행하겠다고 하면 콘텐츠를 활용할 수 있도록 저희가 도움이 되어 드리고 싶어요.
우선 올해 <담> 프로젝트 시즌2를 한번 해보자고 큰 틀에서만 이야기가 오가고 있어요.

정지윤
기자님도 올해 구술 생애사 같이 하시면 안 되나요?
프로젝트 시즌2 계획 잡히면 바로 연락드릴게요. (일동 웃음)





이주민 구술 생애사 프로젝트 <담>
이주민 구술 생애사 프로젝트 <담>은 우리 사회에 엄연히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유령처럼 여겨지는 이주민과 이주노동자 7명에 대한 심층 생애사 인터뷰다.
<담> 기획단은 말하지만 들리지 않는 그들의 이야기를 1년 동안 취재했으며 원고 전편은 <미디어오늘>에서 ‘이주민 구술 생애사’를 검색해 읽어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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