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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건 너머의 물건들 - 남자 형상의 나무 조각 <느릅나무 군>

물건 너머의 물건들

전진우
사진 곽명주, 전진우





남자 형상의 나무 조각 ‘느릅나무 군’


K는 작은 주머니에 넣어둔 나무 조각을 오랜만에 다시, 보이는 곳에 꺼내놓았다고 말했다.
“만들 때는 할 말이 많았는데 지금은 그냥 나무 인형이 되었어요.”
그 말에서 아쉬움보다 ‘다행’의 감정이 느껴졌다.
나무 조각은 어떻게 그냥 나무 조각이 되었을까.
그동안 보이지 않는 곳에 넣어두었다가 꺼낸 이유와 ‘다행’의 기분이 어떻게 오늘 이 자리에 있는 K에게 도착하게 되었는지, 우리는 의자에 앉아서 그 조용한 길을 한번 되짚어보았다.




멈춰 있는 사람

오빠.
나는 뭐든지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요.
목수들은 참 나랑은 성격이 다른 사람들인 것 같아요.
조금씩 조금씩 하겠다는 생각을, 나는 못하겠더라고요.
그림을 그릴 땐 곡선이든 직선이든 금방 되는데요, 목공은 그게 아니더라고요.
마음이 급해서 이 느릅나무 군 만들 때 목이 몇 번 날아갈 뻔했어요.
내가 그렇게 망쳐놓으면 선생님이 조금 다듬어주고 나는 또 망쳐놓고 그랬죠.
그렇게 한 달이 걸렸어요.
선생님이 거의 다 만든 거죠.
나는 그때마다 옆에 있었다고 말해야 맞는 것 같아요.
근데요, 나는그래도 이걸 내가 만들었다고 생각해요.
내가 정말 계속 옆에 있었거든요.
옆에서 선생님한테 얘기를 많이 했어요.
얘를 어떻게 만들고 싶은지, 왜 만들고 싶은지 말예요.
그 선생님 이름이 김시옷이거든요.
그래서 발밑에 시옷이 새겨져 있어요.
아무튼, 선생님이 디테일한 사람이었는데 정말 제 얘길 잘 들어줬어요.
이 인형은 가만히 있어도 감정이 보여야 하고 그게 또 위로를 받을 수 있고, 위로를 받아야만 할 것 같은 형상이 돼야 한다고 말했어요.\
내가 못하는 거니까.
나는 그때 얘를 ‘나’라고 생각했나 봐요.
제 얘기를 다 들은 선생님이 그렇다면 꼿꼿하게 서 있는 모습 말고 약간 등을 구부린 사람으로 하자고 했어요.
“발은요, 발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내가 물었더니, 발끝을 너무 벌리면 당당해 보이고 너무 모으면 지나치게 소심해 보이니까 두 발을 나란히, 평행으로 두고 사이를 좀 띄워두자는 거예요.
그래서 이렇게 멈춰 있는 사람이 됐어요.
그 자리에 서서 어딜 못 가는 사람처럼요.
오빠, 내가 자전거 사고 났던 거 얘기해줬죠? 안 했어요?
재작년 4월에 그 사고가 나고 내가 우울증이 좀 왔던 것 같아요.
좀 큰 사고였거든요.
나 기절했었어요.
부딪히기 전에 아스팔트가 눈앞에 보였던 게 기억나요.




잠깐 동안은 죽은 줄 알았어요.
‘고향 밀양에 왜 자주 안 갔을까.’
그 생각이 문득 나더라고요.
응급차 안에서 정신이 들었을 때 혀를 움직여 보니까 교정기에 입술이 다 붙어서 안 떨어지기에 옆에 있는 친구한테 거울 좀 달라고 했더니 안 된다고 했던 게 생각나요.
그 뒤로 몇 달 동안 집에만 있었어요.
나오질 않고.
아무도 안 만나고 싶던데요.
아무도 중요하지 않다는 생각이 좀 들고 그동안 내가 너무 애쓰고 살았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가족들한테도 잘 못하면서 새로운 사람들한테는 에너지를 많이 썼던 것 같아요.
밝고 따뜻한 얘기를 해야 한다는 강박 같은 것도 있었고요.
나 생각해보니까 매일매일 외로웠어요.
친구도 많고 그 사람들이 나를 자주 찾아줘도 그랬어요.
아마 내가너무 나 자신 지키느라 속마음은 말 못했었나 봐요.
그래서 느릅나무 군 만들 때는 내가 못하는 걸 할 수 있게 해야겠다, 생각했던 거예요.
표정도 짠하게 만들고 당연히 위로받아야 할 것처럼 모양도 다듬고요.
밝고 명랑하고 긍정적인 모습 말고.




옷 안의 옷

근데 선생님이랑 그런 얘기를 하는 동안에요 ‘내가 조금은 괜찮아졌구나’ 하고 느꼈어요.
왜냐하면 그런 얘기를 어쨌든 누군가한테 하고 있었으니까.
사고가 난 그해에 여행을 많이 다녔는데요, 얼마나 많이 다녔냐면 도망 다니는 사람 같았어요.
계속해서 짐을 쌌거든요.
돌아오면 또 짐을 싸고 풀자마자 또 싸고.
그때마다 쟤를 들고 다녔어요.
아요.
얘가 나라고 생각했으니까.
막 창밖을 보여주고 비도 보여주고 어쩔 땐 이불도 덮어주고요.
얘한테 일기를 쓰듯이 세워놓고 말도 했어요.
캐리어에 안 넣고 항상 백팩이나 에코백에 넣어서 가지고 다녔거든요.
그랬더니 맨날 검문에 걸리는 거예요.
모양이 몽둥이 같기도 하니까.
가방에서 나무 인형이 나오니까 검사관도 주변 사람들도 다들 웃었어요.
예전에 제가 동화책 만들 거라고 해줬던 얘기 기억해요?
거기에서 무언가를 줍기 전에 회색인 사람이 있었잖아요.
아무 감동이 없는 사람이 무언가를 줍고 나서 색깔을 가지게 되는 얘기요.
내가 이걸 만들던 당시에 회색이었던 거예요.
너무 문제가 많았단 말이죠.
지금은 어쨌든 그런 것들이 많이 잊혀서 그런지 이제 느릅나무 군을 봐도 그런 애틋함이 없어요.
그러니 다행이에요.
오빠. 근데 이제 보니 파마했네요.
아, 그래요? 제가 보기에도 망한 것 같아요.
네, 느릅나무 군도 모습을 세 번이나 바꿨어요.
얼굴도 새로 칠하고 체크무늬 옷을 입혔다가 검정 재킷도 입혀보고 지금은 이렇게요.
젯소를 바르고 다른 색으로 덧칠을 한 거예요.
내가 새로 단장을 시킬 때마다 선생님을 찾아갔어요.
“옷 바꿔 입었어요. 새 사람이에요. 선생님.”
근데 선생님이 그러더라고요.
새 사람 아니라고.
그 속에 예전 모습이 다 들어 있는 거라고요.





물건이 있는 자리

오빠, 근데 생일이 언제예요?
개암나무네, 오빠는.
의미는 비범. 개암나무 본 적 있어요?
나는 나중에 느릅나무가 내 탄생목이라는 걸 알게 됐어요.
목공방 가서 얼마 지나지 않아 내가 가구는 못 만들겠다고 하고 조각을 해보겠다고 했을 때 발견한 적당한 크기의 나무가 이 느릅나무였어요.
우연히요.
왜 반응이 없어요.
신기하지 않아요?
생님이 조각을 하려면 앞, 뒤, 옆, 위, 아래에서 봤을 때 어떨지 다 그려오라고 했거든요.
내가 그림을 그리는 직업이니까 잘할 줄 알았나 봐요.
근데 나 그렇게 입체적으로 그려본 적이 없거든요.
그래서 이렇게만 그렸어요.
다시 만들고 싶은 게 있냐고요?
이 그림에 남자 옆의 강아지 보여요?
사실은 그때 같이 만들어주고 싶었는데 제 꿈이 좀 컸죠.
만약에 지금 뭘 만들면 느릅나무 군한테 친구를 만들어주거나 개를 만들어주고 싶다는 생각은 해요.
그런데 당장 하고 싶은 건 아니에요.
지금은 나 말고, 다른 데 집중할 수 있어서 좋아요.
그나저나 느릅나무 군 주문이 되게 많이 들어온 거 알아요?
연하죠.
그럴 생각 없어요.
저걸 어떻게 계속 만들겠어요.
그런가? 정말 이런 인형이 사람들한테도 필요하긴 할까요?




필자소개 전진우
대학에서 체육과 문예창작을 전공하고 졸업 후 2년간 에디터 생활을 했다.
오래 지냈던 경기도 의정부에 친구와 가족이 모두 있어서 항상 생각이 그리로 흐르는 편이다.
편안한 마음으로 체험한 주변 이야기를 글과 사진으로 남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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