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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고의 매직 라이프 - 이상한 크리스마스

마고의 매직 라이프

글과 사진 마고





이상한 크리스마스


이곳의 마지막 남은 명절.
가족이 모두 만나는 유일한 날은 성탄절, 크리스마스다.
그렇게 1년에 한 번 예수님의 생일 성탄절에 시누이 가족과 우리 가족은 시어머니댁이 있는 도시 낭트에서 2~3일 정도 시간을 함께 보낸다.
하지만 올해는 보르도에 사는 시누이네서 함께 보내기로 했다.
혼자 사는 시어머니댁은 방 하나의 작은 아파트라 딸이 둘인 시누이네와 다섯으로 늘어난 우리 가족까지 지내기에는 좀 비좁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시누이가 사는 보르도는 프랑스와 스페인 국경 근처에 있다.
2~3시간 거리의 스페인에 살고 있는 내 남동생과도 함께 명절을 보내고 싶은 마음에 남편을 졸라 보르도로 떠났다.




시어머니의 크리스마스 선물

부모님이 오시는 걸 대비해 샀던 400유로짜리 사륜 자동차는 전신성형을 했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모터부터 창문, 브레이크 등 구석구석 남편이 죄다 손을 봐야 했다.
자동차까지 모두 정비한 후 우리는 낭트에 들러 시어머니를 모시고 함께 보르도로 떠났다.
프랑스 사회에서는 남편과 아내라는 말이 거의 사라졌다.
이모, 삼촌 등 정감어린 이런 호칭들도 이미 대부분 사라졌다.
주변에 아이를 두셋씩 낳은 커플들도 결혼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물론 우리 시누이처럼 경제적인 부분을 고려하는 이유도 있지만 잦은 이혼으로 결혼에 대한 믿음이 사라진 것이 더 큰 원인인 것 같다.
그렇게 관계로 인한 호칭이 사라지고 개인의 이름만 남은 이 사회는 자기만을 내세우는 이기주의가 우리사회보다 더 깊이 자리 잡았다.
24일 밤, 아이들이 모두 잠든 후 시어머니는 엄청난 양의 선물을 꺼내기 시작했다.
물은 모두 장난감계를 장악한 J장난감가게의 카탈로그에서 추천하는 대형마트의 플라스틱 덩어리들이었다.
하지만 몇 번의 크리스마스를 지낸 후 아이들이 받은 대부분의 장난감 선물을 제대로 갖고 놀지 않으며, 결국 그 선물들이 쓰레기통으로 간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래도 아이들 선물 준비에 아이들보다 더 신이 난 듯한 시어머니께는 항상 그냥 ‘고맙다’고 할 뿐이다.
처음에는 구두쇠 시어머니가 바깥에서 그렇게 돈을 쓰는 것이 안타까워서 남편에게 귀띔을 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것도 시어머니가 사랑을 표현하는 방식이고, 그것이 시어머니께 활력소가 된다는 것을 알고 나서는 아무 말 하지 않는다.




크리스마스는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 것일까

한가득 쌓인 아이들의 선물을 쳐다보던 동생이 시어머니에 대해 했던 한마디가 시간이 지나도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다.
동생 눈에 비친 시어머니는 정부에서 원하는 이상적인 국민이다.
린 아기들을 탁아소에 맡기고, 평생 정부를 위해 일하고, 꼬박꼬박 세금을 내고, 시아버지와 이혼 후 1인 가정을 꾸려 열심히 고지서 요금들을 내고, 30년 넘는 세월 동안 여러 가지 약도 열심히 복용하는 아주 평범한 이곳 사회의 구성원.
그런데 그렇게 열심히 사회의 변화를 쫓아가며 살아온 시어머니의 삶은 행복하지 않다.
좀 더 솔직히 말하면 우울하다.
불면증과 우울증 약을 밥 먹듯 먹어왔지만 약이 엉터리인지 몇십 년째 계속 복용중이다.
가끔 시어머니를 보면 우리는 소비를 위해 태어났고, 소비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 인생의 가장 큰 목표인 것 같다.




크리스마스 준비에 신경을 많이 쓴 시누이는 스트레스 때문에 결국 크리스마스마다 먹는 해산물 맛도 못 보고 드러누웠고, 다행히 요리사 동생 덕에 우리는 거한 한식을 먹었다.
그리고 서로 더 얼굴 붉히기 전에 계획보다 하루 일찍 집으로 떠났다.
그 후 만나는 사람들과는 서로 욕봤다고 등을 두드려주며 인사했다.
개중에는 크리스마스가 역겨워 가까운 친구들과 함께 오붓한 시간을 보낸 친구들도 있고, 어떤 친구는 아예 크리스마스를 피해 다른 나라로 여행을 떠나기도 했다.
사람들은 크리스마스라는 명목으로 온 가족이 자리를 함께하는 것을 괴로워했다.
나는 ‘명절이면 시집가라는 폭풍 잔소리를 듣는 노처녀의 심정이 저럴까’ 하는 생각으로 그들을 이해했다.




자본주의에 의해 변질된 크리스마스

크리스마스의 유래가 스웨덴의 ‘쌍(Saint) 니콜라’라는 성자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고 아일랜드의 ‘쌍(Saint) 페트릭’이라는 성자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는데, 어찌됐든 아이들을 좋아하는 어떤 착한 성자가 가난하고 가족이 없는 아이들에게 먹을 것과 선물을 나눠주며 시작됐다고 한다.
그런데 그 시작을, 자본주의의 상징과 같은 거대괴물 ‘코카콜라’가 원래의 초록 옷 대신 빨간 옷을 입힌 ‘싼타’를 등장시켜 돈 쓰는 날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로마교회가 예수를 죽이고 예수를 팔아 엄청난 부를 오랫동안 축척했듯이, 아이들을 향한 성자들의 순수한 사랑이 코카콜라에 의해 기업가들이 ‘한몫 챙기는 날’로 추락했다.
미디어의 프로파간다에 의해 우리에게 세뇌된 선진국의 번지르르한 이미지 속에는 가족도 믿음도 사랑도 사라진 아픈 현실이 숨어 있다.
이렇게 가다가는 외로운 상자 속에 혼자 갇혀버린 외로운 인간들을 바라보게 될 것이다.
처음에는 자연과 동물들을 그렇게 만들어버렸고 그리고 우리 자신도 그렇게 되어간다.




크리스마스를 보내고 집으로 떠나기 위해 주차장으로 향하는 길, 뜯지도 않은 선물이 초라하게 쓰레기통 옆에 놓여 ‘나를 주워가 달라’는 듯 바라보고 있었다.
필요하면 가지고 왔겠지만 상자 안에 들어 있는 누군가의 이름이 쓰인 새 머그잔을 그대로 두고 왔다.
시아버지댁에서 가지고 온 상자 가득 들어 있는 잔들도 처리해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이었다.
크리스마스이기 때문에 무언가를 줘야 한다는 의무에 의한 선물, 상대방에게 필요 없는 선물들은 지구를 쓰레기통으로 만들고 자원을 고갈시키는 데 크게 한몫을 한다.






정신과 영혼의 풍요로움을 찾아

성장(Croissance) 대신 비성장(Decroissance)을 외치는 신문을 읽던 친구가 나를 보며 말했다.
“이제 이곳에서 말하는 부의 성장은 모두 끝났어. 물질의 과한 풍요로움이 사람의 영혼의 성장과 반비례한다는 것을 우리 세대가 배웠으니까.
우린 가난해져야해.
그렇게 진정한 정신과 영혼의 풍요로움을 찾아가는 거야.”
그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니 법정 스님의 무소유가 떠올랐다.
우리는 각기 다른 언어로, 다른 삶의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지만 진실은 모두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집에 돌아온 아이들은 크리스마스에 받은 선물을 하루 이틀 가지고 놀더니 역시 마당에서 자전거를 타거나 공놀이를 하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책을 봤다.
그렇게 나는 시어머니의 선물이 마음에 안 든다고 투덜거리기 전에 아이들이 정말 필요해하는 것이 무엇인지 천천히 심각하게 고려해보기로 했다.
선물을 위한 선물, 바로 부서져버려 쓰레기가 되기 위해 만들어진 것들이 아닌, 정말 아이들이 오랫동안 잘 사용할 수 있는 것들 말이다.
그렇게 벽에 종이를 붙여놓고 아이들에게 유용할 만한 것들 을 생각날 때마다 적어놓기 시작했다.
질 좋은 붓, 아코디언, 천체 망원경….






필자소개 마고
레게 음악 뮤지션인 프랑스인 남편, 다람쥐처럼 온종일 뛰어다니는 아이 셋과 함께 잘 알려지지 않은 지역을 떠돌아다니며 사는 마고는, 낮에는 살림을 하고, 밤에는 사계절의 변화와 닮은 그림을 그린다.
현재 프랑스 서부 브르타뉴 지방의 작은 시골 마을에서 자연이 주는 무구한 은혜를 껴안으며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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