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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자의 카페 - 불라(BuLa), 떠나고 싶은 당신에게 건네는 인사 <불라(BuLa)>

여행자의 카페

글과 사진 장보영





불라(BuLa), 떠나고 싶은 당신에게 건네는 인사

<불라(BuLa)>





취재 전 <불라(BuLa)>에 대해 검색했을 때 ‘입구 찾기가 쉽지 않았다’는 방문객 블로그 후기가 인상적이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자신만만했던 기자 역시 이 골목 저 골목을 기웃거리다가 결국 카페지기 전홍필 씨에게 전화를 걸어 정확한 위치를 물어봐야 했다.
종로2가 탑골공원 사거리에 버젓이 위치한 <불라>를 한눈에 찾아내지 못하고 지나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우선 그럴 듯한 간판이 없어서였다.
그리고 승강기도 없는 오래된 미용실 건물 4층 꼭대기에 카페가 있으리라고는 짐작도 못했다.
우여곡절 끝에 <불라>에 들어섰을 때는 ‘그들의 아지트’ 같다는 인상을 가장 처음 받았다.
이미 서로가 서로를 잘 아는 것 같은 남녀 두 사람이 카페 한가운데 자리를 잡고서 연신 차를 우리고 또 마시고 있었다.
두 사람과 가까운 자리로 기자를 안내한 전홍필 씨는 맞은편에 앉으며 ‘(주)클럽져니 투어코디네이터’라고 적힌 명함 한 장을 건넸다.
“<불라> 운영 외에도 여행업을 함께하고 있어요. 이곳은 여행자들과 여행 정보도 공유하고 여행 전후로 자유롭게 모여 언제든지 먹고 마시고 쉬어가는 그런 공간이에요.”




여행자가 주인이 되고 주인이 여행자가 되는 곳

<불라> 대표이자 카페지기 전홍필 씨는 배낭여행 1세대다.
해외여행이 자유화된 1990년대 초반 그는 한 여행사에 가이드로 취업하면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일로 하는 여행이 곧 그의 여행이었고, 그것이 ‘여행자 전홍필’의 정체성이었다.
그는 이 일을 천직으로 여겼다.
여행을 좋아하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함께하는 여행자들이 좋았다.
그들이 뿜어내는 밝은 기운이 좋았다.
“당시 여행 나가는 사람들의 눈빛을 보면 정말 초롱초롱했거든요. 통제됐던 문이 열리면서 가보지 못한 미지의 세계로 나간다는 호기심
이 엄청났을 때잖아요. 설레고 행복해하는 사람들 곁에서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저에게도 큰 에너지가 됐어요.”
그런 전 씨가 여행사를 퇴사하기로 결심한 건 그가 추구해온 이 같은 순수함을 더는 지킬 수 없는 지점이 왔을 때였다고 한다.
“여행업을 하는 사람으로서 여행자들에게 건강하고 좋은 기운을 드려야 마땅한데 정작 하루종일 사무실에 앉아 컴퓨터만 들여다보는 시간이 길어지는 거예요. 정장입고 9시에 출근해서 기약 없는 야근을 하고. 본인도 밝은 기운을 얻으려고 시작한 일인데 점점 ‘미생’이 되는 거죠. 뭔가 안 맞는다고 생각했어요.”
그동안 크고 작은 여행사에서 일하며 내공을 쌓아온 전 씨는 그래서 혼자, 다르게 해보기로 결심했다.
2003년 온라인 여행사 웹사이트를 열며 첫 홀로서기를 감행했다.
시 그가 시도한 것은 ‘남태평양 피지 전문 여행사’였다.
왜 피지였을까?
“처음 갔을 때부터 피지가 좋았어요. 피지에 가면 되게 편안해졌거든요. 그곳 사람들이 웃으면서 저에게 ‘넌 뭘 그렇게 빡빡하게 사니?’라고 말하는 것 같았어요.”
‘불라’는 피지의 인사말이다.
발음하기도 쉽고 입에도 착착 붙는 피지의 인사말을 그는 곧 자신이 운영할 여행카페 이름으로 지었다.




여행카페 <불라>는 그로부터 5년 뒤인 2008년에 문을 열었다.
온라인 여행사 개업에 이어 개장했기에 <불라>의 주요 손님은 전 씨의 여행 프로그램에 참가하는 여행자들이었다.
여행자들은 이곳에서 본인이 예약한 여행 프로그램에 대해 상의하고 여행지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만약 오피스 공간으로 꾸몄다면 아무래도 사무적이고 업무적인 느낌이 강했을 텐데, 카페 분위기로 꾸몄더니 찾아오는 사람들도 금세 마음을 열었다.
여행자들은 또 다른 여행자들을 불러왔고 <불라>는 여행자들이 언제라도 부담없이 드나드는 장소가 됐다.
그러한 여행자들 때문에 커피를 내릴 줄도, 차에 대해서도 잘 몰랐던 전 씨는 지금까지 <불라>를 순조롭게 운영하고 있다.
여행자들이 현지에서 공수해오는 커피와 차를 맛보고 어깨 너머로 배우면서 전 씨도 카페지기로서 조금씩 성장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이들이 있어 전 씨는 투어코디네이터로서 자유롭게 해외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
전 씨가 부재중일 때 스태프를 자진한 단골 여행자들이 <불라>에 모여 무료한 듯 분주하게 자신만의 시간을 보내기 때문이다.
그날의 스태프는 오늘의 커피, 오늘의 차, 오늘의 와인을 그때그때 준비할 뿐이고 이곳을 찾은 손님들은 쉼과 여유를 마신다.




즐겁게 할 수 있는 일을 오래 꾸준히 하기

<불라>는 신의로 운영되는 공간인 동시에 의리 넘치는 공간이다.
이른바 ‘<불라> 살리기 프로젝트’ 때문이다.
“손님 중에 홍차 마니아가 있었어요. ‘<불라> 망하면 안되니까 우리 홍차 모임하자~’ 해서 한동안 홍차 모임이 주기적으로 이뤄졌고요, 또
누군가는 ‘<불라> 망하면 안 되니까 우리 책 읽기 모임하자~’ 해서 독서 모임이 이뤄졌는데 단권으로 하면 모임이 빨리 끝나니까 박경리의 <토지> 시리즈로 하자고 해서 한 2년 동안 진행했어요(웃음).”
이곳을 찾는 손님들은 이 비밀공간을 소수의 절친한 사람들에게만 소개한다.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면 더 이상 자신이 아는 <불라>가 아니니까.
“손님으로 가득 차는 날도 있지만 한 명도 없는 날도 있어요. 그래도 연연하지 않아요. 아무도 없을 땐 밀린 여행 업무를 보면 되니까요. 조용히 저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어서 좋아요. 애초 저는 이 공간을 통해 많은 돈을 벌 욕심이 없었어요. 그런 마음이 있었다면 <불라>는 이미 문을 닫았을 거예요.”




현상 유지만 해도 감사하다는 전 씨에게도 목표는 있다.
바로 스트레스 없이 오래 꾸준히 일하는 삶.
“대개의 사람들은 흔히 돈을 많이 벌고 싶다고 말하죠.
요즘 유행하는 비트코인으로 목돈을 벌면 바로 퇴사부터 할 거라고들 하잖아요.
그건 결국 돈만 필요하다는 말이거든요.
젊었을 때는 열심히 일하고 나이 들면 은퇴해서 연금 받으며 실컷 놀고 싶다고 말하는 심리도 마찬가지고요.
그런데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나이 들어서 돈을 벌고 쓰고 있는지의 문제보다 더 중요한 건, ‘나이 들어도 계속 일을 하고 있느냐’라고 생각해요.
저의 경우 훗날 방한한 외국인 관광객들을 안내해보고 싶기도 하고, 꼭 여행업이 아니어도 아파트 경비원도 괜찮다고 생각해요.
택시를 운전하는 것도 괜찮고요.
차와 집 사는 건 진작 포기했어요.
그런데 그것만 포기했는데 인생이 편해요.”
피지를 시작으로 그는 현재 코사무이, 부탄, 아이슬란드, 조지아 투어를 진행하고 있다.
다섯 개 국가만 진행하는 이유는 그 정도가 그에게 적절하기 때문이다.
특히 아이슬란드의 경우 국내에서 처음으로 ‘아이슬란드 전문 여행사’를 표방하며 웹사이트를 만들어 지금까지 운영하고 있다.
그의 여행 프로그램에는 원칙이 있다.
항공, 숙박, 현지 교통편 예약 외에는 전 일정 자유여행으로 진행한다는 것.
어디에서 무얼 먹고 어디를 돌아다닐지 고민하는 것이 여행의 큰 즐거움이라는 것을 너무 잘 알기 때문이다.
전 씨는 자신을 유목민이라 말한다.
불혹을 넘겼지만 가정을 이루고 싶은 마음은 아직 없다.
아직은 혼자가 좋다.
“유랑하듯 사는 것 같아도 나름 <불라>를 베이스캠프로 삼고 정착하고 있어요.
늘 다음 일거리를 생각하고요, 어떻게 해야 여행자들에게 더 좋은 여행이 될지 항상 고민해요.
일 끝나고 맥주 한잔하는 시간도 잊지 않습니다.”







불라(BuLa)
대표 전홍필
주소 서울 종로구 종로2가 22-2, 4층
전화 02-738-1922
(주)클럽져니 icelandtravel.kr / georgiatravel.kr
운영시간 일어날 때~졸릴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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