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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석의 부엉이 극장 - 히든 피겨스 : 달만큼 먼 유색인종 화장실

전영석의 부엉이 극장

전영석





히든 피겨스: 달만큼 먼 유색인종 화장실


재능은 모든 조건을 초월한다.
인종, 국적, 재력, 나이, 외모, 성품, 성별, 장애 여부와 무관하다.
나쁜 놈이나 날라리에 양아치라도 상관없다.
타고난 재능은 뼈 빠지게 노력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잎이 나고 꽃이 피듯 자연스레 자생하는 것이다.
갈고닦는 것은 각자의 몫이지만 재능은 그렇게 타고나는 것이다.
사람들은 종종 고가의 악기가 좋은 음악을 만들어낼 거라 착각한다.
평범한 아이들을 꾸역꾸역 학원에 보내고 돈을 쓰면(고액 레슨), 그 아이가 어느 순간 없던 포텐을 터뜨릴 거라는 망상.
음악적 재능은 수천만 원짜리 악기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저렴한 악기를 통해서도 얼마든지 발현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좋은 귀와 열려 있는 마음 그리고 음악에 대한 순수한 열정과 사랑이다.




그러니까 가난하고 멸시받는 흑인 여성 계산원 캐서린 존스가 잘난 체하는 NASA의 백인 남성 엘리트들 앞에서 연필 한 자루와 명석한 두뇌로 수학적 진리의 정수를 보여줄 수 있는 것이고, 그러니까 가난하고 멸시받는 흑인 여성 계산원 도로시 본이 도서관에서 빌린 책으로 포트란 언어를 마스터하고 슈퍼컴퓨터 IBM 7090 DPS 모델을 능숙하게 다루면서 IBM 본사에서 파견 나온 백인 남성 엔지니어들의 멍청함을 마음껏 조롱할 수 있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주변의 것들이 아니라 주어진 것을 ‘자기 나름대로 번역해내는 능력’이다.
음악은 트랜지스터라디오 하나면 즐길 수 있고 진짜 재능을 가진 이는 연필 한 자루만 있어도 충분하다.

<히든 피겨스>는 연필 한 자루로 IBM 슈퍼컴퓨터보다 더 정확하고 더 빠르게 우주선 궤도를 계산해낼 수 있는 수학 천재들의 이야기다.
<이미테이션 게임>의 흑인 여성 버전이랄까.
<이미테이션 게임>에선 한 천재가 게이라는 성 정체성 때문에 고난을 겪었다면, <히든 피겨스>에선 ‘흑인’이고 게다가 ‘여성’이라는 인종, 젠더 정체성의 이중고가 재능을 잡아먹으려 달려든다.
미국의 항공우주국에서 자신들만의 길을 만들고 걸었던 세 명의 아프로-아메리칸 여성들은 두 개의 보이지 않는 벽과 싸운다.
그네들은 그네들의 재능과 (인종적·성적) 태생을 질시하거나 멸시하는 백인들 때문에 당연히 누려야 할 것들을 포기한 채 살아야 했다.
불행했던 시대는 굴종을 강요하고 불편부당함을 수긍하게 만든다.
그녀들은 힘들게 싸워 ‘당연히 누려야 할 것’들을 하나씩 얻어낸다.
<히든 피겨스>는 흑백차별이 일상이었던 고난의 시대에 흑인 여성들이 어떻게 생존하고 진화해왔는가에 대한 시대극이며, 그 지난한 여정의 드라마적 기록이다.

<히든 피겨스>를 다시 봤다.
어떤 영화든 다시 볼 때 기다려지는 장면이 있다.
<히든 피겨스>의 경우에는 캐서린 고블(타라지 P. 헨슨)이 화장실과 진주목걸이에 대해 울분을 토해내는 그 순간이다.
얌전하던 그녀는 성난 사자처럼 으르렁거린다.\
캐서린은 ‘여성’이자 ‘유색인종’이다.
시대가 옭아맨 두 가지 족쇄.
그녀는 자신의 재능을 연료 삼아 1960년대의 불온한 공기를 뚫고 달(미지의 미래)을 향해 우주선처럼 도약한다.




달에 우주선을 쏘아 올리려는 진취적인 나라, 미국의 항공우주국 건물엔 유색인종 여자 화장실이 없다.
프런티어 정신과 진보의 가치가 인종과 성별 앞에 평등하지 않다는 아이러니, <히든 피겨스>의 이야기는 그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인종차별 문제를 거창한 이데올로기 담론이 아니라 인간의 기본적 욕구(배설욕)를 해결하려는 구체적 현실에서부터 풀어나가는 설정이 무엇보다 좋았다.
애 셋 딸린 흑인 여성 미망인(여전히 이차별적이고 시대착오적인 어휘를 자막에서 보는 것은 슬프다)에겐 소변을 보기 위해 800m를 달려야 하는 화장실이 지구와 달의 거리만큼 멀다.

1960년대 NASA의 진정한 성취는 달에 로켓을 쏘아 올린 것이 아니라 개인의 재능이 평등한 기회를 부여받는 사회를 구현하려 노력한 데 있다.
정의로운 사회는 멀리 있지 않다.
변화는 ‘모두가 같은 색 소변을 본다’라는 자각에서부터 시작된다.
흑백 모두가 같은 화장실을 쓰고 같은 커피포트로 커피를 마시는 사소한 사회규범 안에서 정의는 구현된다.
재능이 넘치는 세 흑인 여성(캐서린 존슨, 도로시 본, 메리 잭슨)이 NASA 우주계획의 숨은 동력이다.
로켓이 지구의 중력을 이겨내고 달을 향해 날아가듯, 그녀들은 지구상 모든 편견과 차별을 이겨내고 자기만의 우주로 도약했다.
인류의 진보는 달 정복 같은 거창한 이벤트가 아니라 한 단계 더 나은 사회로 나아가려는 작지만 용감한 변화에서 시작된다.
위대한 도약은 작게 내딛는 한 걸음에서 시작된다는 것이 <히든 피겨스>가 관객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일 것이다.





타자를 대면하면 내 모습이 보인다.
<히든 피겨스>엔 지금, 여기, 한국 사회 차별의 그림자가 너울거린다.
얼마 전,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딸이 데려온 다문화가정 친구에게 짜장면을 시켜주자 눈물을 흘렸다’는 글이 화제가 됐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차별은 먼 옛날(1960년대 미국)의 일이 아니다.
다양성과 공존은 현재 우리 사회의 중요한 열쇳말이다.
임대아파트에 사는 아이들, 장애인, 성 소수자, 여성, 노인, 흑인과 동남아인….
우리는 여전히 차별이 만연한 사회에서 살고 있고 우리가 그런 사회를 만들고 있다.
다양성 영화 <원더>에는 이런 대사가 나온다.
선천성 안면 기형의 어기를 차별하는 사람들에게 터쉬만 교장이 말한다.
“어기의 외모는 바꿀 수 없어요. 그러니 우리의 시선을 바꿔야죠.”
세 명의 용감한 흑인 여성은 자신의 피부색을 바꾸는 대신 조금씩 세상을 바꿔 나갔다.

우리는 끊임없이 우리가 속한 세상을 향해 “왜?”라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
“왜?”라고 묻는 영화, 영화가 끝나고 극장을 나서면서 새롭게 질문이 시작되는 <히든 피겨스>는, 그래서 좋은 영화다.




필자소개 전영석
‘하루 한 편 영화 보기’가 꿈인 영화 애호가.
세상의 영화를 모두 해치우는 게 로망. 밥벌이 말고는 책 읽고 영화 보는 게 일.
닉네임 ‘타자 치는 스누피’로 블로그와 페이스북에 영화의 영원 같은 찰나들을 기록하는 게 낙.
취미는 재밌고 슬프고 멋있고 죽이는 영화 추천하기.
오늘도 꿈을 이루기 위해 불철주야 매진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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