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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근두근 문화 채집단 - 젊은 필진들이 선별한 이달의 문화

두근두근 문화 채집단

영감과 만족을 주는 것이면 장르를 불문하고 무엇이든 OK! 통통 튀는 젊은 필자들이 취향껏 선별한 각종
문화 정보를 소개합니다.





다섯 곡의 노래와 함께 온 것들

음악 <그리고, 겨울> 하비누아주




겨울밤에는 친구들과 좁은 방에 모이곤 했다.
초를 켜고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방이 넓어지는 날도 있었다.
차나 술을 마셨고, 음악을 들었고, 선물을 전했고, 때로 잔뜩 취해 시를 읊었다.
그때 나눈 이야기에는 온기가 있었다.
따스함이 사라지는 일이 아쉬워 ‘이 밤이 영원하면 좋겠다’는 욕심을 부릴 때도 있었지만, 어김없이 밤은 지나가는 일이었다.
초가 녹고 불빛이 꺼지면 곁에 있던 이들은 하나둘 사라졌다.
어김없이 겨울이 왔다.
일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자다 깬 새벽에, 누구의 이름도 떠오르지 않는 산책길에 들으면 좋을 음반이 나왔다.
하비누아주의 새로운 EP <그리고, 겨울>이다.
그들은 이 앨범을 통해 사라지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한다.
<겨울노래>를 시작으로 <마지막인 것처럼>, <잃다>, <청소>, <언제쯤이면>을 차례로 듣고 나면, 혼자라는 사실이 선명해진다.
외로움 곁으로 찬 공기가 내려앉는 동시에, 잊고 있던 겨울밤들이 떠오른다.
영원을 욕심내던 새벽이, 이제는 흐릿해진 얼굴이, 사라진 줄 알았던 그날의 온기가 다섯 곡의 노래와 함께 온다. 박선아







읽을수록 먹먹한 현실

시집 <지구만큼 슬펐다고 한다> 신철규




몇 년 사이, 한국에 살아 있었던 사람이라면 적어도 한 번은 슬펐고 여러 번 울었을 것이다.
우리 사회에 얼마나 많은 비극들이 있었는지 구태여 말하지 않아도 우리는 함께 슬퍼해야 했고, 때로는 각자 추운 시간을 지나왔다는 것을 알고 있다.
또 다시 겨울이다.
겨울만큼 서정이 어울리는 계절이 있을까.
치장하기 위한 감수성이 아니라 외롭고 솔직한 성찰로서의 서정.
신철규 시인의 <지구만큼 슬펐다고 한다>는 마치 겨울에 쓴 시집 같다.
시인은 ‘입 속에 시멘트를 부은’ 것 같고, ‘컴컴한 방에 검은 비닐봉지를 쓴’ 것 같은 시간들을 이야기한다.
신문에서, TV에서 그리고 우리의 마음속에서 내내 맴돌던 이야기들을 풀어낸 시들은 곧 시를 읽는 독자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TBC 뉴스룸 앵커브리핑을 통해 널리 알려진 ‘어떤 눈물은 너무 무거워서 엎드려 울 수밖에 없을 때가 있다(<눈물의 중력> 中)’는 시구를 볼 때마다 울컥하는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울 수밖에 없었던 시간들을 담은 시집, <지구만큼 슬펐다고 한다>는 함께 슬퍼했던 모든 이들에게 따뜻한 위로가 될 것 같다. 지소영




눈부시게 아름답던 이란의 바다

영화 <내가 여자가 된 날> 마르지예 메쉬키니




영화 <내가 여자가 된 날(The Day I Became a Woman)>은 다른 듯 닮은 세 이란 여성의 에피소드로 이뤄져 있다.
소녀 ‘하바’ 는 이란에서 여자로 인정받는 아홉 살 생일을 맞이하면서 가족들에게 남자 아이들과 놀아서는 안 된다는 제지를 받는다.
여인 ‘아후’는 자전거 경주에 참여하지만 남편과 마을 남자들로부터 ‘어서 집으로 돌아가라’ 고 협박당한다.
초로의 부인 ‘후라’는 남편이 죽고 상속 받은 돈으로 그동안 사지 못했던 물건들을 살 때마다 손가락의 매듭을 풀지만 결코 풀지 못하는
마지막 매듭 앞에 망연자실해한다.
이 영화는 분명 오랜 시간 이란 여성들의 삶에 가해졌던 억압에 대해 말한다.
하지만 사회적 여성이 되는 정오까지 ‘하바’가 보내는 1시간, 자전거를 멈추지 않으려는 ‘아후’의 몸부림, 돈으로 살 수 없는 상실감을 채우고자 ‘후라’가 보여주는 환상을 통해 궁극적으로 이 영화는 희망을 향하고 있다고 나는 본다.
비록 스크린 속이었지만 난생 처음 본 이란의 바다는 어찌나 눈부시게 아름답던지. 장보영





펑크는 죽지 않는다

하나투어 브이홀 10주년 스페셜 콘서트

조선펑크는 나의 근간이다.
펑크밴드 형들의 노랫말을 문학의 한 구절처럼 곱씹고 필사(筆寫)했으며, 형들이 빚어내는 거친 사운드는 언제나 가장 큰 볼륨으로 내 귀에서 반복됐다.
하나투어 브이홀 개관 10주년을 기념해 기획된 .
이 공연에 한국 인디신의 시작이자 현재도 왕성히 활동하는 레이지본, 크라잉너트, 노브레인 그리고 전 노브레인의 기타리스트 차승우가 이끌고 있는 모노톤즈가 뭉쳤다.
연장 입장 전, 그 옛날 함께 청춘을 불태우던 한 전우와 근처 중국집에서 짜장면과 소주로 전투력을 끌어올렸다.
그래서였을까.
열일곱 청춘시절, <드럭>과 <스컹크헬> 등의 홍대 지하클럽을 좀비처럼 전전하며 슬램판을 주도하던 대한민국 멋쟁이 펑크키드로 돌아가는 데는 오랜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마지막 앙코르에 그날 함께한 모든 펑크밴드 형들이 무대에 올라 <청춘98>과 <말달리자>를 연주할 땐 내 청춘의 시절이 집약돼 있는 것만 같았다.
아직 한파가 기승을 부리는 요즘이지만, 푸릇한 청춘과도 같은 새 계절이 목전이다.
방구석에 움츠려 있지만 말고, 밖으로 나가 그 옛날 자신을 움직이게 했던 원동력을 다시 꺼내보는 건 어떨까.
그것이 무엇이든. 신영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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