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아이들이 맥주를 사는 것은 법적으로 금지되어 있는데 정작 더 위험한 총기를 소지할 수 있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플로리다의 한 고등학교에서 총기난사 사건이 벌어져 17명이 죽었을 때 미국의 농구스타 르브론 제임스가 한 말이다.
그는 이런 사건이 반복됐음에도 총기규제를 하지 않는 미국 정부를 비판하며 우리가 나서서 더 이상의 비극을 막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뛰어난 농구실력으로 전 세계적인 인기를 누리는 스타선수인 만큼 그의 발언이 던지는 파문은 상당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총기난사를 저지른 범인의 정신 상태에 문제가 있었다며 사건의 원인을 축소하려 하는 상황에서, 르브론의 발언은 총기규제 운동에 큰 힘이 될 것 같다.
미국에서는 스타들의 정치적 발언이 관행처럼 여겨질 만큼 활발하다.
예컨대 배우 조지 클루니는 2003년 부시정권이 이라크 파병을 결정했을 때 이를 비판한 바 있고, 배우 조니 뎁은 트럼프 대통
령에게 ‘버릇없는 자’라고 독설을 날리기도 했다.
이런 광경을 보고 있노라면 우리나라 스타들의 소극성이 아쉬워진다.
지난 9년간 민간인이 사찰당하고 블랙리스트가 횡행하는 등 민주주의가 철저히 유린됐으며 세월호 참사로 인해 수백 명의 학생들이 목숨을 잃는 사태가 벌어졌지만, 여기에 대해 문제의식을 갖고 목소리를 낸 스타는 김제동과 윤도현 등 극소수에 불과하다.
물론 보복이 두려워서 그런 것도 있을 것이다.
영화계 간판스타 송강호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이야기를 다룬 <변호인>에 출연한 뒤 영화계 일이 들어오지 않았다고 진술한 바 있고, 김미화나 김어준 등도 납득할 수 없는 이유로 맡고 있던 프로그램에서 하차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미국이라고 해서 불이익이 없는 것은 아니다.
조지 클루니는 보수적인 언론인들로부터 반역자로 몰린 바 있고, 총기규제를 주장한 르브론은 보수적인 방송사인 폭스TV 앵커로부터 ‘입 닥치고 드리블이나 해’라는 빈정거림을 받아야 했다.
그럼에도 이들이 굴하지 않고 소신 발언을 하는 건 첫째, 미국 국민들 사이에 영향력있는 유명인의 정치적 발언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돼 있기 때문이고,
둘째, 정권이 밥줄을 끊어놓기엔 이들이 가진 게 너무 많기 때문이다.
르브론만 해도 2017년 한 해 동안 900억 원이 넘는 돈을 벌었고, 그가 누리는 인기와 명성은 트럼프의 그것을 가볍게 뛰어넘는다.
르브론 역시 자신이 ‘운동선수 이상의 존재’라면서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다른 사람들을 위해 발언하는 건 나의 의무’라며 앵커의 말에 반박했는데, 스타들의 이런 행동이야말로 미국 사회가 민주적으로 유지되는 비결이리라.
민주주의가 시시때때로 위협받는 우리나라에서 특정 사안에 대한 스타들의 각성과 소신 발언은 더 필요하지만 이를 위한 선결조건이 있다.
이들이 정권으로부터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국민들이 지켜주는 일이다.
아무리 가진 게 많은 이들이라 해도 몇 년씩 일이 끊길지도 모를 발언을 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니 말이다.
문제는 우리나라에선 유명인들의 정치적 발언이 오히려 국민들로부터 지탄을 받는 원인이 된다는 점이다.
얼마 전 평창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쇼트트랙 국가대표 김아랑은 헬멧에 세월호 리본을 달고 경기에 임했다.
그런데 일베 회원들이 김아랑이 정치적 중립의무를 위반했다며 IOC에 제소했고, 결국 김아랑은 그 리본을 검정테이프로 가린
채 남은 경기를 뛰어야 했다.
대단한 정치적 목소리도 아니고, 세월호로 숨진 사람들을 추모하자는 리본조차 고깝게 보는 사회에서 스타들이 정치적 견해를 표출하는 일은 요원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