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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풍常회 일기 - 간판을 내리며

무풍常회 일기

글과 사진 이후





간판을 내리며


1월 끄트머리, 무풍을 떠나 도시로 올라왔다.
몸도, 마음도 잔뜩 웅크린 채 겨울을 통과하며 살림살이를 정리하는 일은 생각보다 고되고 쓸쓸했다.
박스 두 개 부치고 훌훌 내려갔던 하동 깊은 산골짝의 봄, 푸지게 벌이고 살았던 괴산의 왁자한 여름, 마당의 대추나무와 붉게 익어갔던 무주에서의 가을을 지나고 다시 짐을 싸는 시간.
시골에서 여덟 해를 보내고 돌아온 곳은 결혼 전 부모님과 살았던 동네이니, 크게 한 바퀴를 돌아 봄을 맞는 셈일까.




이삿짐센터와 남편의 일정, 나의 작업 상황, 어르신들의 당부 등을 모두 고려하여 잡은 이삿날.
오후부터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삼인조의 유쾌한 아저씨들이 짐을 내려주고 돌아가자 눈이 점점 쌓이기 시작하고 어둑어둑해진 아파트 입구마다 노란 가로
등이 켜지기 시작했다.
아파트 풍경이 이렇게 따뜻하게 보인 적이 있던가.
새털 같은 눈이 내렸던 결혼식 날이 문득 떠올랐다.




다시 돌아온 자리

시골집의 겨울 이사는 신경 쓸 데가 많았다.
집 안팎으로 단속할 게 많았고, 떠나기 직전까지 장작으로 난방을 했고, 혹여 빈집이 얼지나 않을까 노심초사하던 남편이 얼어버린 수도를 녹이고 온 적도 있었다.
지인들에게 부탁한 곰곰이, 선데이, 까망이 생각을 하면 마음이 잠깐씩 얼어붙었다.
갑작스러운 일정에 춥고 바쁘다는 이유로 변변한 인사도 챙기지 못했다.
동네 어르신들과 밥 한 끼 할 때, 이사 후 민망한 전화를 받을 때면 집을 팔고 가는 것이 아니라는 말로 피차 부담을 덜어야 했다.
어찌어찌 그렇게 이사를 했다.
혼자 내려갔다가 셋이 되어 서울로 돌아왔다.
그사이 달라진 것은 아버지의 부재.
멀리 산 탓에 임종을 지키지 못한 것이 마음 아팠는데 추도식이라도 해마다 같이할 수 있겠구나 싶다.
무엇보다 엄마가 같은 단지 바로 옆 동에 계시니 매일 들락거린다.
엄마가 되어서도 여전히 인생을 헤매고 있는 나는 철없는 막내딸일 뿐.
언젠가 아기 재우고 <엄마 까투리>를 보다가 엄마한테 전화해서 엉엉 울었지.
지금도 마찬가지다.
예전보다 기력이 조금 약해지신 엄마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고작 장 심부름 정도.
가까운 데 엄마가 계시다는 것만으로도 그 큰 품에 깃들어 살게 되는 것 같아 마음이 훈훈해진다.




사실 이사를 염두에 두고는 있었지만 2~3년 뒤, 군 단위의 마을쯤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 생각을 한 것은 우선 아들의 학교 때문. 무풍에 산 지 5년, 그사이 면내 아이들 수는 점점 줄어서 초등학교 입학생이 3명이 되었고, 심지어 어린이집은 지난겨울 문을 닫았다.
옆 동네 학교와 합친다는 오래된 소문이 있었으나 옆 동네나 다른 지역으로 전학 가는 아이들이 부쩍 늘었다.
이야기를 하다 보면 이곳 엄마들은 한숨 뿐.
나갈 수도, 눌러앉아 있을 수도 없으니 말이다.
밖에 사는 사람들은 도시는 도시대로 미세먼지니 사교육이니 문제가 많다고, 애들은 역시 자연에서 뛰어놀아야 한다고 한다.
원해서 시골에 갔으면서 모든 걸 다 원하는 건 욕심이라는 소리도 들었다.
어디 욕심뿐이랴.
외로움과 두려움이 더 컸다고 해야 하리라.
어디 교육뿐이겠나.




풀어내자면 내가 만든 문장으로 스스로 가둘 미로만을 만들게 되리라.
진짜 이유는 살면서 깨우쳐갈 수밖에.
매달 ‘무풍常회 일기’를 쓰면서 이 연재의 마지막은 언제일까 생각했다.
처음도, 끝도 느닷없는 손님처럼 맞았다.




무주 태생의 화가 최북에 대한 이야기도 준비하고 있었고, 여름철 시골집 방문예절에 대해서도 아직 못 썼는데.
처음엔 할 이야기가 너무 많아 분량을 넘기기 일쑤였고, 두 해가 지나니 동어반복인 것 같아서 그만두고 싶었다.
그러나 마감도 병인 양하여 내 삶의 보고서를 쓰듯 기약 없이 이어나갔다.
누구나 그렇듯 마흔 너머의 생활에는 대소사가 끊이질 않아서 몇 번은 울면서 썼다.




그 와중에도 아이는 자라고, 계절은 바뀌고, 새벽 위경련 같은 날들도 잦아들었다.
시민이 되어도 나는 근본이 시골쥐.
천국보다 생경한 이 도시의 생활을 또 매일 골방에서 적어가고 있다.
모두가 반반하지 않은 글을 아껴주신 분들 덕이다.
무풍상회를 시작하며 장난으로 만든 나무 간판은 이삿짐 어딘가에 넣어두고 왔는데, 아직 찾지를 못했다.







필자소개 이후
사무실에서 버려진 화분들을 모아 기르다가 그만 시골로 이사했다.
몇 군데의 마을을 거쳐 지금은 전북 무주에 살고 있다.
무점포가게 <무풍常회>를 운영하며 여름에는 직접 재배한 유기농 옥수수를, 겨울에는 앞집 할머니의 청국장 등을 판다.
시간이 날 땐 손뜨개를 하며, 살면서 배운 것을 글로 옮기고 있다. mu_pung.blog.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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