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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고의 매직 라이프 - 인터넷을 끄고 생의 감각 깨우기

마고의 매직 라이프

글과 사진 마고




인터넷을 끄고 생의 감각 깨우기


이곳 시골에 회색 하늘의 겨울이 오면 봄과 여름에 생명의 기운이 넘쳐났던 것을 까맣게 잊게 된다.
비마저 내린다면 구름이 어깨까지 쌓이는 느낌이다.
게다가 전통 돌집은 집 안이 흡사 동굴에 들어간 것처럼 보통 어두운 것이 아니다.
(이곳 사람들 이야기에 따르면 평균 100년은 훌쩍 넘은 이 집들이 만들어지던 시대에는 창문 크기에 따라 세금을 더 내야 했고, 유리 값도 비싸서 일반 서민들은 감당할 수 없었다고 한다.)
양쪽이 환하게 트인 아파트에 익숙한 나는 매일 비가 내리는 겨울이 더 무겁게 다가온다.
20~30년 전까지만 해도 겨울이면 눈이 많이 쌓일 정도로 추웠는데 지구온난화로 인해 더 이상 눈이 내리지 않는다.
사람들은 지구온난화의 원인을 자연파괴, 공해, 프랑스 전국 곳곳에 지어진 거대한 원자력발전소, 우리가 사용하는 수많은 기계들에서 찾았다.
물론 귀가 찢어질 것 같고, 손이 얼어버릴 것처럼 육체적 고통이 큰 옛 한국의 겨울을 떠올리면 그나마 견디기 쉽다.
하지만 이상기온으로 한겨울에도 똥파리나 모기가 날아다니는 걸 본다면?




더 이상 춥지 않은 이상한 겨울

유난히 더 춥지 않았던 올겨울, 인간들의 만행으로 계절을 착각한(?) 벌이 한겨울에도 죽지 못하고 집 안에 들어와 윙윙거렸다.
한여름에도 집에는 잘 들어오지 않는 벌이 찾아온 것이 신기해서 죽이지 않고 두었다.
그런데 며칠 후 딸아이가 기겁을 하며 나를 부르더니 ‘벌이 있으니 때려죽이라’고 했다.
맨발로 잔디밭을 뛰어다니다 벌에 쏘인 적이 있는 아이들이라 겁을 먹었나 보다.
나는 ‘겨울에 살아남으려고 바둥거리는 착한 아이들’이라며 벌을 컵에 담아 화장실 근처에 놓았다.




일주일 정도 지났을까?
화장실에서 일을 보고 있는데 화장실 근처 어두운 공간에 둔 불투명한 유리컵에 스무 마리는 될 정도의 벌들이 윙윙거리고 있었다.
나는 도대체 꽃도 없는 이곳에서 벌들이 뭘 먹고 이렇게 살아 있는지 신기하기만 했다.
꽃마다 요정이 산다고 믿는 아이들을 위해 잠자리에 들기 전 ‘꽃에 사는 요정을 가장 잘 아는 친구 중 하나가 벌’이라는 이야기를 해주었더니 딸아이는 당장 아침에 벌을 찾아가 물어볼 기세였다.
아이들도 더 이상 벌을 무서워하지 않았다.
12월부터 마당에 동백꽃이 활짝 피었다.
봄을 알리는 꽃이 피면 기뻐해야 할 텐데, 너무 일찍 피어나는 꽃들이 나는 전혀 반갑지 않았고 오히려 이상기온에 대한 걱정이 공기 중에 가득 찼다.
다행히 우리 집 수선화들은 2월 말에 피어주었다.
신이 난 아이들은 수선화를 잘라 집으로 가져왔다.
꽃 꺾기를 좋아하는 아이들에게 꽃 꺾기 전 꼭 꽃에게 양해를 구하라고 말해주었다.
그리고 많이 자르면 안 된다는 말도 함께.




우리는 과연 진화하고 있는 걸까?
딸아이는 여기저기서 받아온 장난감들을 가지고는 거의 놀지 않았다.
그림을 그렸고, 마당에서 흙에 물을 붓거나 어디서 주워온 오래된 냄비 안에 나무 이파리들을 넣어 국을 끓였다.
그리고 예쁜 돌멩이나 꽃을 한 손 가득 가지고 왔다.
TV도, 세탁기도, 인터넷도, 그 어떤 기계도 없던 시절의 할머니가 살아계셨더라면 컴퓨터 앞에 앉아 남의 삶을 눈으로만 보고 있는 지금 나의 모습을 이해하실 수 없을 것이다.
뇌를 마비시키는 것 같은 스크린 앞에 아이들을 수시로 앉혀놓는 것이 좋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어 자극적이지 않은 만화영화를 저녁에만 한 편씩 보여줬다.
인터넷도 잘 안 돼서 유튜브보다는 다운을 받아 보여주는데, 다운받는 것도 인터넷이 너무 자주 끊기고 느려 하릴없이 도서관에 가 DVD를 빌려와 보여줬다.




딸아이가 다섯 살이 되던 해 친할머니가 강압적으로 선물한 태블릿은 애들 아빠가 가지고 있다가 딸아이가 일곱 살이 되던 올해 선물로 주면서 간단한 게임을 다운받아 주었다.
그런데 며칠 사진도 찍고 게임도 하더니 그 후로는 다시 찾지 않았다.
인터넷이 안 되는 태블릿이 그냥 플라스틱 상자 취급받는 것을 보면서 ‘인터넷의 세계, 만져지지 않는 저 세계가 나를 얼마나 이곳에서 머릿속 저 세상으로 데려가나’ 생각해봤다.
냄새를 맡을 수도, 만질 수도, 느낄 수도 없이 사각형 안의 세계를 눈으로만 보면서 머릿속의 모터가 타들어가는지도 모른 채 손가락 두 개와 눈동자 두 개만 움직이고 있으니 함께 어우러져 마법이 일어나는 다른 감각들이 점점 죽어가는 것 같다.
남편은 인터넷에서 음악을 듣거나 이것저것 읽기를 좋아하는데 어느 날은 내게 ‘요즘은 페이스북에 정보가 너무 많아서 머릿속만 복잡해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리고 간만에 끝까지 읽었다는 어떤 대학의 연구기사에서는 과거와 현재의 같은 연령대 아이들을 비교했을 때 지능이 점점 낮아지고 있다고 한다.
그 이유는 분명 너무 어릴 때부터 컴퓨터 게임, 인터넷에 빠져 있는 것과 연관 있을 것이다.
최첨단시대에 우리가 많이 진화했다고 배워왔지만 그것은 첨단시설의 기계들과 테크놀로지가 발달한 것이지 정작 우리의 내면, 영성, 인간성은 퇴화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함께 요정 드레스를 만들자

수시로 안 되는 인터넷 덕분에 다행인지 불행인지 생각지도 못했던 여유 시간을 갖게 되었다.
단 <해피투데이>에 글과 사진을 올릴 때면 컴퓨터를 가방에 넣은 채 자전거를 타고 이곳저곳을 다니며 인터넷이 되는 곳을 찾아 헤맨다.
그나마 자전거로 15분 정도 거리의, 오르막도 거의 없는 친구네 집에 가서 이틀 동안 반나절씩 사진을 올릴 때는 비교적 수월했는데 친구네 집 인터넷이 끊기면서는 좀 복잡해졌다.
도서관도 가보고 카페도 이곳저곳 가보는 등 인터넷을 할 수 있는 곳을 찾아 자전거를 타고 하루에 20~30km씩 언덕길을 달리니 다리에 힘이 생기는 것 같았다.




수시로 바뀌는 이곳 날씨에 대비해 친구가 일하는 중고가게에서 전형적인 유러피안 스타일의 검정색 플라스틱 잠바를 얻어왔다.
디자인은 전혀 마음에 안 들어도 잠바를 입고 달리면 든든했다.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 길과 자동차를 타고 달리는 길이 이렇게 다른데, 걸어가면 얼마나 더 많은 시간을 보내며 주변 이것저것들을 자세히 보게 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길가에 부러져 있는 나무들을 볼 때마다 ‘집에 가져가면 따뜻하게 때울 수 있겠다. 다음에 차를 타고 지나갈 때 트렁크에 실으면 좋겠다’ 는 생각을 했다.
기름칠을 한 지 오래된 녹슨 자전거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옆을 지나가면 소들은 하나같이 풀을 먹다 멈추고 날 바라봤다.





딸아이가 어느 정도 나이가 들자 더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누며 무언가를 같이 만들 수있게 되었다.
방학 때 찾아뵙는 할머니 댁도 좋지만 엄마와 함께 요정 드레스를 만들고 싶다고 몇 년 전부터 했던 약속을 들어줄 때가 된 것이다.
그렇게 이번 방학 때는 엄마와 함께 더 많은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함께 재밌는 것을 만들어볼 구체적인 계획을 세웠다.
아이는 벌써 만들고 싶은 드레스를 열심히 그림 그리며 ‘여기는 레이스, 여기는 이렇게’라고 적었다.
레이스가 없다고 하자 한동안 잘 하다가 안 하는 뜨개목도리를 가져와서는 ‘이걸로 하면 되겠다’며 신나서 말했다.
봄이 왔다고 꺾어놓은 수선화 한 송이를 바라보며 잘 참고 봄을 기다려준 첫째와 더 늦기 전에 뭔가를 같이 만든다는 생각에 내가 더 신이 났다.
생명이 넘쳐나는 봄이 감사한 겨울 막바지다.



필자소개 마고
레게 음악 뮤지션인 프랑스인 남편, 다람쥐처럼 온종일 뛰어다니는 아이 셋과 함께 잘 알려지지 않은 지역을 떠돌아다니며 사는 마고는, 낮에는 살림을 하고, 밤에는 사계절의 변화와 닮은 그림을 그린다.
현재 프랑스 서부 브르타뉴 지방의 작은 시골 마을에서 자연이 주는 무구한 은혜를 껴안으며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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