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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하늘의 맛동산 - 봄기운 어린 밤공기에 싱숭생숭한 날에는 두부를

김하늘의 맛동산

글과 사진 김하늘






봄기운 어린 밤공기에 싱숭생숭한 날에는 두부를


툭하면 눈물이 난다.
툭하면 웃음이 난다.
그게 무엇이든 밑도 끝도 없이 복받친다.
봄이다.
낮과 밤의 명암만큼 공기의 온도도 멀어진다.
딱 그만큼, 내 마음을 알다가도 모르겠다.
나를 가만히 두라고 말하면서도 하염없이 소매 끝을 붙잡히고 싶다.
갈피를 잡지 못한다.
나는 두부를 먹으러 간다.




강철 같은 겨울이 지나고 푸딩 같은 봄이 왔다.
겨드랑이를 늘려 기지개를 켜본다.
손끝엔 온기가 돌고 팔꿈치에 기름이 돈다.
날씨와 계절의 변화에 마음은 잔병치레가 많다.
계절의 시작, 그 무렵의 마음은 옥상에 말려놓은 빨래와 같다.
비가 내리면 젖고, 바람이 불면 흩날린다.
돌봐주지 않으면 폭삭 젖거나 휘이 날아가거나 바싹 말라버린다.
느 날이었다.
“싱숭생숭해.” 남편에게 슬쩍 마음을 내비쳤다.
널어둔 빨래를 까맣게 잊고 있는 듯 남편은 무심하게 말했다.
“(김유정의 <봄봄>에 나오는) 점순이 같네.”
정적이 흘렀다.
등줄기가 오싹했는지, 그는 뒤늦었지만 나의 서운한 마음을 거두려 애썼다.
“우리 데이트할까?”
이튿날 저녁, 우린 고(故) 이영훈 작곡가의 추모공연 관람을 위해 세종문화회관으로 향했다.
이문세를 비롯하여 한영애, 박정현, 윤도현, 김범수 등 기라성 같은 절창의 가수들이 참석해 한두 곡씩 이영훈의 작품을 불렀다.
그의 부인 김은옥 여사는 이날 영상 인터뷰에서 가장 아끼는 곡으로 <기억이란 사랑보다>를 꼽았다.
과거에 아무리 사랑했어도 지금은 아닐 수 있지만, 기억은 그때나 지금이나 있는 그대로 머무는 거라 좋기도 그리고 슬프기도 하다고 말했다.
이어 무대 한가운데 배우 이병헌이 등장했고, 그는 의외의 미성으로 담담한 그리움을 노래로 연기했다.
객석 의자에서 등을 떼고 턱을 괴어 보다가 툭 하고 눈물이 흘러나왔다.
계절이 담긴 이영훈 특유의 서정이 공연 내내 이어진 가운데 풋내 나는 이병헌의 목소리는 감상보다 공감으로 가슴을 쿡 찔렀다.
공연이 끝나고 나온 광화문 밤거리, 봄기운 어린 그 밤공기에 싱숭생숭함이 때 이른 벚꽃이 되어 흩날렸다.
“내일은 두부를 먹어야겠어.”




복잡다단해진 마음을 게우지 않고 꿀꺽 삼키고 싶을 때, 어슷어슷 흐트러진 마음을 조용히 정리하고 싶을 때, 난 두부를 먹는다.
두부를 닮고 싶기 때문이다.
티 없이 깨끗한 순수함과 네모반듯한 단정함, 담백한 맛이 나는 정직함이 좋다.
그런 두부가 혹시나, 아주 혹시나 해가 서쪽에서 뜬다고 말한다면 난 별 의심 없이 믿을 것이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수필집에도 종종 두부가 등장한다.
두부 한 모에 맥주 한 병을 곁들이는 그의 모습은 일종의 클리셰다.
그는 심지어 에세이 두 편을 두부에 할애하기도 했다.
‘두부를 맛있게 먹기 위한 비결이 세 가지 있다.
제일 처음 한 가지는 제대로 된 두부 가게에서 두부를 살 것(슈퍼마켓은 안 된다),
그다음 한 가지는 집으로 돌아오면 곧바로 물을 담은 그릇에 두부를 옮겨 냉장고에 보관할 것,
마지막 한 가지는 산 그날 중으로 다 먹어 치우는 것이다.
그런 고로 두부 가게는 반드시 집 근처에 있어야만 한다.
먼 데 있으면 일일이 부지런을 떨어가면서 사러 다닐 수가 없으니 말이다.’





다행히도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그런 두부 가게가 있다.
아니, 식당이 있다.
걸어가기엔 멀지만 버스를 한 번 탈 정도의 부지런함이면 충분한 거리다.
아현동 <황금콩밭>에 간다.
이곳은 매일 새벽 두부를 만든다.
그러니 이 집에 가면 반드시 생두부를 먹어야 한다.
물론 생두부를 기름에 부친 두부전도 좋다.
생두부를 건너뛰고 두부전을 먼저 맛보면 들기름에 부쳤나 싶을 정도로 그 견실한 고소함에 놀란다.
종업원에게 ‘어떤 기름을 썼냐’ 물으니 일반 식용유란다.
기름의 종류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는 두부의 청렴결백함에 놀란다.
“생두부는 자르지 말고 주셔요.”
절단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하듯 주문한다.
손바닥만 한 크기의 통두부가 상에 오른다.
숟가락으로 자르면 그 곧은 모선이 망가지니 젓가락을 곧고 깊게 넣어 단정하게 떼어 먹는다.
두부는 묵처럼 허둥지둥 젓가락 사이를 빠져나가지 않는다.
그 점잖은 자태로 보나 정묘한 맛으로 보나 도통 흠잡을 데가 없다.
굳이 간장이나 김치를 더할 필요도 없다.
노란 황금콩밭이 펼쳐지는 듯한 호사스러운 고소함이면 다른 것이 없어도 충분하다.
밥 대신 두부를 먹는다는 하루키를 이해할 수 있다.
이 집은 두부는 물론 청국장과 탁주 또한 직접 만든다.
외부로 향하는 통로를 거치면 나타나는 커다란 가마솥 두 개와 탁주를 숙성하는 공간이 그 내공과 정성을 말해준다.
또한 방 벽마다 늘어선 고가구와 그림은 이 집의 멋과 격을 만든다.
화려하거나 튀지 않는다.
그저 오랜 살림집에 오래도록 있었던 소품들처럼 머물러 있다.
런 내부의 풍경이 음식의 맛과 통한다.
시각과 미각이 자연스럽게 조화를 이룬다.
기분좋은 포만감을 느끼며 가게를 나선다.
아현초등학교가 한눈에 들어온다.
초등학교뿐 아니라 중학교, 직업학교가 나란히 울타리를 같이 한다.
학교를 감싸고 있는 둘레길이 모두 스쿨존이다.
모든 차량이 살금살금 서행한다.
‘어린이 보호 구역’이라고 쓰인 안내 표지판을 보고 염치없는 욕심이 든다.
숭생숭한 이 내 마음에도 보호 구역이 있으면 하고 말이다.
그렇다면 매 계절을 이렇게 힘들게 시작하지 않을 텐데.
운동장에서 뛰어노는 아이들처럼 이 푸른 봄날을 즐길 텐데.
훗날 이 요동치는 감정은 담담한 기억으로 남아 있으리라 노래를 불러본다.



‘내가 갑자기 눈물이 나는 건 / 그대 내 생각하고 계신 거죠 / 함박눈 하얗게 온 세상 덮이는 날 / 멀지 않은 곳이라면 차라리 오세요 / 이렇게 그대가 들리지 않을 말들을 / 그대가 들었으면 / 사랑이란 맘이 이렇게 남는 건지 / 기억이란 사랑보다 더 슬퍼’


아현동 <황금콩밭>
주소 서울 마포구 굴레방로 1길 6
영업시간 매일 오전 11시 30분~오후 9시 30분




필자소개 김하늘
외식브랜드 컨설팅 회사 <브랜드테일러스>에서 음식 브랜드 창업과 운영에 관한 다양한 기획을 하며 먹고 산다.
식당의 이름을 짓거나, 그 안에서 벌어지는 감각의 동선을 설계하는 등의 일이다.
유행에 반짝하는 카페보다 오래도록 거기에 있는 백반집을 더 아낀다.
좋아하는 것을 더 좋아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과 함께 밥 먹는 것을 좋아한다.
경험하고 느끼고 말하는 식사 모임 ‘飯嘗會(반상회)’를 운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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