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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석의 부엉이 극장 - 발광하는 청춘의 빛 <영화 땐뽀걸즈>

전영석의 부엉이 극장

전영석






발광하는 청춘의 빛

영화 <땐뽀걸즈>



영화 <패터슨>에서 패터슨시(市)에 사는 버스 운전기사 패터슨 씨의 일상이 시(詩)가 되는 것처럼, 남쪽 바다 끝 거제에 사는 열여덟 소녀들의 일상은 춤이 된다.
평온한 패터슨의 삶이 균질한 생활의 라임으로 채워진다면, 탈출구 없는 열여덟 청춘들의 춤은 차차차 리듬으로 꽃을 피운다.
아이들은 숨 막히는 현실로부터 삼바 스텝을 밟으며 도망친다.
하릴없이 시작한 춤은 이내 꿈이 되고, 진짜가 되고, 아름다운 피난처의 삶이 된다.




조선소가 문을 닫고, 지역 경제가 무너지며 하나둘 사람들이 떠나는 낡은 섬을 늙고 깡마른 춤 선생이 지키고 있다.
몸의 선만큼 마음이 고운 이규호 선생님은 자식처럼 아이들을 돌본다.
선생님은 춤을 가르치지 않는다.
춤 대신 인생을 가르친다.
아니다.
가르
치는 대신 함께 웃고 함께 아파하고 함께 춤을 춘다.
쉰둘 노총각 선생님에게 춤은, 아니 땐뽀(댄스스포츠)는 그냥 춤이 아니라 ‘사람을 맨드는 춤’이다.
젊은 동료 교사가 그에게 묻는다.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은 안 해봤어요?”

“뭘? 춤? 춤 하지 마라. 댄스다 댄스.
댄스는 웃으면서 가르칠 수 있다 아이가.
일단 내가 즐겁고 재밌고, 댄스를 통해서 학교 재밌게 다니는 애들 많다 아이가.
그래 가지고 졸업한 애들은 또 고맙다고 하는 애도 있고….
언젠가는 아줌마가 되면 생각 안 나겠나?
자이브 아들 가르쳐줘야지….
재밌다 아이가.
승진? 우리가 승진할라꼬 슨생 하는건 아이다 아이가.
맞제? 아들 가르칠라꼬 하는데….
애들 잘 가르치고 사람 되게 만들어가지고 졸업시켜주는 기 우리 임무다.
아들이 몰라서 그렇지….”

‘별일’이 매일 있는 거제여자상업고등학교 땐뽀반 아이들은 ‘신박’하다.
그 나이 또래의 불안정한 파동으로 요동치는 아이들은 땐뽀의 리듬에 몸을 던진 채 다시 오지 않을 청춘의 여울목을 건넌다.
시간의 리듬 속으로 소용돌이치며 어른이 되어가는 소녀들.
영화는 시종일관 통통 튀고 까르르 웃고 톡톡 터진다.
여름내 아이들이 흘리는 땀과 눈물마저 비눗방울처럼 맑고 밝고 아름답다.

<땐뽀걸즈>는 아프지만 내일을 향해 좌충우돌 뛰듯 걷는 열여덟 청춘들의 성장 다큐멘터리 영화다.
카메라는 거제여상 땐뽀반 소녀들의 일상에 낮은 포복으로 깊숙이 잠입한다.
아이들과 선생님의 관계, 새 삶을 찾아 조선소를 떠나는 아빠들, 진학과 취업의 냉혹한 현실 앞에서 부유하는 아이들의 방황을 때론 담담하게 때론 따뜻하게 바라본다.
그녀들 청춘은 뜨겁다.
단지 아파서가 아니라 뭔가를 하고 있고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 노력하고 있기 때문이다.
과정 속에서 삶의 의미를 배워가는 미운 오리 새끼들, 춤을 추며 비루한 현실을 날아올라 저 멀리 더 높이 비상하고 싶은 거제도의 ‘빌리 엘리어트들’.
아이들 앞의 미래는 불안하지만 웃음 띤 얼굴을 한 채 열려 있다.




여름부터 겨울까지 아이들은 온몸으로 춤을 추며 마주한 현실을 씩씩하게 뚫고 나간다.
아이들의 삶은 부모의 자장 아래 있다.
조선소 노동자의 딸들은 미래의 산업 일꾼이자 어린 동생들의 조숙한 보호자이지만 그전에 꿈 많고 웃음 많은 소녀들이다. 
소녀들의 순결함은 파릇파릇 새싹처럼 싱그럽게 발아하는 일상의 에피소드 속에 빛난다.
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봉고에 올라탄 아이들은 “안녕! 돌아오지 않을 거야” 다짐을 하며 섬을 떠난다.
크고 넓은 세상으로 훨훨 날아가고 싶은 아이들.
영화는 무엇을 통과하든 힘든 시기, 청춘의 빛나는 한때, 다시 돌아오지 않을 시간을 기록한다.

거제여상의 교훈은 ‘일취월장(일찍 취업해서 월급 받아 장가·시집가자)’.
고깃집 알바 막간 짬이 날 때마다 스텝을 연습하는 현빈이는 고등학교 2학년 때 자기를 낳고 버린 엄마 아빠 대신 할머니 손에 자랐다.
힘들게 번 돈으로 보증금 200에 월세 63만 원짜리 집에서 사느라 ‘내가 원하는 걸 두 개는 못 가지는 거다.
하나를 가지려면 하나를 포기해야 한다’는 이치를 일찌감치 깨쳤다.
지현이는 조선소 취업을 위해 열심히 자소서를 쓰고 면접 준비를 한다.
삼성중공업에 다니던 아빠에게 ‘왜 운수업으로 전업을 했냐’고 물어도 씩 웃을 뿐 아빠는 답이 없다.
댄스를 하면서부터 결석도 안 하고 지각도 안하는 은정이는 부양할 자식들은 많은데(8남매) 조선업 불황으로 식당 손님이 줄어 한숨이 늘어가는 아빠가 안쓰럽다.
엄마가 아픈 혜영이는 어린 두 동생의 엄마 노릇을 하느라 바쁘다.
땐뽀반 단장이자 리더십이 강한 시영이는 댄스를 배우며 뭔가 해냈을 때의 만족감(누군가 ‘오르가슴’이라고 대꾸해서 한바탕 난리가 난다)이 즐겁다.
조선업 불황 때문에 퇴직 후 창업을 위해 서울로 일 배우러 간 아빠에게 ‘아빠 나 은상 탔어’ 문자를 해도 학원 수업시간에 회를 뜨는 법을 배우느라 바쁜 아빠는 답이 없다.

땐뽀 전사들은 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여름내 댄스 연습에 매진한다.
그 과정에서 삶의 의미를 배우고 성취의 맛을 즐기며 조금씩 전진한다.
통과의례의 성장통마저 아름답게 채색하는 아이들의 맑은 웃음소리.
터질 것 같은 불안과 싱그러운 젊음은 담담한 프레임 안을 꽉 채운다.
아이들은 부모 품을 떠나 민들레 홀씨처럼 정처 없이 떠다니지만, 차차차 음악에 맞춰 스텝을 밟는 순간만큼은 자기 삶의 주인이 된다.
춤은 자유다.
현실이라는 중력을 벗어나 도약한다.
규제와 속박으로부터 자유롭게 움직이지만 그 세계엔 또 다른 질서와 규칙(스텝, 줄, 호흡 맞추기)이 있다는 것을 댄스를 통해 스스로 깨치며 아이들은 조금씩 자란다.

<땐뽀걸즈>는 한국 영화계가 다양성영화의 최전선에서 거둔 소박한 성취다.
아직 영화를 보지 못한 분들이 있다면 어서 보십사 추천한다.





필자소개 전영석
‘하루 한 편 영화 보기’가 꿈인 영화 애호가.
세상의 영화를 모두 해치우는 게 로망.
밥벌이 말고는 책 읽고 영화 보는 게 일.
닉네임 ‘타자 치는 스누피’로 블로그와 페이스북에 영화의 영원 같은 찰나들을 기록하는 게 낙.
취미는 재밌고 슬프고 멋있고 죽이는 영화 추천하기.
오늘도 꿈을 이루기 위해 불철주야 매진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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