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피투데이

문화
count
2,551
임원경제 산책 - 조선판 부자학사전, 예규지(1)

임원경제 산책

글과 사진 정명현







조선판 부자학사전,

예규지(1)



“공부 못하면 배추장사나 해야지.”

어려서부터 주변에서 수없이 들었던 말이다.
혹시나 해서 ‘배추장사나’로 검색해봤다.
시나 지금도 학생들이 이런 이야기를 자주 듣는다는 하소연이 많이 보였다.
정말로 배추장사를 하게 될까 봐 걱정하는 이들도 많다.
힘든 직장생활을 때려치우고 싶을 때도, 이 일 저 일 해봤다가 신통치 않을 때도 ‘배추장사나’는 단골메뉴로 소환된다.
배추장사로 생계를 이끌어가시는 분들께는 매우 죄송하지만, 그래서 배추장사는 배우지 않아도 쉽게 할 수 있는 일, 능력을 인정받지 못했을 때 하는 일의 대명사로 인지되고 있다.
‘배추장사나’에서 ‘나’라는 어감이 묘하다.

“딱히 공부 못하는 편도 아닌데 언니는 항상 ‘공부 못하면 배추장사나 해라 ㅋ’ 이런 식으로 말합니다.” - 언니가 싫어지는 초6.
“커서 시장에서 배추장사나 하면 어떡하지 싶고….” - 성적으로 고민하는 중3.
“남들 수시 넣는데 탱자탱자 놀다 떨어져서 배추장사나 하게 되면 어쩌지?” - 대입이 머지않은 고2.

때로는 상대를 저주하는 욕이 되기도 한다.
“너 배추장사나 할래?” - 자신에게 욕 좀 알려달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
(이상 ‘NAVER 지식iN’ 참조)


이형록 <설충향시도>


배추를 예로 들었지만, 실제 일상 대화에서는 다양한 품목이 ‘배추’ 역할을 대신하기도 한다.
돈을 많이 벌고 싶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을 테지만, 여전히 장사는 돈 버는 일 중 가장 쉬운 일로 생각하거나, 비천하게 생각하는 인식이 어려서부터 자연스럽게 그리고 강하게 자리 잡혀 있음을 엿볼 수 있다.
소규모 개인사업자 비율이 매우 높은 이 시대에도 이러한데, 조선시대에는 어떠했겠는가.
그러나 장사를 한 번이라도 해본 사람이라면, 아니 장사 알바의 일천한 경험만 가지고
있어도 남의 주머니 속 지갑을 열게 하는 일이 얼마나 힘든지 쉽게 공감할 것이다.
장사는 결코 비아냥대거나 장난삼아 해볼 일이 아닌 것이다.

<임원경제지>에서 소개한 ‘재산 증식법’의 표제어를 다음처럼 10개만 모아봤다.
① 먹고살려면 장사해야 한다
② 상인은 공정과 성실이 으뜸이다
③ 속이는 장사는 보탬이 안 된다
④ 돈 빌려줄 때 이자는 적당해야 한다
⑤ 돈이나 식량을 너무 많이 빌려주지 말라
⑥ 재산을 금은보화의 형태로 보관만 하지 말라
⑦ 부동산을 거래할 때는 법대로 하여 후환을 없애야 한다
⑧ 채무자 땅을 술책으로 빼앗지 말라
⑨ 자손에게 재산을 고루 나눠줘라
⑩ 부지런과 검소가 근본이다

어떠신가.
마치 유명 재테크 서적에 나오는 각 장의 제목일 법한 내용이 아닌가.
표제어 제목만 봐도 상당히 구체적이고 실용적인 정보가 들어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이 중 예를 들어 맨 앞의 ‘먹고살려면 장사해야 한다’는 표제어 아래에서 소개한 내용은 다음의 말로 시작한다.

“사람이 세상에 살면서 웃어른을 잘 모시고 죽은 사람을 후하게 장례를 치르는 일에는모두 재물이 필요하다.
그러나 재물은 하늘에서 떨어지거나 땅에서 솟아오르지 않으므로 반드시 있는 물건과 없는 물건을 사고파는 일에 대비해야 한다.”

살려면 돈이 필요하고, 그 돈을 손에 넣기 위해서는 일해야 하는데, 그중 장사도 중요한 선택이라는 말이다.
장사를 하찮게 여기지 않고 적극 권장하고 있다.
선비와 장사가 거의 매칭이 되지 않는 시대에 나온 말치고는 매우 파격적이다.
가정을 꾸려가는 데에 돈의 필요성을 인정하고 그에 적극 대처하려는 자세다.
상업에 참여하기를 권유하는 이와 같은 태도는 서유구가 이미 표방했던 바다.
“군자가 도를 닦을 때 어찌 따뜻함과 배부름에 뜻을 둔 적이 있었겠는가?
그렇지만 도(道)에서 귀중한 것은 상황에 알맞음을 따르는 일이다.
고지식하고 융통성이 없으면서 보편적인 도리를 알지 못하는 것 또한 바르지 않다.
우리나라 사대부가 스스로 고상하다고 표방하며 으레 장사를 비루하게 여긴 태도는 본래 그러했다.
그러나 궁벽한 시골에서 자신을 닦으며 가난하게 사는 무리가 많은데, 부모가 굶주리고 추위에 떨어도 모르는 척하고 처자식이 아우성쳐도 돌아보지 않고, 손을 공손히 모으고 무릎 꿇고 앉아 성리(性理)를 고상하게 이야기한다.
어찌 <사기>를 지은 사마천이 부끄럽게 여긴 자가 아니겠는가.
그러므로 부모와 처자식을 먹여 살리는 기술을 익히지 않으면 안 된다(故食之之術, 不可不講).” - <임원경제지>의 ‘예규지(倪圭志)’ 서문 中


<임원경제지>의 ‘예규지’ 서문


원문에는 이 글 중간중간에 주장의 근거로 삼는 논거들이 있으나 모두 생략하고 논리의 흐름을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되는 부분만 정리해봤다.
돈벌이의 필요성을 역설한 논리다.
이 논리는 성리학이 주된 이념이었던 조선에서 상업을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는 점에서 꽤 중요하다.
돈벌이의 추구가 성리학의 세계관을 벗어나려는 시도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선비는 배움을 통해 공자나 맹자와 같은 성인이 되는 길을 걸어가려는 지식인이다.
인이 되는 과정을 도를 닦는다고 표현한 것이다.
도 닦는 과정에 일신의 안위를 구해서 는 안 되지만, 그렇다고 그 말만 지키기 위해 어떤 상황에도 춥고 배고픈 가시밭길을 걸어야 한다는 입장만 고수해서는 안 된다.
물론 혼자 그 길을 가는 것까지 말릴 수는 없겠지만, 부모와 처자와 함께 가정을 이루고 사는 가장이라면 해서는 안 될 짓이다.
해서는 안 될 이 짓을 하고 살아야 ‘좀 선비스럽다’고 여겼던 조선의 무책임한 선비들에게 일침을 놓는 말이었다.
‘식지지술(食之之術)’, 즉 가족을 먹여 살리는 기술을 익혀야 한다는 서유구의 주장은 이 ‘못된 버르장머리’를 확 뜯어 바꾸고 싶었던 한 지식인의 간절한 절규였다.
위에서 소개한 10가지 표제어 중 여러분은 어떤 표제어에 가장 관심이 가는가.
어떤 제목의 뚜껑을 먼저 열어보고 싶은가.
나는 개인적으로 ‘⑥재산을 금은보화의 형태로 보관만 하지 말라’에 호기심이 당긴다.
이 뚜껑을 열어보면 다음과 같은 정보를 알려준다.
인용문이 길지만, 원문의 맛을 독자들이 직접 느끼실 수 있도록 전문을 제시한다.



김홍도 <행상>


“사람 중에는 형제나 조카들과 함께 살고 있으면서 개인 재산이 유독 많아 재산 분할을 걱정하는 경우가 있다.
이런 경우 개인 재산으로 금이나 은과 같은 따위를 사서 깊이 감춰둔다.
그런데 이것은 매우 어리석은 짓이다.
만약 10만의 가치를 가진 금이나 은으로 계산해볼 때, 이 재산으로 농지를 구입한 뒤 1년에 거두어들이는 수확량은 반드시 1만은 될 것이다.
이렇게 10여 년이 지나면 이른바 10만은 내가 이미 가지고 있던 재산이다.
그 나머지 즉 불어난 10만을 집안사람들에게 나누어준다고 해도 이는 모두 이자일 뿐이다.
더욱이 10만에 대한 이자가 또 붙는다.
이것을 전당포에 맡겨 운영하게 한 뒤, 3년이 지나 그 이자가 2배가 되면 이른바 10만은 내가 이미 가지고 있는 재산이고, 그 나머지를 집안사람들에게 나누어준다고 해도 이는 모두 이자일 뿐이다.
더욱이 3년이 지나면 그 이자가 다시 2배가 될 것이다.
이렇게 이자가 셀 수 없을 만큼 많아질 텐데 어째서 재산을 상자에 감춰두기만 하고, 이돈으로 이자를 거둬서 많은 사람들을 이롭게 하려 하지 않는가?”

재산 관리 과정에서 어떻게 하면 이윤을 확대할까에 대한 논의가 매우 세밀하다.
이 논의 속에는 매년 원금의 10% 순이익을 확보할 수 있는 길을 버려두고, 자금을 얼려놓는 경향에 대한 안타까움이 서려 있다.
천만금을 금고에 보관만 해둘 것이 아니라, 수입이 확실한 곳에다 투자한다면 그 이자 수익만으로도 재산 분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조언이다.
한마디로 재산 운용을 잘 하라는 거다.
원금을 까먹지 않으면서, 종잣돈에서 파생되는 이자만으로도 고민을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이다.
리스크 없이 확실한 수입이 보장된다면, 그리고 그 과정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면 당장이라도 실행
해보고 싶은 제안이지 않은가.
시대가 변했으니 10% 수입까지는 아니라도 말이다.

이상에서 소개한 내용은 <임원경제지> 중 마지막 16번째 지(志)인 ‘예규지’의 극히 일부다.
돈벌이의 정당성과 관련한 이야기가 길어져 돈 버는 법에 대해서는 한 가지밖에 소개하지 못했다.
다음 호에서 좀 더 풀어야 할 것 같다.



필자소개 정명현
생명과학에 빠져 있다가 인문학에 눈을 떠 내친 김에 도올서원과 태동고전연구소(지곡서당)에서 한학을 공부했다.
그 여정을 통해 조선 최대의 실용백과사전인 <임원경제지>를 알게 됐다.
멋모르고 잡았는데 감당불가.
여러 인문학자들과 힘을 합치고는 있지만, 번역하느라 등골이 빠진다.
그래도 하나씩 알게 될 때 엄청 재밌고 놀랍다.
시민들이 새 희망의 빛을 이 책에서 조금이라도 찾을 수 있게 돕고 싶다.
임원경제연구소 소장.

목록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