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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소요 52 - 푼타아레나스, 광대한 황무지 파타고니아의 최남단 도시

지구 소요 52

박숭현






푼타아레나스, 광대한 황무지 파타고니아의 최남단 도시



개인적으로 남미와 푼타아레나스에 대한 호기심은 남극 이상이었다.
출발 전, 전 남미와 푼타아레나스에 대한 여러 가지 자료를 찾다가 문득 체 게바라의 <모터사이클 다이어리>가 생각났다. 
의대생이던 체 게바라가 친구와 함께 모터사이클을 타고 남미 곳곳을 여행하면서 남미의 사람들과 정치, 경제, 사회 그리고 자연을 경험하며 느끼고 생각한 것을 기록한 책이다.
체 게바라에게 있어서 이 여행은 의사에서 혁명가로 회심(回心)하게 되는 매우 중요한 계기였던 것이다.
책을 통해 체 게바라의 여정을 살펴보니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출발, 남미 서쪽을 향해 횡단하여 칠레 산티아고에 머물
다가 페루를 거쳐 북쪽으로 여행을 계속해 베네수엘라의 카라카스까지 간 다음, 다시 부에노스아이레스로 돌아오는 것으로 되어 있다.
푼타아레나스를 포함한 남미 최남단은 그의 여정에서 통째로 빠져 있는 것이다.
사실 체 게바라가 남미 최남단에 가지 않은 이유는 분명해 보인다.
아르헨티나 초원지대인 팜파스 남쪽 콜로라도강 아래 남위 40도 이하의 광대한 지역은 행정구역상의 명칭은 아니지만 파타고니아로 불리는데, 혹독한 기후로 인해 사람이 거의 살지 않기 때문이다.
푼타아레나스는 남미 최남단 황무지의 끝단에 위치한 고립된 섬과도 같은 도시인 것이다.
자연보다는 인간에 관심을 가졌던 체 게바라가 광대한 황무지를 관통해 푼타아레나스까지 가야 할 이유는 없었을 것이다.
황무지에 가까운 파타고니아 최남단에 푼타아레나스라는 도시가 건설된 것은 마젤란 해협을 떼놓고는 생각할 수 없다.
19세기 말 파나마 운하가 뚫리기 전까지 대서양과 태평양을 연결하는 해협은 마젤란 해협이 유일했고, 이를 관리하기 위한 거점 도시가 필요했던 것이다.
그런데 푼타아레나스라는 도시가 건설되기 전까지 파타고니아에는 아무도 살지 않았던 것일까?
역설적이게도 파타고니아란 이름 자체가 이 지역에 사람이 살고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세계 일주 과정에서 유럽인으로서 처음 남미 대륙최남단에 도달한 마젤란 일행은 자신들에 비해 덩치가 큰 원주민들이 살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 이들을 ‘거인족의 땅’이란 의미의 ‘파타고니아’로 기술했고, 이것이 이 지역의 명칭으로 굳어진 것이다.
원주민들이 어떤 경로로 파타고니아에 살게 됐는지 알 수는 없다.
유럽인들의 이주 후 원주민들은 사멸해갔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푼타아레나스 외 파타고니아의 다른 지역에는 누가 살고 있던 것인가.
브루스 채트윈이 쓴 <파타고니아>를 보면 사람들이 왜 황무지까지 와서 살게 되는지에 대한 다양한 이유를 읽
어볼 수 있다.
이 책은 <모터사이클 다이어리>와는 다른 관점의 책인 것이다.


파타고니아는 혹독한 기후로 인해 사람이 거의 살지 않는다.


마젤란 해협으로 많은 배가 지나다니던 19세기 동안 호황을 누리던 푼타아레나스는 파나마 운하가 개통되면서 몰락하기 시작했다.
선박들이 가까운 길을 놔두고 굳이 멀고 위험한 마젤란 해협으로 돌아갈 이유가 없어진 것이다.
몰락해가던 이 도시가 다시 활력을 찾게 된 것은 파타고니아와 남극 관광 붐 덕분이었다.
파타고니아는 혹독한 날씨 때문에 사람이 살기는 힘들지만 화산활동, 빙하 그리고 바람이 만들어낸 환상적인 풍경을 체험할 수 있어 많은 사람을 매혹시켰던 것이다.
파타고니아는 다채로운 지질 현상 때문에 많은 과학적 연구가 진행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푼타아레나스는 이제 오지 여행의 거점 도시가 된 것이다.
개인적으로 푼타아레나스까지 간 김에 파타고니아까지 탐험해보고 싶은 욕구가 있었지만 이번 탐사 일정으로는 불가능했다.
유즈모 지올로지아호를 타기 전까지 주어진 3일은 세종기지로 들어가기 위해 긴장을 늦추지 않고 대기하고 있어야 하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파타고니아의 명소 중 하나인 ‘토레스 델 파이네’를 가볼 기회는 몇 년 후 주어졌다.
입남극 시도는 도착한 다음 날부터 바로 시작됐다.
그러나 킹조지 섬의 기상이 좋지않아 첫 시도부터 좌절됐다.
하지만 푼타아레나스에서 하루의 여유는 생긴 셈이었다.
뼛속까지 서서히 파고드는 듯한 파타고니아의 음산한 바람을 맞으며 마젤란 해협 주변을 거닐었다.
푼타아레나스에 오기 1년 전, 해양 시추선 조이데스 지졸루션호를 타고 파나마 운하를 통과했던 경험이 문득 떠올랐다.
1년 간격으로 파나마 운하와 마젤란 해협을 방문하다니, 이 무슨 역마살인가.



푼타아레나스는 파타고니아의 최남단 도시이자 오지 여행의 거점지이다.


마젤란 해협을 벗어나 도시 여기저기를 돌아다녔다.
한동안 정체되었던 까닭인지 마치 19세기 유럽 도시 같은 느낌도 들었다.
칠레인들이 사는 집, 학교, 박물관 등을 주마간산 격으로 둘러보다가 칠레 남극 연구소를 방문했다.
그곳에 있는 전시물들을 살펴보던 중 칠레가 남극의 일정 지역에 대해 자국의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칠레가 킹조지 섬에 공군 기지와 비행장을 유지하고 있는 것도 남극 영유권 주장과 관련 있었던 것이다.
물론 국제 사회에서는 칠레의 영유권을 인정하고 있지 않다.
그러나 칠레의 많은 사람은 킹조지 섬과 남극의 특정 지역이 자국의 영토라고 믿고 있다.
지속적인 교육의 결과이기도 하고, 외지인들과 접할 기회가 많지 않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칠레 현지 에이전트에게서 다음 날 새벽에는 비행기가 뜰 것 같으니 준비하라는 연락이 왔다.
새벽에 짐을 다 챙긴 뒤 공항으로 갈 만반의 준비를 마치고 대기하는데 에이전트가 와서 날씨가 급격히 나빠져 항공편이 또 취소되었다고 알려준다.
남은 시간은 하루밖에 없게 되었다.
유즈모 지올로지아호 입항 시간에 맞춰 도착하지 못한다면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하고 탐사 일정이 줄어드는 것도 감수해야 한다.
제시간에 세종기지에 도착할 수 있을지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나는 에이전트에게 내일은 비행기가 뜨는 거냐고 물었다.
그는 누가 알겠냐면서 ‘안타티카(Antarctica, 남극)’라고 말하고는 살짝 윙크를 했다.
이 한 단어는 남극과 관련된 온갖 불확실성과 책임 회피에 대한 핑계를 함축하고 있다.



필자소개 박숭현
극지연구소에서 책임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다.
지구의 내부 물질과 에너지가 나오는 통로인 해저 중앙해령을 연구하여, 지구 내부 맨틀의 순환과 진화의 문제를 밝히고자 한다.
현재 미국 하버드대학교 지구행성학과에서 그 분야의 권위자인 랭뮈르 교수와 공동연구를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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