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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강명의 부엌에서 쓰는 칼럼 - 개발자 아저씨등과 문어보쌈을
장강명의 부엌에서 쓰는 칼럼

장강명





개발자 아저씨들과 문어보쌈을


대학 친구 A와 B, C 그리고 D를 분당에서 만났다.
나를 뺀 네 명의 직장이 모두 그 근처였다.
A, B, C는 분당에 있는 IT 기업에, D는 근처 건설회사에 다닌다.
대학 동기들 중 IT 개발자가 꽤 많다.
우리가 졸업할 때 시스템통합회사들이 공대생을 대거 채용했다.


처음에 A가 친구들을 부를 때에는 아내가 아이들을 데리고 제주도로 여행을 간다며 자기 집에서 모이자고 했다.
그런데 막판에 A의 아내가 여행 계획을 취소했고, 우리는 문어보쌈집에서 만나게 됐다.
문어랑 삶은 돼지가 어울리나?
고개를 갸웃하며 식당을 찾아가는데 상가가 너무 복잡해 한참 헤맨다. A, B, C는 이미 자리에 앉아 있다.
“번개 모임에 다섯 명이나 온다고 해서 깜짝 놀랐네. 우리 한때는 아무리 불러도 다들 바빠서 못모였잖아.”
내가 앉으면서 말했더니 “이제 우리 다 그럴 나이지, 집에 가도 할 일도 없고 재미도 없거든, 부르면 다 나온다”라고 B가 대답한다.
자리에 앉자마자 아이들이 폭탄주를 만들어 잔을 돌린다.
엄청 빨리빨리들 마신다.
분위기가 금방 훈훈해진다.
나는 ‘그래, 술은 이렇게 공평하게 마시고 다 같이 취해야지’라고 고개를 끄덕인다.
다들 정시에 모였다는 사실도 놀랍다.
야근 안 하나?
A, B, C의 회사는 최근 들어 무조건 정시 퇴근이라고 한다.
시스템통합업계에 일거리가 없단다.
A와 C가 다니는 회사는 구조조정을 준비 중이다.
과장인 C가 아직도 자기 팀에서 거의 막내급이고, A는 잉여 인력들을 관리하는 업무를 맡았다.
B는 사표를 쓸까 말까 고민 중이다.
A는 자기가 구상중인 사업 아이템을 이야기해준다.
나는 왜 개발자들의 아이디어를 회사가 유용하게 활용하지 않는지 묻는다.
친구들의 의견은 하나로 모아진다.
경영학과 출신 관리자들이 멍청해서 인건비 절감과 로비 외에 다른 방법을 모르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공무원들을 상대로 ‘기술 영업’을 다닌 이야기를 들려준다.
최고의 접대는, 술을 마시고 같이 ‘꽐라’가 되어 다음 날 아침 해장국을 함께 먹는 거라고 한다.
친구들은 공무원들이 어떻게 자기퇴직 이후를 챙기는지도 알려준다.
D가 온다.
다른 사람들은 다 등산복 차림인데 혼자 양복을 입고 온다.
또 술잔을 돌리고 얼큰히 취한다.
C가 하도 채근해서 우리는 새로 나온 SNS 앱을 내려 받는다.
C를 뺀 나머지 아저씨 넷은 SNS를 혐오한다.
개중 둘은 개발자 주제에 페이스북도 트위터도 하지 않는다.
문어랑 삶은 돼지는 역시 어울리지 않는다.
B가 투덜거리며 족발을 주문하는데, 이것도 맛이 별로다.
“왜 이 집을 예약한 거야? 여긴 너희 집 근처도 아니고 너희 회사 근처도 아니잖아, 아는 집이야?” B가 묻는다.
A는 “나도 처음이야, 그냥 인터넷 검색했더니 제일 위에 나오는 집이라서 여길 골랐어”라고 대답하고 우리들은 할 말을 잃는다. 
A는 원래 그런 녀석이었다.
배가 터질 것처럼 불러온다.
C는 오래간만에 노래방에 가자고 한다.
나머지 아저씨들은 노래는 무슨 노래냐, 술이나 마시자고 한다.
A는 파란만장하게 30대를 보낸 C에게 “야, 강명이한테 소설 소재 좀 줘라”고 한다.
C는 내게 “야, 너 작가로 성공해도 술은 우리가 쏠 테니 계속 모임 나와라”고 한다.
그러면서 노래방을 다시 한 번 제안한다.
술집에서 나와서 2차로 어디 갈지를 궁리하다가 그냥 또 술을 마시기로 한다.
서현역에서 내가 사는 신도림으로 가려면 분당선을 타는 게 빠르냐 신분당선을 타는 게 더 나으냐를 두고 논쟁이 벌어진다.


“야, 근데 분당 여자들은 되게 예쁘지 않냐? 우리 동네랑은 확실히 달라.”
누군가 그렇게 말하니 다른 아저씨들이 한목소리로 그 녀석을 비난하고 야유한다.
발언자는 당황해서 “왜 이래? 너희들 원래 나랑 같은 놈들이었잖아”라고 항변한다.
나는 속으로 ‘이 자식들 언제 이렇게 젠더 감수성이 높아진 거야’라고 생각한다.
친구들아, 건강해라.
가끔씩 얼굴 보자.


다음에는 맛집에서 만나자.





필자소개 장강명
공대를 졸업하고 건설회사에 들어갔다가 그만두고 나와 신문기자가 되었다.
신문사에서 11년 일하다 그만두고 나와 소설가가 되었다.
결혼식을 올리지 않고 혼인신고만 했다.
자신의 소설에 대해 ‘월급 사실주의’라고 설명한다.
장편소설 〈표백〉, 〈한국이 싫어서〉, 〈댓글부대〉,〈우리의 소원은 전쟁〉, 소설집 〈뤼미에르 피플〉, 에세이 〈5년 만에 신혼여
행〉 등을 썼다.
주로 부엌에서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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