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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생활기5 - 동물과 함께하는 삶

캐나다 생활기 5

글과 사진 긴수염



동물과 함께하는 삶





“왕왕!”, “캉캉!” 왁자지껄한 소리에 이른 아침부터 눈이 번쩍 떠진다.
‘쿵쾅쿵쾅’, ‘타닥타닥’ 저마다 무게감이 다른 어지러운 발소리에 벌떡 일어나 방문을 열고 거실로 내려간다.
계단 펜스 앞에 어김없이 개들이 몰려와 누가 내려오나 지켜보고 있다.
거실과 정원으로 개들이 쏜살같이 드나든다.
밤새 각자의 방(켄넬)에 있다가 해방되는 기분을 만끽하는 것처럼 보인다.
나도 3층에 있는 방에서 묵으며 공동생활을 하는 터라 그렇게 느꼈는지도.
각자 볼일을 본 뒤, 거실로 후다닥 들어와 가장 좋아하는 자리에 앉는다.
모두가 실내로 들어오면 킴이 아침식사를 준다.
허겁지겁 먹는 개들 사이에서 밀리는 작은 개들은 따로 먹을 것을 챙겨준다.
나는 킴이 내려준 커피에 빵을 먹는다.
거기에 바나나 한 개면 충분하다. 럭키는 내가 과일을 먹을 때면 더욱 적극적으로 다가온다.
그가 눈으로 지그시 말한다. “조금만 주지 않겠나?” 눈빛을 거부하기 어렵다. 다른 개들은 전혀 관심 없는 과일.
킴이 바나나는 줘도 괜찮다고 해서 럭키에게 특별히 나눠주었다.
이 집에서 인간과 동물을 통틀어 가장 나이 많은 개 럭키와 홈스테이에 가장 늦게 들어온 나는 이런 식으로 친해졌다.




럭키는 짖는 법이 없었다.
집에 새로운 생명체가 나타나도 그러려니.
내가 이 집에 처음 들어오던 날, 어둠 속에서 “왓?” 하고 나지막이 말한 늑대 같은 실루엣의 개가 바로 럭키였다는 걸 알았다.
그는 짖지 않고 말을 하는 것이었다.
킴이 출근하면서 개들도 다시 각자의 방으로 돌아간다.
태평한 개들은 낮잠을 자고, 그렇지 않은 개들은 긴장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럭키만이 유일하게 거실에서 자유롭게 지냈다.
그래서 나도 럭키와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모두가 방으로 일터로 가고 나와 럭키만 남아 나른한 오후를 보낸다.
낮잠을 자는 럭키를 보고 있다가 나도 모르게 잠이 쏟아졌다.
그러다 ‘타닥타닥’ 소리에 깼더니 럭키가 꿈을 꾸는지 모로 누워 열심히 달리고 있었다.
잇몸이 보이도록 씰룩거릴 때도 있다.
무슨 꿈을 꾸는 걸까. 달리는 꿈인가.
말하는 꿈인가. 꿈에서 럭키는 개일까.
사람일까.
무엇일까.
나는 동물이 되는 꿈을 자주 꾸는데 럭키도 혹시 인간이 되는 꿈을 꾸는 것은 아닐는지.
갑자기 녀석이 격하게 달린다.
어디론가 도망가는 걸까.
좋은 꿈으로 보이지는 않아서 나도 모르게 럭키의 손을 잡았다.
그러자 그가 화들짝 깨어나 나를 지그시 바라본다.
럭키에게 특별한 감정이 들었다.
우리는 다시 졸다가 각자의 꿈나라로 풍덩.




평온한 적막을 깨는 것은 언제나 엔젤이었다.
‘화이트 코카투’인 그는 높은 톤의 휘파람 소리를 연거푸 내며 퍼덕이는 날갯짓으로 이목을 끌려고 노력한다.
내가 들어갈 만한 커다란 새장에 살고 있지만, 열대우림을 누비던 그에게는 더없이 작은 감옥이리라.
누군가 펫숍에서 구입해 기르다가 시끄럽고 감당이 안 되자 킴에게 맡겼다고 한다.
하지만 사실상 버린 거나 마찬가지.
정글을 날아다니며 무리와 시끄럽게 살아야 하는데, 인간과 살다 보니 새장에 갇혀 날지도 떠들지도 못하는 신세가 되었다.
킴이 거두어 애정을 주고는 있지만 혼자 있을 때의 엔젤은 언제나 측은했다.
그런 엔젤과 조금씩 친해지려고 노력해보았다.
그러던 어느 날, 킴이 빌려준 우쿨렐레를 거실에서 연주하는데 녀석이 나를 유심히 보다가 덩실덩실 춤을 추는 게 아닌가.
회색 앵무 조지는 한술 더 떠 노래를 불렀다.
나는 연주자, 새들은 관람객 같은 느낌.
엔젤이 자꾸 부르기에 가까이 다가가 조심스럽게 손가락을 내밀며 부리 인사를 시도했다.
그는 내 손가락을 살짝 물고 있다가 지그시 부리를 닫았다.
그 순간 ‘우드득’ 하는 소리와 함께 엄청난 고통이 밀려왔다.
손톱이 아작(?)났고 피가 흥건했다.
서둘러 지혈하는데 천사 같은 얼굴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나를 바라보는 엔젤이 원망스러웠다.
순간 녀석들이 호두도 간단하게 부숴버릴 수 있는 부리를 갖고 있다는 게 떠올랐다.
엔젤이 어떤 생각을 품고 있는지 모르고 지레짐작으로 다가간 내 잘못이다.




동물을 좋아하는 나에게는 천국처럼 보였던 이곳이, 동물들에겐 어쩌면 지옥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던 순간이었다.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없는 삶.
언제나 인간에게 통제되는 삶.
인간의 틀에 동물이 일방적으로 맞춰 사는 것은 뭔가 이상하고 동물에겐 폭력적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일부 인간의 그릇된 욕구를 채우기 위해 지구별 어딘가에서 납치되어 유통되고 유기되어 킴에게 구조된 동물들이 이 집에 가득하다.
그들이 생을 다할 때까지 돌보고 있는 킴조차 동물을 해방할 수 없어 답답한 노릇이라고.
혹시 자기가 죽게 된다면 이 많은 동물을 누가 돌봐줄지 걱정된다고 했다.
원래 살던 곳으로 동물을 돌려보내면 좋겠지만 그러기 어려운 현실의 벽에 부딪혀 다시 가두어 키울 수밖에 없는 딜레마.




킴은 홈스테이를 운영하면서 개 산책과 인간의 아이를 돌보는 일까지 했다.
동물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쓰리잡을 하는 것이다.
때로는 개를 자유롭게 풀어놓는 공원에 가서 똥을 줍는 일도 했다.
나는 일을 하지 않는 날마다 킴을 따라다녔다.
동물을 좋아하는 나에게 킴이 같이 가지 않겠냐고 물어줘서 고마웠다.
다른 집의 개들을 만나는 일도 참 즐거웠다.
그리고 킴이 개를 안전하게 산책하고 그들의 에너지를 풀어주는 모습을 보고 듣고 같이 걸으며 배웠다.
새삼 도그 워커는 아무나 하는 일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캘거리의 많은 사람이 개와 함께 살고 있는데, 집 안에 개를 오랜 시간 방치하면 동물 학대로 신고를 당한다.
개를 산책할 시간이 여의치 않은 사람들은 도그 워커를 고용해 개를 산책시킨다.
이곳에서 개는 마치 인간의 새끼와 같은 취급을 받는 느낌이 들었다.
인간이 영원한 아기를 기른다.




우리의 화두는 언제나 ‘동물과 어떻게 공생할 것인가’였다.
지구온난화와 기상이변으로 인해 인간은 물론 동물들이 고통 받는 현실에 대해 심도 있는 대화를 나누던 어느 날 깨달았다.
킴이 고기를 거의 먹지 않는다는 것을.
킴의 주변 인간들과 동물들은 고기를 먹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고기를 구입하고 요리하지만, 자신은 채식을 지향하고 있다고.
그렇구나.
공장식 축산으로 고통받는 동물들로 인해 마음 아파하는 킴을 보면서 나도 그동안 아무 생각 없이 먹던 고기를 차츰 줄이기 시작했다.
사람들을 위해 고기 요리를 내놓고 샐러드만 먹는 킴이 안쓰러웠다.
인간 중심의 자본주의 사회에서 동물들이 처한 현실을 알면서도 고기를 먹고 있는 내가 이상했다.
때로는 외면하고 싶었다.
나는 동물을 좋아하는 것이 맞나?
좋아한다고 하면 안 되는 거 아닐까.
모순덩어리가 되어버렸다.





수많은 동물과 함께 살 수 있는 일생일대의 기회라며 홈스테이에 지내기로 했는데 그들의 현실을 알아갈수록 마음이 점점 불편해졌다.
하지만 동시에 나 자신이 일부 해방되었다.
앞으로 동물과의 관계에 대해 동등한 입장에서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은 것이다.
누군가의 자유를 빼앗아 누군가의 욕구를 충족하는 것은 폭력적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그와 동시에 인간이자 동물로서의 나 자신의 삶에 대해 돌아보게 되었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앞으로 어떻게 공생할 것인가.
바나나를 집어 들자 럭키가 자석처럼 다가온다.
그가 눈으로 지그시 말한다.
“안 먹을 거면 그 바나나 전부 나에게로.”
나는 홀린 듯이 바나나를 조각내어 럭키에게 내어준다.
그리고 말했다.
“나 이제부터 채식 지향해보려고. 응원해줘.”
내 마음 아는지 모르는지 럭키는 바나나를 맛나게 먹고 고맙다는 듯 나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필자소개 긴수염
지구별에 인간으로 태어난 생명체.
다른 생명체와 더불어 사는 길을 고민합니다.
야생동물을 좋아해서 지구별 이곳저곳을 떠돌며 야생생활을 하지만 그들과 맨몸으로 조우하는 순간의 긴장감은 무뎌지질 않습니다.
그러나 그만둘 수가 없네요.
죽을 수도 있다는 걸 알면서도.
(차라리 자연의 순환 속에서 죽는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도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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