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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강명의 부엌에서 쓰는 칼럼 - 기쁨을 아는 혀

장강명의 부엌에서 쓰는 칼럼

  장강명



기쁨을 아는 혀


권여선 작가의 <오늘 뭐 먹지?>를 즐겁게 읽었다.
소문난 애주가인 권 작가가 안줏거리들에 대해 쓴 에세이 스무 편을 모은 책이다.
순대, 만두, 김밥, 어묵, 오징어튀김 등등 등장 메뉴도 친근하고, 그 음식들에 대한 작가의 애정과 흥이 독자에게 그대로 전해져온다.
‘맛깔 나는 문장이 이런 거구나’ 했다.


동시에 내게는 좀 묘한 독서 경험이었다.
왜냐하면 나는 정작 진짜 음식들에는 그다지 열광하지 않기 때문이다.
정성 들여 만든 프라이드치킨, 족발, 평양냉면, 소롱포, 초밥 등등을 아내와 함께 먹는 것은 좋아한다.
그런데 거기까지다.
대체로 먹을 것이나 먹는 행위에 심드렁하다.
혼자 먹을 때는 특히 더 그렇다.
그러면서 식탐은 꽤 있다.
뭔가 모순되어 보이지만, 실은 그냥 전형적인 ‘자취하는 노총각’ 식성이다.
배고프면 라면 끓여 먹거나 편의점 도시락 사 먹고, 안 고프면 몇 끼를 거르기도 하고, 과자나 에너지바로 때우기도 하고.
그러다가도 한 상 차려진 회식 자리에 초대되면 남들이 식사를 마쳤거나 말거나 꾸역꾸역 남은 반찬을 끝까지 입에 집어넣는다.
돌이켜보면 민망한데, 앞에 먹을거리가 남아 있으면 젓가락을 손에서 놓지 못한다.


(참고로 개들이 이렇다고 한다.
혀에 있는 미뢰의 수가 적어 인간에 비해 맛을 풍부하게 느끼지는 못한다고.
그리고 사냥에 실패하면 며칠 굶어야 했던 오래전 늑대 조상들의 습성이 남아 있어서 먹을 게 있으면 배가 불러도 끝까지 먹는다고 한다. 멍멍.)


아내는 나와 정반대다.
문자 그대로 식도락가다.
틈틈이 식당 정보를 검색하고, 유행하는 음식이 있으면 직접 찾아가 확인한다.
주말이면 꼭 맛집 나들이를 한다.
아내 덕분에 나도 이름난 식당들을 이곳저곳 다녀봤다.
그런 이름난 식당에서 나는 더 시큰둥해진다.
‘맛있는 건 알겠는데, 이만한 쾌락을 위해 이 돈과 이 시간을 들일 필요가 있을까?’라는 회의에 사로잡히기 때문이다.


내가 그런 의문을 입 밖으로 꺼내면 아내는 “재밌잖아”라고 답한다.
“재미? 무슨 재미?” 나는 되물었다.
어떤 요리가 ‘맛있다’라면 모를까, ‘재미있다’라는 게 무슨 뜻인지, 그게 어떻게 가능한 건지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어떤 음식에 대한 정보를 접하고, 이미지와 텍스트 정보를 바탕으로 맛을 추측하고, 찾아가 가설을 검증하고….
그런 수수께끼 풀이 과정이 하나의 서사가 되는 걸까?
추리소설처럼?
그렇다면 맛있을 거라 굳게 믿었던 음식이 깜짝 놀랄 정도로 형편없을 때에는 ‘반전의 묘미가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걸까?
물론 아내는 그런 해석에 동의하지 않았다.
먹는 행위 자체가 재미있다고 했다.


나는 그 말을 여태껏 미심쩍게 여기고 있었는데, <오늘 뭐 먹지?>를 읽으며 어렴풋이 무엇이 문제였는지 깨달았다.
나는 입과 혀, 코와 목구멍, 입술과 위장이 느끼는 감각이 종류와 폭과 깊이에 있어서 그렇게 풍성한 줄 몰랐다.
사람은 청각이라는 한 가지 감각에 의지해 교향곡을 들으면서 1시간 동안 ‘듣기 좋다/싫다’는 단순한 감상을 넘어선 복잡한 서사를 경험할 수 있다.
그렇다면 미각과 후각, 촉각으로도 그런 체험이 가능한 건 아닐까?
현악 4중주와 같은 섬세한 서사의 샐러드 요리 같은 게 있는 걸까?
아내는 그런 경험을 하는 걸까?


아내의 관점을 상상해 나를 보니 딱하다는 생각도 들고 억울한 마음도 인다.
식사시간을 아껴서 나는 도대체 뭘 이루려는 걸까?
내가 의미 있다고 여기는 행위들, 글쓰기와 읽기를 통해 붙잡고자 하는 관념들은 혀와 입이 주는 다채로운 기쁨과 비언어적 이야기보다 정말 가치 있는 걸까?
육신의 쾌락을 제대로 맛볼 줄 알고 현재를 기꺼이 즐길 줄 아는 사람들을 나는 늘 무시하면서 한편으로 부러워하고 질투했다.
어떤 사람은 의미의 세계를 살고, 다른 이는 감각의 세계를 살도록 정해져 있는 걸까?
아니면 그저 내가 감수성 훈련을 제대로 받지 못할 탓일까?
지금부터라도 마음을 열고 혀의 기쁨에 집중하면 나도 미식가로 거듭날 수 있을까?






필자소개 장강명
공대를 졸업하고 건설회사에 들어갔다가 그만두고 나와 신문 기자가 되었다.
신문사에서 11년 일하다 그만두고 나와 소설 가가 되었다.
결혼식을 올리지 않고 혼인신고만 했다.
자신의 소설에 대해 ‘월급사실주의’라고 설명한다.
장편소설 〈표백〉, 〈한국이 싫어서〉, 〈댓글부대〉, 〈우리의 소원은 전쟁〉, 소설집 〈뤼미에르 피플〉, 에세이 〈5년 만에 신혼여행〉 등을 썼다.
주 로 부엌에서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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