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로시마 문화 기행 1
글과 사진 장보영
히로시마에서 보낸 평화로운 주말 오후
세상의 사람들에게 ‘원폭’의 도시로 기억되고 불리는 곳.
‘히로시마(?島)’는 영원한 아픔의 도시다.
1945년 8월 6일 오전 8시 15분, 미군이 투하한 사상 최초의 핵무기가 히로시마 상공에서 폭발했고 초토화된 일본은 항복을 선언했다.
이로서 제2차 세계대전은 개전 5년 만에 막을 내렸다.
이 사건으로 히로시마 전체 인구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15만 명이 하루 만에 사망했다.
그리고 그 이상의 사람들이 방사능 피폭으로 고통 속에서 악몽 같은 삶을 연명하다가 끝내 죽음을 맞았다.
3만 명의 재일 한국인(징용 조선인)도 이때 사망했다.
영원히 지울 수도, 씻을 수도 없는 이 상처의 공간에 다가가기까지 참 오랜 시간이 걸린 것 같다.
나에게 히로시마로 가는 길은 언제나 멀었다.
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의 여러 지방을 여행했지만 히로시마로 가는 길에는 어떤 망설임이 있었다. 잿빛의 역사를 대면하기에 아이러니하게도 내 하루하루의 삶이 더 무거웠다.
그래도 언젠가는 한 번쯤 히로시마에 가야 한다고 생각해왔다.
왜냐하면 그곳이 히로시마이기 때문에.
히로시마라는 벽을 넘지 않고는 일본을 말할 수 없다고 생각해왔다.
히로시마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든 것은 지난 5월 말이었다.
도쿄에서 오랜 시간을 살아온 친구 에이코(Eiko)가 고향인 히로시마로 돌아왔다는 소식을 페이스북으로 접했다.
‘히로시마’라는 글자가 내 앞으로 걸어오는 순간이었다.
에이코에게 ‘내가 히로시마에 가도 되겠느냐’는 메시지를 보냈고 즉각 답장이 왔다.
물론 환영한다는 내용이었다.
보여줄 것이 너무 많다면서.
히로시마에서 현재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일하는 그녀가 진행한 전시회는 아쉽게도 이틀 전에 끝났다고 했다.
토요일 아침 인천공항에서 9시 비행기를 타고 히로시마공항에 도착했을 때는 정오도 지나지 않았
다.
한국에서 2시간이면 일본 어디든 여유롭게 닿는다지만 히로시마로 가는 길은 유난히 더 짧았 다. 히로시마는 혼슈의 주고쿠 지방에 위치해 있으며 세토 내해와 맞닿아 있다.
세토 내해(??? 海)란, 혼슈와 규슈와 시코쿠 사이의 좁은 바다를 말하며 히로시마현, 야마구치현, 오카야마현, 에히메현, 카가와현 등이 세토 내해와 접해 있다.
히로시마는 이 세토 내해의 여러 도시들 중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고장이다.
공항버스를 타고 1시간 남짓 이동해 히로시마역에 도착했다.
역에는 예정대로 에이코가 마중을 나와 있었다.
준비성이 탄탄한 에이코는 한 손에 수첩을 들고 있었다.
우리의 이번 주말여행을 책임질 곳들이 그녀의 수첩 안에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숙소에 배낭을 두고 서둘러 히로시마 중심가로 이동했다.
바람은 선선했고 허공은 곧 비를 쏟아낼 듯 울먹였다.
어디론가 분주하게 오고가는 사람들 사이를 걷는 동안 나의 두 눈은 바쁘게 이 도시의 윤곽을 살폈다.
그러다가 히로시마 시내를 달리는 노면 전차에 시선이 멈췄다.
지하철처럼 생긴 트램이 도로 위에 난 노선을 따라 달리고 있었다.
도쿄를 비롯해 일본 내 여러 도시에서 노면 전차가 다닌다고는 들 었는데 실제로 본 것은 처음이었다.
히로시마에서 ‘히로덴(?電)’으로 불리는 이 노면 전차는 무려 100년 동안 같은 자리를 지키고 있다고 한다.
삼각주에 위치한 해안도시라 지하수맥이 통과하는 관계로 지하철 건설이 특히 어려운 히로시마에서는 이 히로덴이 고마운 시민의 발이 되고 있는 것이다.
히로덴을 타고 에이코와 함께 간 곳은 히로시마 시내에서 조금 떨어진 선착장이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우리는 10분 정도 페리를 타고 히로시마 만(灣) 남서쪽에 있는 ‘미야지마(宮島)’라는 작은 섬에 들어갔다.
섬에서 섬으로.
‘신(神)이 머무는 섬’으로 통하는 미야지마.
뒤로는 원시림이 울창한 산을 두르고, 앞에는 푸른 바다를 껴안은 미야지마는 갑판에서 바라봐도 그 자체로 완전한 하나의 비경이었다.
한 폭의 살아 있는 그림을 감상하는 것 같던 시간을 지나 미야지마에서 하선했다.
미야지마에 내리자마자 우리를 반겨준 것은 눈이 크고 예쁜 사슴들이었다.
서로가 서로를 해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는 걸까.
사슴들이 정말이지 겁도 없이 사람들 사이를 고고하게 걸어 다녔다.
사슴들의 영역에 인간들이 놀러온 것 같은 느낌이었다.
어딘가에 갇히지 않은 야생동물을 본 것이 도대체 얼마 만인가.
예상하지 못했던 섬 주인(?)을 만난 나의 태도는 조금 차분해지고 겸손해졌다.
시선도, 말투도, 걸음걸이도 그리고 마음가짐도. 에이코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따르면, 미야지마에서 사슴은 인간과 섬의 신을 연결해주는 신성한 존재라고 한다.
그래서 사람들이 사슴을 귀하게 여기는 거고, 그래서 사슴은 서슴없이 사람들에게 다가가는 거라고.
섬 어디에나 사슴들이 있었다.
그런데 이것이 오히려 미야지마에서는 골칫거리라고 한다.
사람들이 사슴들에게 자꾸 먹을 것을 줘서 사슴 수가 너무 늘어나 현재 섬 관리에 곤란을 겪고 있다고.
에이코와 이런 이야기를 나누는 중에도 사슴이 우리 사이로 걸어 들어왔다.
가방 안에 든 도시락 냄새를 맡은 것 같다.
에이코와 나는 이쓰쿠시마신사(嚴島神社)로 향했다.
1996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이쓰쿠시마신사와 신사로부터 200m 전방에 우뚝 솟아 있는 약 16m 높이의 녹나무 기둥 오토리이 (大鳥居, 일본의 신사 앞에 세워진 전통적인 문)가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바닷물이 차오르면 허리까지 잠기는 오토리이는 미야지마의 상징이다.
그 장면을 기대하고 왔지만 우리가 찾아갔을 때는 하필 물이 다 빠져 있을 때였다.
이쓰쿠시마신사와 오토리이 사이로 훤히 드러난 땅 위에서 사람들은 한적한 휴일을 보내고 있었다.
점처럼 작은 사람들을 바라보며 우리는 벤치에 나란히 앉아 늦은 점심을 먹었다.
페리를 타기 전, 선착장 근처 레스토랑에서 에이코가 구입해온 도시락은 아직까지 따끈따끈했다. 나무로 만들어진 도시락의 뚜껑을 열었다.
“이건 일본식 장어덮밥 ‘아나고메시(あなごめし)’야. 양념장을 발라 구워낸 붕장어를 밥 위에 얹어 먹는 요리지.” 미야지마에 놀러온 사람이라면 꼭 한 번 먹어야 하는 대표 먹거리라고 한다.
“식당 안에서 먹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도시락으로 가져와 야외에서 먹는 것이 포인트야.” 세심하게 배려해주는 에이코에게 고마웠다.
원폭이 투하된 매년 8월 6일이 돌아오면 히로시마와 미야지마에서는 다양한 행사가 열린다.
1만여 개의 등을 띄워 올리는 평화기념식을 비롯해, 미야지마 바다 위에서 펼쳐지는 불꽃축제가 장관이란다.
이 기간에 맞춰 여행을 오면 히로시마의 진면목을 볼 수 있을 거라고 에이코가 말했다.
해발 530m의 미센(?山)에 올라 다가올 여름의 밤바다를 상상하며 미야지마에서의 시간을 마무리했다.
아침저녁으로 변하는 섬의 표정을 보려면 섬에서의 하룻밤이 불가피한데 아쉽게도 시간이 많
지 않았다.
사람들을 가득 태운 페리가 섬을 빠져나가고 들어오고, 다시 빠져나가고 들어오는 광경을 산 위에서 말없이 바라봤다.
수십 년 전의 검은 하늘을 떠올리기에 눈앞의 이곳은 너무 평화로웠다.
히로시마 시내로 나가는 마지막 페리 시간에 맞춰 선착장을 향해 달렸다.
어느새 사슴들이 다시 다가와 달리는 우리를 따라왔다.
“다시 올게!”, “사요나라!” 뒤돌아 손을 흔드는 마음으로 노을이 지고 있었다.
1.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
2. 히로시마 시내와 근 교를 이어주는 노면 전차 ‘히로덴’.
3. 미야지마의 상징 ‘오토리이’.
4. 밀물에는 사람 키만큼 물이 찬 다.
5.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이쓰쿠시마신사’.
6. 미야지마의 ‘사슴’은 인간과 이 섬의 신을 이어주 는 고리로 통한다.
7. 미야지마에서 볼 수 있는 인력 거 ‘리키샤’.
8. 일본식 장어덮밥 ‘아나고메시’.
9. 바 닷물이 빠진 섬에서 누리는 오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