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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경계를 지운 편지 - 의리의 첫사랑

시간의 경계를 지운 편지

  변왕중 
사진  박민정


 
의리의 첫사랑





포항 시내 한중간이었습니다. 
여름의 끝 무렵이었죠. 
도시에서 제일 크고 유명한 빵집 앞에서 열여섯 살의 내가, 같은 또래의 여자아이 앞에 서 있습니다. 
하늘에서 비가 내리고 둘 다 우산을 들고 있습니다. 
여자아이는 비가 그친 후, 처마에서 떨어지는 빗방울처럼 또박또박 말을 하고 있군요.
나는 아주 많이 화가 나 있는데, 그래서 억울해서 죽을 지경인데, 아무 대꾸도 하지 못하네요. 
여자아이를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그 아이가 따지는 것조차 달콤하기 때문입니다. 
둘과 둘의 바깥이 비에 젖습니다. 
나는 우산을 때리는 빗소리를 듣고, 지나가는 사람들을 곁눈질하고, 검게 변하는 도로와 가로수의 흔들리는 잎들을 봅니다. 
달콤한 빵 굽는 냄새가 빵집에서 흘러나옵니다. 
그러다 나는 무심코 여자아이의 말에 대꾸를 합니다. 
마침 빗소리처럼 빵집 안에서 <그대 떠나는 날 비가 오는가>라는 노래가 흘러나오네요.

나의 산책은 주로 두 군데로 나뉩니다. 
대부분은 집 앞에 있는 월드컵 난지천 공원입니다. 
숲을 한 바퀴 돈 다음 400m 트랙으로 둘러싸인 잔디광장에 도착합니다. 
벤치에 앉아 맞은편의 산을 쳐다봅니다. 
산꼭대기에는 가을에 억새축제가 열리는 하늘공원이 있습니다. 
빽빽한 산의 나무들은 다르게 흔들립니다. 
나무들은 바람이 지나가는 차례나 차지한 공간이나 수종(樹種)에 따라 무리 지어 시차를 두고 흔들립니다. 한 무더기가 우우우 머리채를 흔들고, 다음에는 다른 무더기가 우우우 춤을 춥니다. 
꼭 그 옛날 전국체전에 동원된 학생들의 퍼포먼스 같습니다. 
호루라기를 입에 물고 지도하는 선생은 바람입니다. 
바람이 호루라기를 입에서 뗄 때까지 무리 지은 나무들은 서로 다른 속도로 일어섰다 주저앉습니다. 
그 나무들의 춤은 어쩐지 아득해서 그리운 얼굴을 떠올리게 합니다. 
아무래도 젊은 시절 부모님, 학교에서 만난 친구들과 사회에서 만나 20년이 넘은 몇 안 되는 인생의 친구들, 기르다 떠나보낸 동물들도 그렇습니다.
아주 가끔은, 의리상 첫사랑을 생각합니다. 
30여 년 전, 포항 시내에서 제일 큰 빵집 앞에서 헤어졌던 열여섯 살 소녀. 
그때 다퉜던 말들은 이미 과거의 물밑으로 가라앉아 화석처럼 굳어버렸습니다. 
찾아낸다고 해도 어떤 돌인지 몰라요. 
바다를 끼고 있는 도시라서 어린 날의 데이트 장소는 해변이었습니다. 
모래사장에 앉아 있었습니다. 딱히 바다를 본 것 같지도 않고 많은 말을 한 것 같지도 않습니다. 
예쁜 조개를 주워서 내민 적은 있었을 거예요. 
노래를 불러준 적도. 
그러다 해 질 녘이 되면 자리에서 일어나 낮은 제방 위로 올라와서 운동화 속의 모래를 털어냈어요. 
빵집 앞에서, 노래 속에서 헤어지고 여러 날 시체처럼 뻗어 있었던 거 같아요. 
잠결에 헤어질 때 빵집에서 흘러나오던 노래가 비처럼 내렸어요. 
아니면 빗소리가 들렸고 그것이 그 노래 같았는지도 모르죠. 
눈을 뜨면 내 방의 물건들이 방주에 올라타지 못한 생명들처럼, 미래로 가지 못하고 버려진 것들처
럼 처량했어요. 


조금씩 마음의 상처가 치유되었는지, 연고를 바른 것처럼 빠른 시일에 확 달라졌는지는 모르지만
결국 아물었어요. 
더 이상 죽을 것 같지 않았죠. 
다시 새로운 날들이 시작되었습니다. 
내 물건들도 햇볕에 널어둔 것처럼 보송보송해졌어요. 

왜 가끔 첫사랑에 대해 말할 때가 있잖아요. 
그때마다 나는 내 아픈 첫사랑을 곧 쓰러질 것 같은 얼굴로 고백하곤 했어요. 
‘아아, 옛날이여!’ 하고 속으로 울부짖었답니다. 
그러다 한 번은 이런 적이 있었어요. 
그날은 때늦은 태풍이 예고된 늦여름, 연남동의 한 술집이었답니다. 

“너 만약 다음 생에 다시 태어난다면 뭐로 태어나고 싶어?”
“첫사랑. 그때 제과점 앞에서 나를 꼭 안아주고 싶다.”
뻔뻔스럽긴, 하고 바깥에서 폭풍이 시작되었어요. 
뻔뻔스럽긴, 고작 두 달 사귀었으면서. 
뻔뻔스럽긴, 얼굴도 기억하지 못하면서. 
뻔뻔스럽긴, 정확한 이름도 잊어버려놓고선. 
뻔뻔스럽긴, 길에서 만나도 모를 거면서. 
정말로 얼굴이 하나도 기억나지 않아요. 
이름도 가운데가 정인지 경인지 헷갈려요. 
왜 헤어졌는지도 까닭을 잊었어요.
사소한 일화도 정확한 게 없어요. 
그런데 뭐가 그리 안타까운 걸까요? 
잠시 고민하다 결론에 이르렀어요. 
나는 요동치는 바깥을 향해 뇌까렸습니다.
“결국, 첫사랑은 의리였네.”


공원 쪽이 아니면 KBS와 JTBC를 지나 디지털미디어시티 사거리를 건너 디지털미디어시티로 들
어갑니다. 
여러 방송국을 비롯해 깨끗한 고층 빌딩들을 구경하고 가끔은 음악프로그램 공개방송을 찾아온 세계 여러 나라 소녀 소년들과 눈인사도 나누죠. 
드높은 빌딩들의 1층은 주로 패스트푸드점, 음식점, 편의점, 화장품 가게, 커피숍이 차지합니다. 
이 글을 쓰는 나흘 전, 디지털미디어시티로 들어가서 어느 커피숍 옥외 파라솔을 지날 때였습니다. 어딘가 익숙한 얼굴과 윤곽이, 앉아서 커피를 마시는 한 여자의 안에서 또렷하게 보이더군요. 
내 안에서도 10대의 소년이 보였던가요? 
그녀가 내 이름을 불렀어요. 
믿을 수 없게도, 첫사랑이더군요.
“잘 지내니?”
“보시다시피.” 나는 개를 가리켰어요. 
같이 산책 온 걸 다행이라고 생각했어요.
“넌 어때?”
“나도 괜찮아.”
그녀의 대답에 이유 없이 부끄러워서 얼굴이 화끈거렸어요.
유리 테이블 위에 올라간 그녀의 손을 봤어요. 
날씬하고 짧은 손가락이었어요. 
탄력을 잃어가는. 
그녀는 결혼을 했고, 잘 살고 있어요. 
말을 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죠. 
배우자가 있는 사람 특유의 고단한 안정감이 느껴졌어요. 
소파 같은. 즐거운 소파인지, 꿈꾸는 소파인지, 살찐 소파인지는 모르겠지만, 여하튼 소파.
“여름휴가는?”
질문을 던지고 나서 왜 그런 걸 물었는지 후회했어요. 
하지만 딱히 어떤 말을 할지도 몰랐으니까 상관없어요. 
그녀는 일부러(아마도) 휴가 다녀온 이야기를 소상히 설명하기 시작했어요. 
이국의 나의 산책은 주로 두 군데로 나뉩니다. 
대부분은 집 앞에 있는 월드컵 난지천 공원입니다. 
숲을 한 에메랄드빛 해변(나는 에메랄드빛을 정확히 모른다는 걸 깨달았죠), 산호초가 많은 바다, 물 위의 호텔과 기내서비스 같은 걸요. 
뜨거운 바람을 정면으로 받으면서 아이들과 자전거를 타고 섬을 일주했다는군요. 
그 얘기를 듣자 그녀에게서 여름 냄새가 났어요. 
어느 순간 우리는 웃고 있었어요. 
물론 가운데 개를 두고서.
“기억하니? 그날?”
그녀의 물음에 나는 가볍게 머리를 끄덕였죠.
그녀는 계속 말했어요.
“우체국 앞이었지? 비가 내렸고, 캐스케이즈 노래가 흘러나왔어. 경쾌하고 즐거운 노래라서 더 슬
펐던 거 같아. 난 서점 쪽으로, 넌 시민제과 쪽으로 갔잖아. 그렇게 끝날 줄은 몰랐네.”
야야, 하고 나는 속으로 대꾸했어요.
‘우리가 헤어진 건 우체국이 아니라 시민제과 앞이었다고. 노래는 이 아니
라 <그대 떠나는 날 비가 오는가> 였고.’

아마 그녀가 맞을 거예요. 
그녀는 빵집 이름도 기억하고, 헤어진 이유도 알 만큼 똑똑하니까.
집으로 돌아서 걷다가 조심스레 뒤를 돌아봤어요. 
그녀가 미소를 지으며 가볍게 손을 흔들더라고요.
나는 실망했어요. 
그녀가 그 자리에 없기를 바랐거든요. 
신기루를 만났다면 좋겠다고 생각했거든요. 
뭐, 그래도 상관은 없어요. 
서로의 기억이 다르다고 해도, 첫사랑은 의리로 지키는 거니까.
신호등 앞에 서서 불이 바뀌길 기다리는데 문득 궁금해졌어요. 
그 시절, 빵을 실컷 먹고 싶은 남학생들은 시민제과의 딸이 있으면, 여학생들은 시민제과의 아들이 있다면 반드시 결혼하겠다고 저마다 장담을 했거든요. 
과연 누가 시민제과의 사위 혹은 며느리가 되었을까요?



필자소개 변왕중 
시를 쓰고 소설을 쓰고 에세이를 씁니다. 
스스로의 목소리로 말하는 법을 조금씩 깨달아가고 있습니다. 
언젠가는 쉽게 닿을 수 없는 멀고 어두운 곳까지 글로 여행을 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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